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이다. 1897년 서울로 건너와 조선 목축업을 하던 아버지 평산정길[平山政吉]의 사업을 도왔다. 러일전쟁 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상해, 홍콩, 싱가포르 등 남태평양을 중심으로 무역 사업을 하다 1908년 부친이 사망한 이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동활인서 터에서 목장(牧場)을 경영하였다. 1920년 전염병의 유행으로 100여 명의 빈민이 발생하였고, 이 중 40여 명은 그의 목장에 수용되었다. 평산정십은 이 빈민들을 위해 군용지인 삼선평 2만 6천 평을 당국에 빌려서 빈민부락을 건설하기로 마음먹고 1921년 5월 경성공회당에서 음악회를 열어 그 수입과 기부금을 빈민부락 건설에 보태기도 하였다.
평산정십(平山政十) 1880-?
일본 나가사키현 출생. 1897년 서울로 건너와 조선 목축업을 하던 아버지 평산정길[平山政吉]의 사업을 도왔다. 러일전쟁 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상해, 홍콩, 싱가포르 등 남태평양을 중심으로 무역 사업을 하다 1908년 부친이 사망한 이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평산목장平山牧場을 경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