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선
1894.11.01 - 1974.09.09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성북동 관련 민족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에서 유학하였고, 1919년에 중앙중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21년 발족한 조선어연구회에 참여하였다. 1925년에 조직된 기독교 계열의 항일운동단체인 흥업구락부 소속으로 활동했는데, 1938년에는 피검되기도 하였다. 이후 제8대 국무총리와 제5대 대한적십자 총재를 역임하였다. 성북 177-30에 거주하였다.
성북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崔斗善
  • 이명칭: 각천(覺泉)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177-30
  • 비고: 서울 성북 177-30

근거자료 원문

  • 5. 성북동 독립운동가 주소지 ○ 민족주의 계열 - 이름 : 최두선 - 주소(당시) : 서울 성북 177-30 - 주소(현재) : 서울 성북구 성북동 177-30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7쪽
  • 본적: 서울 수은 6 주소: 서울 성북 177-30 계열과 단체: 흥업구락부사건 <활동 내용> 최두선은 1894년에 출생하여 일본 동경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독일에서 유학을 하였고. 1919년에는 중앙중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경성방직회사 상무취체역, 전문취체역, 사장을 역임하였고, 1921년에는 조선어연구회의 발족에 참여하였다. 1925년 조선사정연구회에 참여하였고, 1927년 중앙고보 교장. 1933년 보성전문 상무이사를 역임하였다. 1938년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신흥우·안재홍 등과 함께 피검되었다. <참고문헌> 興業俱樂部 關係者의 動靜에 관한 건(1938)
  • ○ 우리말을 연구한 조선어학회 - 성북동에 거주했던 최두선도 조선어연구회의 발족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중앙중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경성방직회사 사장을 지냈던 그는 1925년 조직된 기독교계열의 항일운동단체 흥업구락부 소속이기도 했습니다. 흥업구락부는 안재홍이 간부급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단체이지요. 최두선은 후에 제8대 국무총리와 제5대 대한적십자 총재를 역임했습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92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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