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중앙정보부 강당
1962
국가등록문화재
장소 유적
유물 건축물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석관동 409)에 위치한 건물이다. 이 일대는 조선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인 의릉 능역으로, 본 건물은 능역 안에 있다. 1962년 신축된 강당 부분과 1972년 지어진 회의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1961년 설치된 중앙정보부가 의릉에 들어가면서 건물을 만들고 사용했다. 1972년 7월 4일 이곳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남북 간의 합의를 통하여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의릉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철거가 예정되기도 하였지만, 냉전시대의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남긴 현장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9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석관동
  • 대한뉴스 제887호 '남북 공동성명'
  • [성북을 찾다] 옛 중앙정보부와 의릉
  • 구중앙정보부 강당 외관(1)
  • 구중앙정보부 강당 2층(3)
  • 구중앙정보부 강당 2층 의자
  • 구중앙정보부 강당 2층(4)
  • 구중앙정보부 강당 2층 회의실 통로(1)
  • 구중앙정보부 강당 2층 회의실 통로(2)
  • 구중앙정보부 강당 회의실(1)
  • 구중앙정보부 강당 회의실(2)
  • 구중앙정보부 강당 회의실(3)
  • 구중앙정보부 강당 회의실(4)
  • 구중앙정보부 강당 2층(2)
  • 구중앙정보부 강당 2층(1)
  • 구중앙정보부 강당 1층(4)
  • 구중앙정보부 강당 외관(2)
  • 구중앙정보부 강당 후면
  • 구중앙정보부 강당 우측 회의실(1)
  • 구중앙정보부 강당 우측 회의실(2)
  • 구중앙정보부 강당 1층 출입문
  • 구중앙정보부 강당 내 안내판
  • 구중앙정보부 강당 1층(1)
  • 구중앙정보부 강당 1층(2)
  • 구중앙정보부 강당 1층(3)
  • 구중앙정보부 강당 회의실(5)
  • 구 중앙정보부 강당 안내판
  • 구 중앙정보부 강당 측면
  • 대한뉴스 제887호 '남북 공동성명'
  • [성북을 찾다] 옛 중앙정보부와 의릉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02789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409 (화랑로32길 146-20)
  • 비고: 의릉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성북구의 명소 성북구의 명소 94 구 중앙정보부 강당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중정의 흔적 - 분단 이래 남북 당국자간의 첫 대화로 역사에 기록된 7·4 남북공동성명 발표가 있었던 장소. 당시 서울 이문동 중앙정보부 종합청사 강당으로 무소불위 권력의 상징으로 군림했던 중앙정보부 가운데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다. 1962년 의릉 내에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었다가 43년만인 2005년 5월 1일 산책로와 함께 일반에 개방되었다. 원래 이 강당은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4, 성북 100경, 159쪽
  • 의릉 안에 있는 이 건물은 1962년도에 신축된 2층 건물로서, 강당 연면적 466.28㎡와 1972년도에 신축된 회의실 연면적 234.7㎡로 구성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1972년 7월 4일 당시 이곳에서 중앙정보부장이던 이후락이 남북 간의 합의를 통하여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장소로서, 냉전시대의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남긴 현장이다. 의릉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한때 철거가 예정되기도 하였으나, 남북 간 화해와 단합의 새 시대를 열어놓은 한국 현대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중앙정보부 건물 내 강당이 2004년 9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구 중앙정보부 건물 내부는 2008년 건물 내 일부를 한시적으로 공개했으나 현재는 아쉽게도 건물 내부는 볼 수 없다.
