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문
1903.09.23 - 1992.07.03
인물 개인 독립운동가
인물 개인 학자
안암동에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이다. 1927년 신간회 경성지회 간사로 선임되었고, 1931년에는 중앙위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또한 국어연구에도 전념하여 1927년에 「조선문전요령」을 『현대문학』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에는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에서 활동하였으며, 서울신문사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음발달사』, 『조선문법연구』을 간행하였다. 1948년 4월 남북정치협상 대표였던 부친 홍명희를 따라 입북하여 그대로 잔류하면서 국어연구와 정치활동, 문화활동을 병행하였다. 1981년에는 『조선왕조실록』 한글 번역의 공로로 노력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안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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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 비고: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122번

근거자료 원문

  • 안암리 122번지에 거주하였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장남으로 국어학자이다. 1922년 중국에서 독립운동가와 중국 국민당 인사들과 교류하였고, 1925년 一月會와 조선무산청년동맹에 가입하였다. 1926년 이종모(李鍾模)·유영준(劉英俊)·박천(朴泉) 등의 유학생들과 사회주의 사상연구단체인 신흥과학연구회를 결성하였다. 1927년 12월 신간회 경성지회 간사로 선임되었으며 1931년에는 신간회 본부 중앙위원이 되었다. 이 무렵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적위대의 조직부 겸 선전부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30년 11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1930년대에 『조선일보』 학예부장과 『조광(朝光)』의 주간을 역임하였다. 1927년에 「조선문전요령(朝鮮文典要領)」을 『현대문학』에 발표하였으며 국어 연구에 전념하였다. 1940년에 『조선일보』가 폐간되자 서울 창동에 은거하며 방종현(方鍾鉉)과 함께 국어 연구에 몰두하였다. 1945년 11월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입북한 후 그대로 잔류하여 1960년 1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64년 4월 사회과학원 부원장, 1969년 4월 사회과학원 원장이 되었다. 1973년 7월 김일성훈장을 받았고 1981년 12월 『조선왕조실록』 한글 번역의 공로로 노력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 본적: 충청남도 괴산군 괴산면 재월리 주소: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122번지 계열과 단체:신간회, 조선공산당재건 적위대 <활동 내용>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장남으로 국어학자이다. 역사학, 수학, 어학 등을 독학하였다. 1922년 중국에서 독립운동가와 중국 국민당 인사들과 교류하였다. 일본 유학중이던 1925년 日月會와 조선무산청년동맹에 가입하였고, 1926년 李鍾模·劉英俊·朴泉 등의 유학생들과 사회주의 사상연구단체인 신흥과학연구회를 결성한 뒤 귀국하였다. 1927년 12월 신간회 경성지회 간사로 선입되었다가 1931년 중앙위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적위대의 조직부 겸 선전부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1930년 11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1930년대에 『조선일보』 학예부장과 『朝光』의 주간을 역임하였다. 1927년에 「朝鮮文典要領」을 『현대문학』에 발표한 이후 국어 연구에 전념하였다. 1940년에 『조선일보』가 폐간되자 서울 창동에 은거하면서 方鍾鉉과 함께 더욱 국어 연구에 전념하였다. 1945년 11월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47년 민주독립당 상무위원이 되었다. 1946년 서울신문사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면서『正音發達史』상하,『朝鮮文法硏究』(1947)을 간행하였다. 1948년 4월 남북정치협상 대표였던 부친 홍명희를 따라 입북하여 그대로 잔류하면서 국어 연구와 정치활동, 문화활동을 병행하였다. 이후 1948년 8월 황해도 해주에서 개최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최고인민회의 대표위원에 선임된 것을 비롯하여 동년 6월 남한의 민주주의민족전선, 북한의 민족주의민족통일전선, 그리고 우익단체 밀 사회단체가 망라되어 결성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서 활동하였다. 1960년 1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64년 4월 사회과학원 부원장, 1969년 4월 사회과학원 원장이 되었다. 1973년 7월 김일성훈장을 받았고 1981년 12월『조선왕조실록』한글 번역의 공로로 노력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참고문헌> 『한국민족해방운동자료집』 제4권 秘密結社赤衛隊事件檢擧ニ關スル件 思想에 關한 情報 5의 朝鮮共産黨의 建設을 目的으로 하는 秘密結社 赤衛隊事件 檢擧에 관한 건: 1932. 10. 15.
  • ○ 건국을 준비한 좌우합작 단체, 조선건국준비위원회 -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한 또다른 성북인으로는 홍기문이 있습니다. 앞서 신간회에서도 활동한 바 있었던 국어학자이지요. 1940년 조선일보 폐간후 서울 창동에 은거하면서 국어 연구에 전념하던 그는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124쪽
  • ○ 민족유일당 신간회와 성북인들 ­ 그밖에 신간회 복대표대회에서 상무집행위원, 신간회 영덕지회 간사로 활동한 이기석과 소설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의 장남으로 신간회 경성지회 간사와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홍기문,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경성고보 교사를 겸하며 신간회 경성지회 소속으로 활동했던 문석준, 신간회 활동으로 식민지 정책의 타도와 총독정치를 배격하다 징역살이를 하게 된 유진희 등이 신간회에서 활동했던 성북인들이자 독립운동가들입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7, 성북, 다시 역사를 쓰다,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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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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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인물
    시기: 일제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