정태식
1911.09.08 - ?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경성제국대학을 졸업 후 법문학부 조수로 경제연구실에서 근무하였다. 성북동에 거주하면서 독서회, 적색노동조합, 공산주의자그룹 결성에 매진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였고 해방후에는 남로당 중앙위원, 조사부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4월 체포되어 5월 육군본부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나 한국전쟁 당시 풀려났고, 북한에서 농림성 기획처 부처장을 지냈다. 남로당 숙청 당시 숙청되었다. 경기도 경성부 성북정 184-32(현 성북구 성북로6길8-2)에 거주하였다.
성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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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02834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184-31 (성북로6길 8-2)
  • 비고: 성북정 184-32

근거자료 원문

  • ·성북정 184-32 ·1929년 4월 경성제국대학 입학 ·1933년 4월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였고 용곡여학교에 독서회를 조직 ·1934년 5월 적색노동자그룹, 공산주의자그룹 결성에 참여하여 식료품부 책임자, 공청부 책임자로 선정되어 활동 ·1934월 5월 체포되어 1936년 11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180 일 산입)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1940년 12월 5일 출옥 후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여 인민전선부에 소속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경제부원, 1946년 2월 민전 중앙위원, 1946년 11월 남노동 중앙위원·조사 부장 등으로 활동 ·1950년 4월 체포되어 5월 육군본부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나. 한국전쟁 때 풀려나 서울에서 『해방 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고, 북한에서 농림성 기획처 부처장을 지냄. 그후 남로당 숙청 당시 숙청 당함.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05쪽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확인 결과 1946년 11월의 "남노동" 활동은 남조선노동당의 오기이다.
  • 5. 성북동 독립운동가 주소지 ○ 사회주의 계열 이름 : 정태식 주소(당시) : 경기도 경성부 성북리 184-32 주소(현재) : 서울 성북구 성북동 184-31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7쪽
  • 그는 1933년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법문학부 조수로 근무하면서 1934년 4월 경성법률전문대학에 반제반·문화반·구원반을 조직하였고, 동년 5월 적색노동자그룹, 공산주의자그룹 결성에 매진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0년 12월 출옥 후 박헌영과 함께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본적 충북 진천군 진천면 읍내리, 주소 성북리 184-32. 1929년 3월 청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년 4월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였다. 1933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법문학부 조수가 되어 경제연구실에서 근무하였다. 1933년 4월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였고 용곡여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34년 4월 경성법률전문대학에 반제반, 문화반, 구원반을 조직하였고, 동월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5월 적색노동자그룹, 공산주의자그룹 결성에 참여하여 식료품부 책임자, 공청부 책임자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34월 5월 체포되어 1936년 11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 180일 산입)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0년 12월 5일 출옥 후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여 인민전선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 본적: 충북 진천군 진천면 읍내리 386번지 주소: 경기도 경성부 성북리 184-32 계열과 단체: 적색노동조합 <활동 내용> 1929년 3월 청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년 4월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였다. 1933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법문학부 조수가 되어 경제연구실에서 근무하였다. 1933년 4월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였고 용곡여학교에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34년 4월 경성법률전문대학에 반제반, 문화반, 구원반을 조직하였고, 동월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5월 적색노동자그룹, 공산주의자그룹 결성에 참여하여 식료품부 책임자, 공청부 책임자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34월 5월 체포되어 1936년 11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 180일 산입)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0년 12월 5일 출옥 후 경성콤그룹에 참여하여 인민전선부에 소속되었다.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경제부원, 1946년 2월 민전 중앙위원, 1946년 11월 남노동 중앙위원·조사부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4월 체포되어 5월 육군본부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전쟁 때 풀려나 서울에서 『해방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고, 북한에서 농림성 기획처 부처장을 지냈다. 남로당 숙청 당시 숙청되었다. <참고문헌> 京東警高秘 제1311호 메이데이檄文 關係犯人 檢擧에 관한 건,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 ○ 조용했지만 뜨거웠던 저항의 근거지 성북 성북구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중 이 두 단체(경성트로이카, 경성콤그룹)에서 활동한 인물로는 정태식을 꼽을 수 있습니다.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그는 성북동에 거주하며 적색노동자그룹, 공산주의자그룹 결성에 매진하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옥 후 경성콤그룹에 참여해 활발하게 활동했지요. 성북동에 거주했던 방용모, 돈암동에 거주했던 이현우, 정릉동에 거주했던 주영복, 안암동에 거주했던 김상준과 김순원 등은 모두 경성콤그룹에 소속되거나 연루되어 체포되었던 이들입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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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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