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정십
1880 - ?
인물 개인 사업가
사업가이다. 1897년 서울로 건너와 조선 목축업을 하던 아버지 평산정길[平山政吉]의 사업을 도왔다. 러일전쟁 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상해, 홍콩, 싱가포르 등 남태평양을 중심으로 무역 사업을 하다 1908년 부친이 사망한 이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동활인서 터에서 목장(牧場)을 경영하였다. 1920년 전염병의 유행으로 100여 명의 빈민이 발생하였고, 이 중 40여 명은 그의 목장에 수용되었다. 평산정십은 이 빈민들을 위해 군용지인 삼선평 2만 6천 평을 당국에 빌려서 빈민부락을 건설하기로 마음먹고 1921년 5월 경성공회당에서 음악회를 열어 그 수입과 기부금을 빈민부락 건설에 보태기도 하였다.
돈암동
  •  東小門外三仙坪(동소문외삼선평)에 貧民部落(빈민부락)을建設(건설)코자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平山政十
  • 이명칭: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사업가

시기

주소

  • 주소: 02832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동4가 103-3 (동소문로3길 84)
  • 비고: 동활인서 터(활동)

근거자료 원문

  • 평산정십(平山政十) 1880-? 일본 나가사키현 출생. 1897년 서울로 건너와 조선 목축업을 하던 아버지 평산정길[平山政吉]의 사업을 도왔다. 러일전쟁 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상해, 홍콩, 싱가포르 등 남태평양을 중심으로 무역 사업을 하다 1908년 부친이 사망한 이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평산목장平山牧場을 경영하였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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