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아파트
1971.12
장소 거주지
성북구 안암로9나길 14(안암동 3가 136-1)에 위치한 공동주택이다. 대광아파트는 1971년 건축된 민영아파트로서, 안암동의 바위산 위에 최대한의 건물을 올리고자 하여 독특한 구조를 지어졌다. 현재 고려대학교 공대와 바로 접해 있는데, 당시로서는 고급 맨션으로 지어져 고려대학교 교직원을 주요 대상으로 분양되었다. 안암동의 지명유래와 관련있는 넓직한 바위가 아파트의 바로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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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거주지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1971.12

주소

  • 주소: 02858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3가 136-1 (안암로9나길 14)

근거자료 원문

  • #대광아파트 안암동과 동대문구의 경계를 따라 죽 걷다보니 골목 안으로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안암동3, 4가에는 70~80년대 세워진 10층 안팎의 아파트 세 단지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1969년에 지어진 안암아파트, 1983년에 지어진 삼익아파트, 그리고 1971년에 지어진 대광아파트. 오늘 마지막 목적지로 삼은 곳은 이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고, 가장 많은 세대를 품고있는 대광아파트이다. 대광아파트를 안암동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삼은 것은 사실 안암동의 동명 유래 때문이다. 안암이란 20여 명이 앉아 편히安 쉴만한 바위巖, ‘앉일바위’가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그 바위가 있는 곳이 바로 대광아파트 단지 가운데이기 때문이다. 대광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무척 가파른 언덕을 쉼없이 올라왔더니 숨이 가쁘다. 이 정도면 앉아 쉴 수 있는 바위가 아니라 앉아 쉬게 만드는 바위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누구든 여기까지 올라오면 쉬어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숨을 고르고나니 ‘앉일바위’ 생각이 났다. 어딨지? 하지만 대광아파트 단지 가운데에 큰 바위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과 빼곡이 들어선 차들만 있을 뿐 바위는 흔적조차 없다. 그런데 그 흔적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삼익아파트 단지 안에서 대광아파트 쪽을 바라보니 펜스 너머로 바위 산이 눈에 들어왔다. 아하. 대광아파트 단지 ‘안’에 바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광아파트 단지 ‘아래’에 바위가 있는 거구나. 결국 ‘앉일바위’는 한때 사람들이 올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었고, 이제는 대광아파트의 주민들이 보금자리로 삼아 편히 쉬는 공간이된 거구나.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05-207쪽
  • 1971년에는 안암동3가의 대광아파트가 분양을 시작했다. 안암동의 상징 ‘앉일바위’와 주변의 판잣집들을 철거한 자리에 들어선 대광아파트는 7개 동 346세대 규모의 중형 아파트 단지였다. 평형은 15평, 17평, 19평, 21평 모두 4종류가 분양되었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75쪽
  • 오진개발이 주체가 되어 지어진 이 아파트는 고려대학교 직원과 교수들을 거주 대상으로 분양 수익목적으로 지어졌다. 초기에는 고급 맨션이라는 이미지와 맑은 공기가 장점으로 여겨졌다. 크게 보면 주 동들이 대지 경계선을 따라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아파트가 둘러싼 큰 마당을 가지고 있고, 지상층 일부에 점포가 계획되었다. 2개 유닛에 1개 코어로 구성되었다. 철근콘크리트와 조적조 혼합 구조로 개별화장실을 갖추고 중앙난방 방식을 이용했다. 이 시기의 아파트는 중상류층이 거주하였고, 매우 고급화된 주거형태로 인식되었다. 근린주거 이론에 준하여 배치되는 공영아파트에 비해, 민영아파트로 지어질경우 수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한정된 대지에서 보다 많은 유닛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개별 유닛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기보다, 대지의 형태에 맞춰 많은 호수를 건축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렇지만 편복도 형식을 취하지 않고, 계단실형으로 건립 되어 각 호별 프라이버시 강화를 고려하였다. 1972년 건립된 대광아파트는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고, 기존의 석산을 어렵게 정지작업 하여 시공했다. 땅을 다루는 점에서나 규모면에서 다른 아파트와 비교가 된다. 처음에는 5층으로 계획, 시공되다가 7층으로 2개 층이 늘어난 것 또한 당시의 요구와 수요를 짐작케 하는 단서이다. 아파트 배치는 판상형 아파트를 대지 경계선을 따라 비정형적으로 이어붙인 것처럼 배치시켰다. 또한 지붕에서는 아파트 동간을 서로 이어서 아파트 전체를 걸어서 돌 수가 있다. ― 대광맨션아파트 설명 (손세관 외 2인, 우리나라 공동주택 도입기에 등장한 중 · 소규모 아파트의 계획적 특징에 관한 연구, 한국도시설계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논문집, 2005.11.)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310-311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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