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숙
1922.11.03 - 1997.09.17
인물 개인 문인
인물 개인 교육가
인물 개인 학자
소설가이자 교육가이다. 1947년 전광용, 정한모, 전영경 등과 ‘주막’동인을 만들고 활동했다. 1948년 『예술조선』에 「흉가」가 입선된 이래 많은 단편소설을 발표하였으며, 「전황당인보기」(1955), 「금당벽화」(1955), 「고가」(1956)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고향을 떠나 온 뒤 안암동, 성북동, 삼선동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는데 교수로서 자리를 잡을 무렵 성곽 앞쪽으로 집을 옮겼다. 그는 다양한 소재와 소설기법을 사용하여 새로운 시대 상황에서 살아 갈 한국적 인간상을 창조했다는 평을 받는다.
삼선동 안암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근거자료 원문

  • 평북 영변 출생. 소설가, 국문학자이다. 해방 후 남한으로 내려와 국문학과에 입학, 1948년 3월 《예술조선》에 단편 「고가古家」를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1955년 신춘문예에 소설 「전황당인보기田黃堂印譜記」와 희곡 「혼항昏巷」 두 편이 당선되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고, 문학잡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연구하며 『소설문장론』, 『현대한국작가론』, 『현대한국소설론』 등을 집필하였다. 1960년대 초 ‘주막’ 동인인 전광용, 정한모와 성북동에 이웃하여 살았고, 삼선동으로 이사하여 성악가 이관옥, 첼리스트 전봉초와 이웃으로 지낸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36쪽
  • 1922년 11월 3일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태어났다. 모란봉,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약산과 남산, 밀운산으로 둘러싸인 영변골이 고향마을이었다. 중학교 때 춘원 이광수와 상허 이태준의 작품을 인상 깊게 읽으며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변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강제징용을 당하지 않으려 국경 지대로 몸을 피해 방적기계회, 소학교, 곡물검사소 등에서 일을 했다. 해방 후 집으로 돌아가지만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더 이상 예전의 고향이 아니었다. 1946년 홀로 남쪽으로 내려와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편입하였다. ‘고전을 통하여 순純한국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 택한 학문이었다. 고전문학 연구자인 구자균,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조지훈 등에게 수업을 듣고, 전국 대학생의 문학연구 모임에 나가 국문학 전공자들과 교류하였다. 다음해 서울대 전광용, 정한모, 연세대 전영경과 뜻을 모아‘주막酒幕’동인을 만들고 문학의 꿈을 함께 키운다. 대학 3학년이던 이 해 문예신보사에서 주최한 단편 현상 모집에 「황앵유랑기黃鶯流浪記」로 3등상을 받고, 1948년 3월에는 단편 「고가古家」를 《예술조선》에 발표하며 문단에 첫 발을 내딛는다.
  • 이후 다작多作작가로 불릴 만큼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였다. 1955년 평화신문에 쓴「애정지대」를 시작으로「처용랑」(1958, 325회), 「바다의 왕자」(1960, 341회), 「우린 서로 닮았다」(1963, 178회), 「이성계」(1965, 440회) 등 20년 가까이 3~4백회가 넘는 신문 연재소설을 썼다. 장보고를 소재로 한 첫 문학작품인「바다의 왕자」를 연재할 때는 옆 동네인 성북동에 살던 김기창이 삽화를 맡았다. 연재 분량만큼 쓴 원고를 아들을 시켜 김기창의 집에 보내면, 줄거리에 맞는 삽화를 그려 기다리고 있던 기자에게 보냈다.
  • ‘주막’동인인 전광용, 정한모, 전영경과는 평생 각별하게 지냈다. 전광용과는 부산 피난 후 서울로 돌아와 종로구 원서동에 있던 휘문고등학교 교사로 함께 취직을 했다. 1957년 정한숙이 고려대 교수로 임용이 되자 정한모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전쟁 중에 송도로 내려와 있던 중앙대학교에서 <소설창작론> 수업을 맡아 처음 대학 강단에 선 뒤 몇 년 만에 모교 교수가 된 것이다. 후에 전광용, 정한모 두 사람은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되었다. 그 무렵 전광용, 정한모와 성북동에서 이웃으로 지냈고, 삼선동으로 이사한 뒤에도 삼선교에 있던 술집에서 자주 어울렸다. ‘주막’이라는 이름부터 술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동인 모두 술을 즐겼다. 한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는데, 오전에 만나 각자 써온 글을 읽으며 합평회를 하고, 점심 때부터 저녁까지는 술을 마셨다.
  • 고향을 떠나 온 뒤 안암동, 성북동, 삼선동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 1950년대 중반에 살던 성북동 쌍다리를 지나 성곽 아래쪽 마을에서는 전광용, 정한모, 한운사가 이웃이었다. 몇 년 간 살던 성북동을 떠나 삼선교 수도사업소 근처로 집을 옮기지만 곧 성곽 아래 성악가 이관옥이 사는 집으로 다시 이사한다. 아랫집에는 첼리스트 전봉초가 살았다. 교수로서 자리를 잡을 무렵 성곽 앞쪽으로 다시 집을 옮긴다. 서양식 집이었는데, 성곽 주변으로는 집이 드물어서 너른 공터를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안암동 고려대학교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 삼선교 다리에서 15도 경사를 올라 성벽을 끼고 언덕진 곳에 동네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흔히 말하는 서울 보통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한 가구 한 주택이라기보다는 한 주택에 두세 가구가 들어사는 곳이다. … 성벽을 끼고 오르면 호젓한 산책길이다. 20년 전만 해도 이 일대는 정리 되지 않은 판자촌이었지만 요즘은 아담한 동네로 바뀌어진 셈이다. - 정한숙, 「입추가 지난 어느 날 밤」,『 꿈으로 오는 고향내음』, 해문출판사, 1988, 16쪽-
  • 1922 평안북도 영변 출생 1955 『황진이』출간 1957-1988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 1958 제1회 내성문학상 수상 1977 제1회 흙의 문학상(한국문예진흥원 문공부장관상) 1988 3.1 문화상 예술부문, 국민훈장 모란장 1991 문화예술진흥원 원장 1991 대한민국문예진흥원 원장 1997 별세
  • 6. 성북동 문화예술인 주소지 이름 : 정한숙 주소(현재) : 성북동 분야 : 문학(소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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