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표승현(1929~2004)
격동의 20세기를 거친 민족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이다. 황해도 안악 출신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월남하여 춘천에 정착했고 춘천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서구의 현대미술 사조가 한국 화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1950년대 후반기인 1957년 국전에서 작품 ‘석교’가 특선함으로써 미술계에 등단했다. 1970년 국전에서 <음양>으로 국무총리상을, 1972년 국전에서는 작품 <적(跡)>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4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추상표현주의 흐름은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내에도 밀려들어와 화단의 젊은 작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같은 흐름들은 순수추상, 비재현 회화의 출발 시점을 만든다.
1950년대 화단의 기대주였던 표화백은 자연의 형상에 내재된 본질적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하여 이를 재해석해 형상화시키기 시작한다. 60년대에는 구상적 표현에서는 멀리 떠나 새로운 추상의 조형 형태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며, 1970년대 중반 이후 사물의 형상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 속에서 형상이라는 존재를 지워가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40여년간 성신여대에서 교수로서 제자들을 키워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며 투병생활을 하게 되면서 신앙을 통한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구도를 하는 듯한 작품세계를 보인다. 표화백은 ‘도(道)’는 사람의 감각을 초월한 무색 무형 무성한 것으로 황홀한 만상의 근원이 된다며 말년의 예술과 도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의 1999년작 <적송>을 보면 그의 이러한 사상이 잘 나타나있다. 수도생활 이후에 새로운 심안으로 대상을 바라보면서 존재의 세계를 주체와 대상의 세계로 보는 것이다. 주체는 하나님의 종교인 무형의 세계, 대상은 자연과 과학의 유형세계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추상과는 달리 인간과 영성에 대해 천착하면서 독특한 종교적 ‘도’의 작품세계를 추구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