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에는 어물, 특히 북어의 수요가 증대하였는데, 그 공급로는 경원가도였다. 함경도 元山場에서 수합된 북어는 말 잔동에 바리바리로 실려 철령을 넘어 서남쪽으로 길을 재촉하다가 서울 가까이에 위치한 樓院에 이른다. 이에 사상인들은 누원으로 모여들어 이를 매점하니, 누원은 장사치들과 이에 어울려 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칠패·이현 뿐 아니라 송파의 상인들도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누원이 이렇게 성시를 이룬 것은 교통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누원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미아리 삼거리에 이르고, 여기에서 돈암동이나 종암동 두 갈래로 나뉘어 도성에 들어가는데, 상인들은 시전의 간섭을 피하기 위하여 종암동 쪽으로 가서 동대문의 梨峴 상인과 접촉하거나, 계속 남으로 향하여 뚝섬·송파 상인과 연결하기도 하고, 한강을 경유하여 용산으로 나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