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훈
1923.09.02 - ?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이다. 중앙고보 3학년 재학 중에 노국한, 이기을, 조성훈, 황종갑, 유영하 등 5명은 역사와 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5인독서회’를 조직하고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추대하였다. 1941년 7월에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항일유격대의 활동 소식, 일본의 운동가와의 연락, 김성수, 송진우 등 민족운동지도자와의 연락 등을 위해 활동하였다. 다음 달인 8월에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체포된 후 함흥경찰서로 압송되었다. 100여 일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경성부 돈암정 401에 거주하였다.
돈암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 비고: 경성부 돈암정 401

근거자료 원문

  • ○ ‘5인 독서회’와 ‘조성회’ 등의 항일결사단체 등장 - 일제강점기 끝자락에서 저항의지를 불태웠던 항일단체들이 또 있습니다. 1940년 10월, 중앙중학교 4학년 학생이었던 노국환(돈암동 거주), 이기을(안암동 거주), 조성훈(돈암동 거주), 황종갑, 유영하 등 5명은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관한 협의와 역사·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5인 독서회’를 조직하고 지리를 담당했던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추대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7월 활동범위를 확대해 활동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그 해 8월에 검거되었습니다. 관련 학생들은 100일 내에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되었고 지도교사인 최복현은 2년 후인 1943년에 출옥했습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113쪽
  • 본적: 경북 상주 낙동 상촌 868 주소: 경성부 돈암정 401 계열과 단체: 국내항일 <활동 내용> 중앙고보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39년 노국환, 황종갑, 이기을, 유영하 등과 매주 한두 차례씩 만나 민족정기와 독립쟁취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1940년 10월 역사와 정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5인독서회’를 조직하고,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삼아 토론회를 가졌다. 1941년 7월 활동범위를 확대하기로 하여 항일유격대의 활동 소식, 일본의 운동가와의 연락, 김성수·송진우 등 민족운동지도자와의 연락 등을 위해 활동하였다. 1941년 8월 황종갑의 서신이 발각되어 체포된 후 함흥경찰서로 압송되었다. 100여일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9, 1977, 791쪽.
  • “노국환은 고려대 법대를 가서 전북대 교수로 있다가 한때 정치도 했습니다. 황종갑은 학병을 다녀온 뒤 해방 후 육사에 들어가 후에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습니다. 일본에 같이 갔던 조성훈은 중앙대 예과에 입학, 후에 여러 소식이 있었습니다. 이들 3명은 모두 작고했습니다. 유영하의 소식은 그 후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동창회보 편집자 : 유 교우는 매년 3.1절마다 탑골공원 손병희 선생 동상 앞에서 민간 추모식을 벌여왔는데 2006년 8월 31일자 계우회보 인터뷰에서 소개됐다. 현재 유 교우는 노환으로 와병 중에 있다.)”
    2008, 계우회보 131호, 6면
    이기을의 인터뷰 내용이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17

관련 마을아카이브

  • 이야깃거리
    5인 독서회
    분류: 인물
    시기: 일제강점기
  • 이야깃거리
    노국환
    분류: 인물
    시기: 일제강점기
  • 이야깃거리
    이기을
    분류: 인물
    시기: 일제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