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서울미래유산
사건 의례
유물 무형문화재
약 80여 년 전부터 시작한 정릉동의 동신제이다. 현재는 대덕사 뒷산에서 매년 10월 초하루, 오전 10시경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산신제는 종묘제를 본떠 지내고 있는데, 각기 다른 지역의 주민들이 다양한 제의절차를 절충하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하나 된 마음을 담아 지내고 있다. 배밭골 산신제는 마을이 생활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오늘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고유 제례 행사로서 민속적 보존가치와 보전의 필요성을 인지하여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릉동
  • 2013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1)
  • 2013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2)
  • 2013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3)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9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8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7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6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5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4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3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2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1
  • 2021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 10

기본정보

시기

  • 시대: 일제강점기
  • 비고: 1920-30년대 시작된 것으로 추정.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 시행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산 87-1 (정릉로8가길 116)
  • 비고: 북한산 숲체험장의 가장 안쪽 둔덕 위 커다란 바위 절벽에 설치된 산신제단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산신제 절차는 간명했다. 진설이 끝난 뒤 초헌관이 분향을 하고 첫 잔을 올린 다음 재배했다. 이어서 독축이 끝나면 아헌관과 종헌관이 차례로 나아가 잔을 올리고 재배했다. 마지막으로 음복례를 행한 뒤 제를 마쳤다. 소지는 특별한 의식 없이 제단 앞 공터에서 살랐다. 축문은 집례자이자 독축관을 맡은 이진용(78) 어르신이 직접 지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단기 4346년 10월 1일 계유일에 손영호孫永浩가 감히 토지의 신에게 고합니다. 이 초겨울 한 해 수확이 끝났는데 다행히 편안하고 길하였음을 고합니다. 이에 보답하고자 하는데 감히 공경치도 못하고 제수도 비록 미약하지만 그 계신 곳에 영원히 바치오니 흠향하시옵소서.(維 檀君紀元 四千三百四十六年癸巳十月癸酉朔一日癸酉 孫永浩敢昭告于土地之神 惟此初冬 歲功告畢 幸玆安吉 若時報事 敢有不欽 蘋藻雖微 永尊厥居 尙饗)
    강성봉 외 4인, 2013, 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33쪽
  • 이번 산신제를 주관하신 정릉3동 북악경로당 회장 조화연님은 산신제가 제사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배밭골 전체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 행사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주로 노인들만 참여하는데 남녀노소와 종교를 불문하고 온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동네 한마당 잔치로 바꾸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저기서 온 손님들 대접하느라 부산스러운 와중에도 직접 성북문화원 직원들이 앉아 있는 밥상 옆으로 오셔서 조곤조곤 말씀해주시는 조화연 어르신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이날은 배밭골 8개통 주민의 날이야. 옛날부터 무사안일, 무사태평을 기원하려고 산신제를 지내 왔던 거지. 선배들이. 요걸 배밭골 남녀 전체 주민이 참여하는 문화행사로 만들어야 되겠다 싶어. 그럴라면은 장수상長壽賞, 모범통장상 수여식이나 민속놀이도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하루 종일 꽹과리도 치고, 젊은 사람도 참여하고, 착한 어린이상도 주고 그러는 행사를 만들어야지. 의논을 해가지고 본격적으로 해볼까 생각 중이야. 옛날식대로 산신제 지내고 먹고 떡 나누고 소지 올리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산신제 끝나고 난 뒤에 그런 행사도 해서 주민 한마당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구청의 지원도 좀 많이 받아야 하고 주민들의 협조도 필요하지. 예산이 천만원 정도는 들 거야. 주민들 협조 받고 구청 지원 받고 해서 그렇게 해야지. 산신제는 배밭골 주민의 무사안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민속문화지. 북한산 산신에게 고하는 거지. 좋은 일이지만 지금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잖아. 옛날만 해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배밭골에) 교회가 둘이나 있잖아. 교회 다니는 사람이 싫어해. 그니까 고것을 바꾸어 나가야 해. 산신제 지내는 날에 산제 지내는 사람은 지내고 그 후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먹고 노는 배밭골 주민 한마당으로 바꿔나가야지. - 정릉3동 북악경로당 회장 조화연
    강성봉 외 4인, 2013, 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34-35쪽
  • 정릉3동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 건너편의 남쪽 아랫마을, 배밭골에서 매년 10월 초하루 오전 10시경 산신제를 올린다. 배밭골에는 늑대와 같은 산짐승이 많아 피해가 많았기에 이를 막기 위해 산신제를 지냈다고 전해져 온다. 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오랜 옛날부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왔다고도 한다. 그리고 배밭골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가 정릉을 모신 산으로 명산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배밭골 산신제는 80여 년 전부터 지내기 시작했다. 산신제를 지내면서 산짐승들의 피해가 없어지게 되었고, 제를 소홀히 하면 피해를 보게 된다고 한다. 배밭골뿐만 아니라 정릉3동 일대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실제 산짐승의 피해가 컸다. 6.25 한국전쟁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아리랑고개에는 여우가 많았다고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아리랑고개를 지날 때 여우가 많아 돌멩이를 손에 쥐고 고개를 넘곤 했다. 