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정 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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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정 문화재
사건 의례
성북구 정릉동 손가정 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10월 초에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원래 산신제를 지냈던 곳은 마을에 집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산 속으로 옮겨졌고, 현재 산신제단은 국민대 후문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 있는 마을버스 종점에서 산으로 조금 걸어 올라가는 곳에 있는데, 부채모양의 바위 앞을 정리하여 제단을 마련해 두었다. 현재 산신제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오랜 시간 마을을 지켜온 전통으로 인식되고 있다. 의식은 유교적 방식을 취하여 축문(祝文)을 고하고 헌작(獻爵)을 반복하고, 소지(燒紙)하는 등의 절차를 거친다.
정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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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가정마을 토박이 손명옥 10 : 밀양 손씨의 문중 모임, 손가정 노인정, 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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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가정마을 토박이 손명옥 10 : 밀양 손씨의 문중 모임, 손가정 노인정, 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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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사건 의례

시기

  • 시대: 미상
  • 시기: ?
  • 비고: 음력 10월 초하루

주소

  • 주소: 02709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308-2 일대 (솔샘로18길 35일대)
  • 비고: 손가정 마을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손가정은 정릉 안에서 일찍부터 주거지역을 이루었던 지역으로,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마을답게 주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산신제 역시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손가정의 산신은 욕심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 돈을 번 사람들이 외지로 나가면 망해서 다시 들어오게 된다”는 말이 전해진다. 손가정뿐만 아니라 정릉 주민들은 하나같이 “정릉은 떠났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손가정 산신의 욕심이 아니더라도, 정릉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손가정에서 산신제를 지내던 산을 ‘긴등’이라고 부른다. 산이 꼭대기에서부터 길게 쭉 뻗었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산신제를 지내던 곳은 마을과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소나무 앞이었다. 그러나 마을에 집들이 늘어나면서 산신제단은 원래의 자리를 잃고 산자락을 따라 점차 산 속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옮겨진 산신제단 터마저 경신중학교가 들어오면서 다시 옮겨야 했다. 현재 산신제단은 국민대 후문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 있는 06번 마을버스 종점에서 산으로 조금 걸어 올라가는 곳에 있다. 그곳에 약간의 평지가 있고 그 뒤에 부채 모양의 바위가 서 있다. 제를 지낼 때는 바위를 향해 제물을 차린다. 산신제 터를 옮기면서 깨끗하고 바위가 같이 있는 곳을 선택하였는데, 부채모양의 바위 앞에 제단 겸 시멘트를 발라 정리해 두었다. 산신제 지내는 시간은 오후 3시 가량이다. 원래 저녁에 지내던 것을 주민들이 조금씩 앞당기다보니 현재 시간에 지내게 되었다. 깜깜할 때 산에 올라가면 넘어질 수도 있고 위험해서 날이 밝을 때 올라갔다가 저녁에 내려온다. 현재 산신제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오랜 시간 마을을 지켜온 전통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랫동안 마을의 안녕과, 마을에서 마음 편히 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손가정 산신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릉 마을 한 바퀴 주민실행위원회, 2017, 정릉 마을 한 바퀴, 94-95쪽
  • 제일은 음력 10월 1일이며, 산신제는 저녁 5시경에 지낸다. 손가정마을의 제당은 국민대학교 뒤편으로 북한산 등산로의 국민대매표소 아래쪽이다. 제당은 약 2m 높이의 큰 바위 아래에 땅을 골라 편평하게 만든 곳이다. 음력 10월의 제사를 앞두고 주변을 청소하고 흙을 돋운 것을 볼 수 있다. 제물은 소머리, 산적, 탕, 메, 팥시루떡, 흰무리(백설기), 사과, 배, 감, 북어, 나물, 술 등이다. 제물은 노인회의 총무가 정릉시장에서 구입하며, 제물의 조리는 부녀회원들을 중심으로 손가정노인회관에서 한다. 제비는 마을의 각 과정을 돌며 추렴하여 마련하였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부터는 노인회원들이 제사 당일 아침에 마을 입구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1인당 5000원씩을 거두어 제비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참가자가 많아 이렇게 거둔 것만으로 제비를 충당하였으나 지금은 참여자 수가 적어 성북구청의 보조를 받는다. 2003년의 경우 구청의 보조금 30만원 가량 충당하였다. 제사는 저녁 무렵 5시경에 지내는데, 제관은 따로 선정하지 않는다. 노인회원들을 중심으로 제사가 진행되며, 약 10여 명 정도가 참가한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진행되며, 축문은 제사 당일에 노인회원 중 한 사람이 써서 읽고 제를 지낸 후에는 태운다. 제사를 마친 후에는 소지를 올리는데 제비를 낸 사람들의 수대로 일일이 올린다. 산신제를 마친 후 제물은 손가정노인회관으로 옮겨나눠 먹고, 제비의 결산을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2005, 서울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Ⅱ, 366-367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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