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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시장이 서기 마련이었다. 토지구획정리가 완 료된 1939년 이후부터 공공단지로 지정된 곳에 관공서와 학교가 생기 고, 삼선교에서 돈암교에 이르는 도로 양측에는 일률적인 모습의 2층 한옥상가가 생겨났다. 세 소매상인의 터전이었던 한옥상가는 정면 ‘ㅡ’자형의 2층 한옥 건물 뒤로‘ㄱ’자형 살림채가 이어진 구조다. 1944년에는 13개의 점포가 들어선 공설시장 건물이 세워졌고, 시장건 물 주변 개천을 따라 사설시장이 형성되었다. ‘안시장’이라고 불린 공 설시장보다, 골목주변으로점포와노점이 들어선‘바깥시장’이 훨씬 번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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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돈암교 전차정류소 앞에는 동도극장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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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교와 돈암교 사이에 놓인 그다지 높지 않은 구릉, 그러나 언덕이라기보다는 분명 히 산줄기의 끝이었다. 이 산줄기를 타고, 허연 신작로가 널따랗게 커브를 그리며 돌 아간 산지 일대의 구멍들 속에 그들은 살고 있었다. “사철 여름 같았으면…….”그들 은 조용히 그리고 끈기 있게 이 길고 지루한 겨울과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김동리, 「혈거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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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삼선교 돈암교를 거쳐 우리 동네 앞을 흐르던 개천을 우리는 그때 안감내라고 불다. 안감내는 수량이 풍부하고 맑아서 동네사람들은 큰 빨래만 생기면 그리로 들고 나갔 다. 개천과 나란히 난 천변길은 인도와 차도가 따로 있을 정도로 너 른 한길이고 개천 쪽으로는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어 차가 많지 않 은 당시에는 타동네 사람들까지 일부러 산책을 올 정도로 한적하고 낭만적인 길이었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