돌멩이를 던지고 저만치 가고, 돌멩이를 던지고 저만치 가고 그렇게 다녔다. 여우도 많고 호랑이도 많았다. 배밭골은 아리랑고개와 여우골(정릉동 757번지 일대), 국민대 뒤편과 함께 여우가 많고 산짐승이 출몰하던 지역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지역 중 하나이다. 현재 배밭골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장소는 대덕사의 뒷산 언저리이다. 대덕사 뒤의 산에는 오래되지 않은 큰 불상과 불탑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산신제는 바위 앞의 부조로 만든 불상과 그 제단에서 지낸다. 원래 산신제를 지내던 곳은 현재 산신제를 지내는 곳에서 산 위로 한참 더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자주 닿지 않아 산길이 험해져서 올라가기가 힘들고, 산신제를 지내는 이들이 모두 노인이다 보니 높은 곳까지 제물을 들고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산 중턱에 좋은 자리를 찾아 제를 올리게 되었는데, 현재의 자리가 그곳이다. 현재 산신제를 지내는 곳의 불상은 이곳에 절을 지으면서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배밭골 산신제를 지내는 이들의 고향은 각기 다르다. 지역이 다르다 보니 제를 지내는 절차도 다를 터. 배밭골 산신제는 ‘종묘제를 본떠’ 지내고 있는데, 각기 다른 지역의 주민들이 다양한 제의절차를 절충하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하나 된 마음을 담아 지내고 있다. 산신제는 남성들이 주관을 하며, 여성들은 구경은 올 수 있으나 제의에 참석하지는 못한다. 산신제가 끝나고 나면 참여자들이 함께 음복을 한다. 음복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와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배밭골 산신제는 과거에 머문 제의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이어가는 마을주민들과 화합의 장이 되고 있다. 배밭골 산신제는 마을이 생활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오늘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고유 제례행사로서 민속적 보존가치와 보전의 필요성을 인지하여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릉 마을 한 바퀴 주민실행위원회, 2017, 정릉 마을 한 바퀴, 92-93쪽
  • ‘배밭골 산신제’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 3동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 건너편의 남쪽 아랫마을, 배밭골에서 매년 10월 초하루, 오전 10시경 올리는 산신제이다. 정릉동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 즉 정릉(貞陵)을 품고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정릉 입구 삼거리에서 북악터널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국민대학교 조금 못미처 왼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널따란 소쿠리같이 움푹 파인 지형에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마을 하나가 보인다. 이곳이 정릉3동 배밭골이다. 남에서 동으로 가로질러 가는 북악산 줄기와, 서쪽의 북한산 보현봉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배밭골을 둥지처럼 감싸고 있다. ‘배밭골 산신제’의 유래는, 오래전 마을에서 줄초상이 나서 이를 막아 보고자 지내기 시작했다는 설, 70여 년 전 배밭골에 늑대와 같은 산짐승의 피해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해 지냈다는 설 등이 있으나 정릉동 사람들은 정릉동 여신이 자신들을 도와준다는 전설을 믿으며 매해 산신제를 지낸다. 과거에는 국민대학교 남쪽 정릉3동 용화사 뒤편의 계곡에 있는 코끼리 바위에서 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제를 지낼 수 있는 단을 동사무소에서 만들어 주어 코끼리 바위보다 아래쪽인 현재의 산제단(山祭壇)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산제단은 성북구가 정릉동 산 87-1번지 일대에 조성한 북한산 숲체험장의 가장 안쪽 둔덕 위 커다란 바위 절벽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바위에는 결가부좌한 세 개의 불상이 고부조(高浮彫)로 양각되어 있고, 그 오른편에 목재 데크로 만들어진 단이 있는데 이를 산제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배밭골 산신제’는 마을이 생활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현대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마을의 제례행사이다.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문화정책과, 서울미래유산, 항목명: 배밭골 산신제
  • 정릉3동 배밭골 산신제당은 정릉3동 용화사 뒷편의 약수터와 코끼리 바위 앞에 마련되어 있다. 제단의 형태는 시멘트와 벽돌로 쌓은 제단으로 크기는 가로180cm, 세로100cm가량 된다. 제단 주변에 나무로 계단을 만들고, 장판을 깔아놨다. 양영감이라는 분이 청소를 한다고 한다. 제일은 음력 10월 1일이며, 밤 10시경에 올라 제사를 지낸다. 제의주관은 현재는 배밭골 대동친목회에서 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노인정, 통장 등이 주관하다가 운영이 어려워 친목회가 맡아서 지내고 있다. 제관은 다복하고 유복한 사람을 한 집 선정하여 '도가'라고 칭한다. 도가에 선정되면 제의 전날에 제단에 가서 금줄치고 청소를 한다. 또한 도가는 제물을 준비하고, 제물진설을 하며 제사를 지낼 때도 절을 먼저 한다. 그러나 도가는 제물준비와 절만 하고, 실제의 제물조리는 동네 친목회에서 아주머니 한 분에게 임금을 주고 맡긴다. 이 때 제물을 장만하는 아주머니는 목욕재계하고 제물을 장만한다. 예전에는 제단 옆의 약수터에서 메, 탕, 술을 지어 올렸으나 지금은 미리 준비해서 간다. 제물은 돼지머리, 산적, 과일(대추, 밤, 감, 사과, 배), 떡(백설기), 나물, 정종을 올린다. 제비는 구청보조금과 마을 대동회비를 합쳐서 제를 지내는데, 230만원 가량 든다고 한다. 정릉3동 배밭골 대동친목회가 있어, 매달 만원의 회비를 내며, 이 돈으로 정월에는 떡과 김, 북어 등의 세찬을 돌리며, 보름대잔치를 열기도 한다. 친목계원은 40명 정도이며, 서로 간의 경조사에 참석을 한다. 불참시에는 벌금도 있다. 배밭골에 산신제를 지내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예전에 마을에 쌍초상이 자주 나서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2005, 서울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종합보고서Ⅱ, 372-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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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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