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김재규의 집이 이 근방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확한 주소지가 떠오르지 않아 스마트폰을 꺼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주소를 검색했다. 검색창에 ‘보문동 김재규’라고 입력하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이름 : 김재규金載圭 / 생년 : 1926년 / 본적 : 경상북도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7가 134-10’ 그밖에 그가 현역 시절 거쳐 간 여러 보직들. 10 · 26사태의 장본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확실하다. 출처를 확인하니 1977년에 발행된 역대국회의원총람이다. 늦어도 1977년 이전부터 그가 보문동에 살았다는 것을 알겠다.
주소지를 따라갔다. 한옥들이 모여 있는 좁은 골목들 어디인 것 같은데 정확한 주소지는 스마트폰 지도 앱에도, 대문 앞 주소판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운명과 함께 주소지도 없어진 걸까?’하고 허탈한 심정으로 M과 함께 잠시 남의 집 대문 앞 계단에 걸터앉아 다리쉼을 하고 있는데 저만치 할머니 한 분 걸어오신다. M이 일어서서 할머니를 멈춰 세우고 물었다.
“어르신, 여기 김재규 집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어딘지 아세요?” 망설임 없는 할머니의 대답. “저기 지금 새로 짓고 있는 빌딩 있는 자리요. 요기로 나가서 돌아가면 금방 나와요. 옛날에는 그 옆집들도 김재규가 다 사들였어.”
“고맙습니다. 어르신!” 당대 세도가의 집을 이런 좁은 골목들 사이에서 찾고 있었다는 게 우스웠다. 공사가 한창인 옛 김재규의 집터 앞은 승용차 두대가 자유롭게 통행할 만큼 넓었다. 대광고 앞 삼거리와도 꽤 가까운 거리였다. 차만 타면 서울 이곳저곳을 단시간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주거나 교통 면에서 그가 하는 일에 딱 어울렸을 그런 위치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의 집 주변의 다른 집들도 사들였을까? 보안 때문에? 재산 증식을 위해서? 보문동7가를 자신의 영지처럼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폐쇄된 연구실과 달리 현장은 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박수진, 백외준, 민문기, 김영미, 최호진, 최보민, 고종성, 김민성, 2017,
보문동∙안암동, 36-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