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학손
1909.07.06 - ?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성북동 관련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1934년 양복점 등에서 일하면서 양복직공에게 공산주의를 선전하였고, 1937년에는 유인술·유창여·박기복과 좌익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활동으로 이른바 ‘조언비어(造言飛語)’를 유포죄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육군형법 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월(미결구류 90일 산입)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39년 10월에 출옥하였다. 서울 성북 성북정 185-2번지에 거주하였다.
성북동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현학손(1)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_현학손(2)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玄學孫
  • 이명칭: 현기백(玄基白), 현방(玄芳), 현성하(玄聖河)
  • 성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 비고: 서울 성북 성북정 185-2

근거자료 원문

  • ·성북정 185-2(양복 직공) ·1934년 5월 상순부터 1936년 8월까지 가등양복점(加藤洋服店) 등에서 일을 하던 중 양복직공 윤재호(尹載鎬), 윤봉재(尹鳳載), 김봉수(金鳳洙) 등에 대하여 공산주의를 선전하였고, 유인술·유창여(柳昌與)·박기복(朴基福)과 1937년 3월까지 좌익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 전개 ·1937년 9월 하순 경 경성에서 유창여와 만나 “지나사변에 의하여 용공국 대 반공국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고, 혹은 세계대전으로 진전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떤 것이던지 장기전으로 될 것은 명확하니 결국은 전비가 높아지고 경제적 파탄을 초래하여 패배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고 사변에 관하여 이른바 ‘조언비어(造言飛語)’를 유포. 이 사건으포 체포된 현학손은 1939년 3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육군형법 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월(미결구류 90일 산입)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39년 10월 8일 출옥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06쪽
  • 5. 성북동 독립운동가 주소지 ○ 사회주의 계열 이름: 현학손 주소(당시): 서울 성북 성북정 185-2 주소(현재): 서울 성북 성북정 185-2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07쪽
  • 본적: 충북 충주 산천 송강 1, 246번지 주소: 서울 성북 성북정 185-2 계열과 단체: 시국담 <활동 내용> 1932년 4월 공산주의자 柳仁術을 만나 그로부터 공산주의사상을 소개받고 공명하였다. 그는 1934년 5월 상순 1936년 8월까지 加藤洋服店 등에서 일을 하던 중 양복직공 尹載鎬, 尹鳳載, 金鳳洙 등에 대하여 공산주의를 선전하였고, 유인술·柳昌與·朴基福과 1937년 3월까지 좌익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1937년 9월 하순 경 경성에서 柳昌與와 만나 “지나사변에 의하여 용공국 대 반공국의 대립은 더욱 격하되고, 혹은 세계대전으로 진전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떤 것이던지 장기전으로 될 것은 명확하니 결국은 전비가 높아지고 경제적 파탄을 초래하여 패배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고 사변에 관하여 이른바 ‘造言飛語’를 유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된 현학손은 1939년 3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육군형법 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월(미결구류 90일 산입)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1939년 10월 8일 출옥. <특이사항> 직업 양복 직공 <참고문헌> 수형인명부. 신분장지문원지. 「적로의 준비공작사건 검거의 건」(1938.12.8.) 『사상에 관한 정보 11』, 국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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