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수다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끈끈한 우리에게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우리가 십 년 가까이 이 동네에 살면서 공동육아도 하고 방과후 교실도 하는데 정작 이 동네 사람들은 우리가 뭐하는지 모르는 것 같아.”
“보육과 교육은 공공성을 띤 일인데 너무 우리끼리만 하고 스스로 벽을 치고 있는 느낌이야.”
“십 년 넘게 이 동네서 활동했으면 이제 조합원만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마을과도 좀 접속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집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어 무지개 방과후를 졸업했을 때는 마침 나도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단절 여성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2011년 말 무렵이다. 출근을 하지 않는 오전이란 하릴없이 게으름을 만끽할 수 있는 꿀맛 같은 시간. 나는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엄마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낮 시간에 집에 있는 엄마들을 불러 국수를 끓여먹고, 함께 모여 극장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서로의 집에 놀라가 커피도 얻어 마시는 등 모이는 횟수가 늘었고, 이런저런 자리에서는 늘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온갖 종류의 이야기들이 꽃을 피우는 엄마들의 수다.
“어린이집 생활을 하다 보니 조합은 늘 바쁘고 시끌시끌하지만 그 안에서 왠지 모를 무료함을 느껴. 그 동안 마을 사랑방 만들기 얘기가 몇 번 있었지만 흐지부지됐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볼 때가 되지 않았어?”
“맞아, 맞아. 어린이집은 어린이집이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공방도 괜찮고 작은 책방도 좋고, 그냥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도 좋을 것 같아.”
“음식 솜씨 좋은 엄마들이 반찬가게 나 식당 같은 걸 만들면 어때?”
“그나저나 동네마다 커피점이 넘쳐 나는데 우리 동네엔 왜 카페 하나 없는 거야? 매일 커피 마시러 누구네 집에 모이는 거 좀 부담스러운 것 같아.”
“그럼 차라리 우리가 카페를 하나 차리면 안 돼?”
“그래! 우리가 직접 카페를 만들어보자!”
“우리가 협동조합을 해봤으니까 카페도 협동조합식으로 하면 되겠구만.”
이야기는 순식간에 날개를 달았다.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 얘기를 처음 꺼낸 엄마가 조합게시판에 「시작해 봅시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공식적인 작당모의가 시작됐다.
‘행복한 정릉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모인 5명의 멤버들. 이제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이었다. 삼청동, 부암동 같이 카페가 밀집한 거리에 답사를 나가기도 하고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카페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성미산마을과 삼각산재미난마을 같이 마을공동체로 유명한 곳의 담당자를 만나 실제 사례를 듣는 활동도 빼놓지 않았다.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고 메모를 했다. 두 명, 세 명으로 조를 짜서 효율적으로 움직여 보기도 하고 다 같이 떼 지어 몰려다니며 답사를 온 것인지 나들이를 온 것인지 모르게 웃고 떠들다 헤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벌써 근사한 카페를 열두 번도 더 지었다 허물고 또 짓고 했지만, 역시 현실적인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아무리 작은 카페라도 가게 하나를 차리기 위한 비용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목돈이 들어가는 월세보증금부터 커피머신이나 제빙기 같은 기본적인 집기와 시설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고, 최소한으로 공사를 한다 해도 인테리어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엔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