  • 1962년 지어진 강당과 10년 뒤 지어진 회의실로서, 1972년 중앙정보부장인 이후락이 남한과 북한의 합의에 따른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장소다. 건물은 당시 과감한 실험정신으로 심미성 높은 건물을 설계하던 건축가 나상진(1923-1973)에 의해 설계되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항목명: 서울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
  • 중앙정보부 강당 1982년 항공사진을 보면, 본관 남쪽에 의릉의 봉분이 보이고, 그 아래쪽으로 운동장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운동장의 바로 서쪽으로 낮은 건물이 보이는데 석관동 중앙정보부가 기억되는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7 · 4남북공동성명의 발표가 이루어진 강당과 회의실이 그곳이다. 이 강당은 2004년 등록문화재 제92호로 등록이 되었다. 등록문화재 제92호 ‘서울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2004.9.4. 등록)은 업무시설로 강당과 회의실 두 개의 건조물이 연결되어 있다. 강당 부분은 2층, 연면적 466.28㎡ 규모이고, 회의실 부분은 2층, 연면적 234.7㎡ 규모를 가지고 있다. 1962년 지어진 강당과 10년 뒤 지어진 회의실로서, 1972년 중앙정보부장인 이후락이 남한과 북한의 합의에 따른 7 · 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장소다. 건물은 당시 과감한 실험정신으로 심미성 높은 건물을 설계하던 건축가 나상진(1923~1973)에 의해 설계되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강당은 정면 1층에 주출입구를 두고, 정면 양측면의 측면벽에 접혀 들어가는 형식으로 디자인이 되어 있으며, 회의실 역시 2층의 정면이 측면에 접혀 들어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강당의 측면은 상어의 아가미를 연상시키듯 정면 쪽으로 세로로 긴 벽체가 서 있고, 창을 내면서 측면 벽에서 돌출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강당 내부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의 벽체와 로비 데스크 등에 곡선을 사용하여 관공서 건물의 내부 디자인으로 보기에는 당시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정보부의 내부, 외부 행사를 치러내면서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사무용도의 건물에서는 느낄수 없는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요소로 사용하기 위한 처리 방식으로 생각된다. 강당 내부가 개보수 되면서 정확한 원형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조정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로비 데스크는 강당을 들어섰을 때 중요한 인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회의실동의 전면부는 1층과 2층의 면적이 다르고 강당과 마찬가지로 2층의 정면의 양쪽 부분이 벽면으로 접혀 들어간 디자인이 적용되었다. 회의실동 1층은 2019년 현재 비어있는 상태이나 로비와 내부 공간 사이의 칸막이벽은 격자형 나무 프레임에 유리를 끼워 넣었음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2층 회의실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붉은색 카페트가 깔려있어, 2층 본 회의실의 격식을 갖추기 위한 마감으로 사용되었다. 회의실동 뒷문에는 두꺼운 캐노피가 설치되어 있으며, 빗물 배수를 유도하는 빗물체인까지 설치가 되어 있어, 회의실의 정면뿐 아니라 후면도 기능적으로 자주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2018년 8월 28일에 열린 2018년도 문화재위원회(근대문화재분과) 제8차 회의에서는 등록문화재 제92호 「서울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 명칭변경 검토 안건이 상정되었다. 제안사유에는 “건물의 고유명사를 사용한 것이나 ‘중앙정보부’라는 명칭은 건물의 등록취지에 맞지 않으므로 본격적인 활용('18.10월 대국민 개방 예정)에 걸맞은 명칭 부여가 필요하며, 등록문화재 명칭 변경 여부를 검토하고자 하는 사항임”과 함께 “*등록사유 : 7 · 4남북공동성명 발표된 역사적 장소성과 건축사적 가치”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해당 문화재의 성격과 가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명칭변경 필요성 대두 - 일반공개 예정('18년 10월)”이라고 추진 배경을 밝히고,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에서 「7 · 4남북공동성명 발표 강당」으로 변경 내용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중앙정보부 강당은 폭압적 기능을 담당했던 중앙정보부의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 건축물이나, 아픈 역사도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아 기존 명칭을 유지하되, 필요시 7 · 4남북공동성명발표장을 병기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출석 문화재위원 전원 일치 의결로 부결되었다. 이를 통해, 소위 ‘부정적 유산’에 대한 것을 감추지 않고, 명칭에서도 그대로 드러내어 살아있는 현대사의 현장 유산으로서 가치를 더욱 공고히하게 된다.
    박수진 외 5인, 2019, 장위동∙석관동, 241-246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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