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벽
1895.10.17 - 1975.09.03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개성의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 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호수돈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휴교령이 내려지자 조화벽은 버선 솜에 독립선언서를 감추고 고향 양양으로 귀향하여 지역만세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다. 1925년 교직생활을 하던 중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이후 유우석의 가족을 모두 양양에 은신시켰으며, 유관순의 동생인 관복과 관석을 양육하였다. 1932년에는 양양에 정명학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광복 이후 정릉동 604-16번지(현 아리랑로5길 128)에서 거주하였고, 1975년 타계하였다. 정부에서는 1982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릉동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첨부 사진_조화벽
  • 유우석 선생이 살던 정릉 주소지의 집
  • 유우석·조화벽 집터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02826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604-16 (아리랑로5길 128)

근거자료 원문

  • ○ 성북구 독립운동가들이 걸어온 독립의 길 1919년-유우석, 조화벽 등 전국 각지에서 3·1운동 참여 1932년-조화벽 양양에 양명학교 설립 후 농촌계몽운동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10-12쪽
    '양명학교'는 '정명학원'의 오기인 것으로 보인다.
  • ○ 해방 이후 성북구 거주 독립운동가 조화벽 양양 3·1 운동의 불씨 1895~1975 / 애족장 / 정릉동 604-16 거주 3·1운동 당시 개성 호수돈 여학교에서 ‘호수돈 비밀결사대’를 조직하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개성에서의 만세운동 이후 조화벽이 양양으로 가져간 독립선언서는 강원도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양양 3·1운동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유우석이 그의 남편입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20쪽
  • ○ 오직 나라를 위해 맞섰던 성북인들 유우석의 가족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아내 조화벽은 정릉에서 여생을 보낸 독립운동가입니다. 3·1운동 당시 개성 호수돈 여학교에서 ‘호수돈 비밀결사대’를 조직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48쪽
  • 강원도 양양(襄陽) 사람이다. 조화벽은 양양군내의 감리교회에 많은 청년을 포섭하여 활발히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조영순(趙英淳) 전도사의 딸이다. 전국적으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개성 호수돈여학교(開城好壽敦女學校) 학생으로서 선배인 권애라(權愛羅) 등 수명과 함께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나누어 준 뒤, 헌병대에서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후 1925년 4월 18일 교직생활을 하던 중 유우석(柳愚錫; 柳寬順의 오빠)과 결혼하였는데, 이후 유우석의 가족을 모두 양양에 은신시켰고, 유관순의 동생인 관복(寬福)과 관석(寬錫)을 양육하였다.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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