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선
1901 - 1953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인물 개인 음악가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다. 1901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일본과 독일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하였다. 1929년 귀국하여 연주활동을 시작하였고, 1932년부터 작곡을 하였다.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고향」을 발표하여 널리 알려졌다. 피아니스트 이소란과 결혼하고 성북구 성북로8길 12-8(성북동 183-17)에 양옥집을 짓고 살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피난갔다가 1953년 부산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홍난파, 현제명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1세대 서양 음악가였는데, 채동선은 1930년대부터 한국 음악계를 이끄는 역할을 하며 민족의 정서를 가곡에 담기 위해 노력하였다. 대표곡으로 「동백꽃」, 「그리워」, 「내 마음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이 있다.
성북동
  • 채동선 탄생 117주년 기념행사 "채동선 성북동 시민과 시인의 노래"(1)
  • 채동선 탄생 117주년 기념행사 "채동선 성북동 시민과 시인의 노래"(2)
  • 채동선 탄생 117주년 기념행사 "채동선 성북동 시민과 시인의 노래"(3)
  • 채동선 탄생 117주년 기념행사 "채동선 성북동 시민과 시인의 노래"(4)
  • 채동선·이소란 가옥터(1)
  • 채동선·이소란 가옥터(2)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02834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183-17 (성북로8길 12-8)

근거자료 원문

  • 30-50년대에 일찌기 독일유학을 끝내고 귀국하여 바이얼리니스트로, 작곡가로 활약했던 고 채동선씨 53년 부산 피난지에서 52세로 작고한 부군을 기념하기 위해 부인 이소란여사(76)가 이번에 2천만원의 기금으로 채동선음악상을 제정, 8일 제1회수상자 김원복씨(72) 에 대한 시상식을 갖는다. 가곡 『그리워』, 합창곡 『새야새야 파랑새야』, 교풍곡 『조국』 등 1백여편의 작품을 남긴 작곡가 채동선 씨. 부인 이 여사가 눈물로 회상하는 남편은 『말은 별로 없었지만 사랑이 깊은 사람』이다. 『중앙일보』 1984. 2. 7.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 3-44
  • 전남 보성 출생. 서양 음악을 토착화한 작곡가이다. 홍난파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일본과 독일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운다. 1929년 귀국하여 독주회와 현악4중주단 활동을 하고,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고향>을 발표한다. 이무렵 피아니스트 이소란과 혼인하여 성북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일제 강압이 심해지자 칩거하여 창씨개명에 반대하고 우리 민요와 국악을 채보하는데 열중한다. 해방 후 <동백꽃>,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을 작곡하였다. 합창음악과 전통음악에도 관심을 가져 고려합창협회를 조직하고, 민요를 편곡한 합창곡을 만들었다.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가며 마당, 장독 구석마다 악보를 묻어 두었다. 피난 중에 세상을 떠나고, 10년 뒤에서야 악보가 마당에서 발견되었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76쪽
  • 우리나라 서양음악은 홍난파, 현제명, 채동선 등 1세대 음악가들이 등장하면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채동선은 1930년대부터 한국 음악계를 이끄는 역할을 하며 민족의 정서를 가곡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채동선은 1933년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여 가곡 <고향>을 만들었다. 정지용의 월북으로 노래가 금지되자 이관옥이 새롭게 가사를 써서 <고향 그리워>라는 노래로 발표했다.
    송지영·심지혜, 2015, 성북, 100인을 만나다, 82쪽
  • 채동선(蔡東鮮) 1901-1953 작곡가. 전남 보성 출생. 독일에서 바이올린과 음악이론을 공부하였다. 귀국 후 독주회(4회)를 열었고, 많은 독창곡을 작곡하였다. 작품으로 가곡 <추억>, <동백꽃>, <그리워>, <향수> 등이 있다.
  • 전남 보성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후 베를린에 유학,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운 뒤 1929년 귀국 1932년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1932년 <고향>, <내 마음은>, <바다> 등을 작곡 피아니스트 이소란과 결혼 후 성북동 언덕에 양옥집을 짓고 생활 ※ 성북동 183-17번지(현재 당시 가옥 보존) 6.25전쟁 때 피난지 부산에서 병사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26쪽
  • 6. 성북동 문화예술인 주소지 이름 : 채동선 주소(현재) : 성북동 183-17 분야 : 음악(작곡) 비고 : 이소란의 남편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9쪽
  • ○ 오직 나라를 위해 맞섰던 성북인들 성북동의 대표적인 작곡가 채동선도 경기고보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했다가 퇴학 당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48쪽
  • 채동선은 나라를 빼앗긴 작곡가의 임무가 서양의 음률을 빌려 새 노래를 작곡하는 것에만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식민 지배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가는 우리의 노래들을 찾아 거두어 보전하는 일 또한 음악하는 사람들의 사명 가운데 하나라고 믿었다. 채동선은 일제강점기 '평범한 사람의 저항하는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어쩌면 그는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태어났고 살고 있는 땅에서의 불합리와 민중이 느끼는 아이러니함을 함께 소통하며 당대 지식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역경의 세월에서 누군가는 투사처럼 강하게 저항을 하였고 누군가는 시대에 편승하여 이익을 추구했다면 채동선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저항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성북문화원, 2017, 성북문화 제5호, 73-75쪽
    백외준, 성북동발 신문화운동과 채동선의 음악활동 -채동선 탄생 117주년 기념행사 '성북동, 시민과 시인의 노래'를 돌아보며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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