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돈암교 전차정류소 앞에는 동도극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 극장은 개봉관과 재개봉관으로 구분되었고 상영 순서와 입장료 액수에 따라 2~5번으로 다시 나뉘었다. 개봉관은 사람이 많은 도심에 있었고 재개봉관은 시 외곽에 들어섰다. 동도극장은 시내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재개봉관으로 3번관에 속하였다. 전국 개봉관에서 모두 상영이 끝난 후에야 재개봉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그만큼 가격도 저렴했다.
문화예술을 향유할 시설도 기회도 많지 않았던 시절 동도극장은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동도극장의 영어약자를 딴 ‘DDT(Dong Do Theater) 극장’이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한 번 극장표를 끊고 들어가면 계속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그 시절, 주머니가 가벼웠던 대학생들은 아침 9시 반에 표를 사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나오기도 했다. 고등학생들도 공짜표를 얻거나 돈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학생 모자를 감추고, 교복의 흰 깃을 옷 속에 접어 넣고 어른인척 하며 동도극장으로 향했다. 동도극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만들었고, 젊은이들이 꿈을 키웠으며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였다. 1981년 문을 닫은 이후 가구점의 창고로 쓰이다 1985년 완전히 상가로 바뀌었다. 현재 외환은행 삼선교 지점이 있는 건물이 동도극장의 자리이다.
개봉관에서 실컷 상연한 다음에야 차례가 돌아올망정, 동도극장은 명화만 틀었지. 거기서 <미녀와 야수>도 보고, <자전거 도둑>도 보고, 마르셀 까르네 감독의 <인생유전>도 보았지. 새파란 나이의 우쭐함으로, 다 된 인생들에 대한 가련한 감동을 어쩌면 자네와 함께 그때 나누었는지도 몰라. 극장 건너 굴 속 술집, 일제시대 방공호에서 뒤풀이를 했던가? 안 했던가? 지금처럼 값이 오만하지 않았던 굴비를 안주 삼아.
최일남, ⌜돈암동⌟ 현대문학, 20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