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복
1923.04.06 - ?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정릉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다.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나 1937년에 경성전기주식회사에 전기견습공으로 취직하였다. 그는 취직 후 공산주의 활동가 조중심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조선의 독립과 공산화를 희망하게 되었고,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조직인 경성콤그룹에 가입하여 조선 독립과 공산주의에 관한 학습을 받았다. 1941년 12월 일제의 대대적인 경성콤그룹 관련자 검거시 홍영의, 김한성 등과 함께 검거되어 미결수로 2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끝에 1943년 10월에 마지막 재판을 받았다. 형량은 확인되지 않으나 재판 후 주동자를 제외한 다른 경성콤그룹 관련자들과 함께 풀려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 533-1(현 성북구 정릉동)에 거주하였다.
정릉동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 비고: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 533-1

근거자료 원문

  • 본적: 경상북도 대구부 동성정 2정목 40번지 주소: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 533-1 계열과 단체: 조선공산당 재건공작 사건 (경성콤그룹) <활동 내용> 주영복은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경성의 계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7년(15세)에 경성전기주식회사에 전기견습공으로 취직하였고 1941년(19세)부터는 같은 회사의 내선계(內線系)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주영복은 어릴 때 빈농의 가정에서 자라오면서 ‘현대사회’에 불평 불만을 통감해 오다가 때마침 경성전기주식회사 취직 후 공산주의 활동가 조중심(趙重心)과 서로 알게 되어 그로부터 지도를 받아 공산주의에 공명하고 조선의 독립과 공산화를 희망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는 조중심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써클이 만들어져 비밀리에 가입이 이루어졌는데 유래초(柳來初, 창씨명 柳村道信, 서대문구 아현정 459-9) 역시 주영복과 함께 이 써클에 가입하여 경성콤그룹 내 활동가로부터 조선 독립과 공산주의에 관한 학습을 받았다. 주영복과 유래초는 1941년 12월 일제의 대대적인 경성콤그룹 관련자 검거시 홍영의, 김한성 등과 함께 검거되어 미결수로 2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끝에 1943년 10월에 마지막 재판을 받았다. 이 재판에서 주영복은 ‘국체(國體) 변혁 및 사유재산제도 부인을 목적하고 그 실행에 관하여 협의한 점’이 치안유지법과 형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결 받았다. 형량은 확인되지 않는데 재판 후 주동자를 제외한 다른 경성콤그룹 관련자들과 함께 풀려났을 것으로 보인다. <특이사항> 창씨명은 新原國雄. 치안유지법 위반. <참고문헌> 경성지방법원 판결문 1943. 10. 25.
  • ○ 조용했지만 뜨거웠던 저항의 근거지 성북 성북구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중 이 두 단체(경성트로이카, 경성콤그룹)에서 활동한 인물로는 정태식을 꼽을 수 있습니다.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그는 성북동에 거주하며 적색노동자그룹, 공산주의자그룹 결성에 매진하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옥 후 경성콤그룹에 참여해 활발하게 활동했지요. 성북동에 거주했던 방용모, 돈암동에 거주했던 이현우, 정릉동에 거주했던 주영복, 안암동에 거주했던 김상준과 김순원 등은 모두 경성콤그룹에 소속되거나 연루되어 체포되었던 이들입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102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18

관련 마을아카이브

  • 이야깃거리
    김상준
    분류: 인물
    시기: 일제강점기
  • 이야깃거리
    방용모
    분류: 인물
    시기: 일제강점기
  • 정태식
    이야깃거리
    정태식
    분류: 인물
    시기: 일제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