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망봉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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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정 문화재
장소 종교시설
유물 건축물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산신각이다. 동망봉은 보문동과 숭인동에 걸쳐 있는데, 조선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이 유배가서 죽은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기 때문에 동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신각은 산신을 제사하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언제,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15세기경 호랑이가 출몰하여 인명과 가축의 피해가 심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산제(山祭)를 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전한다. 그 일대에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숭인공원으로 이전·복원하였는데 소나무로 엮은 가로 2칸, 세로 1칸으로 구성되었으며, 안에는 동망봉 산신령과 정순왕후 송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지금도 매년 10월 산신제를 열고 이곳에서 마을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고 있다.
보문동
  • 동망봉 산신각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3)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4)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5)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6)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7)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8)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9)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0)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1)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2)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3)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4)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5)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6)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7)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8)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9)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0)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1)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3)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4)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5)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6)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7)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8)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35)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36)
  • 2019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37)
  • 동망봉 산신각 현판(1)
  • 동망봉 산신각 현판(2)
  • 동망봉 산신각 현판(3)
  • 2013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7)
  • 2013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6)
  • 2013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5)
  • 2013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4)
  • 2013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3)
  • 2013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2)
  • 2013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1)
  • 2013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8)

기본정보

시기

주소

  • 주소: 02874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6가 458-1 (동망산길 147)
  • 비고: 보문동 6가 209-92 동망각(2013년 이전 주소)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 비지정 동망산신각 東望山神閣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동유(洞有) 소재지 : 서울 성북구 보문동 6가 209-92 조선초 단종비(端宗妃) 정순왕후 송씨가 매일 조석으로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冥福)을 빌었던 곳에 산신을 제사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청룡사 동쪽 앞에 우뚝 솟은 바위산을 동망봉이라 하는데, 이 곳에는 숭인공원(일명 동망산공원)이 있다. 숭인동과 보문동의 경계가 되는 동망산 서쪽 부분은 일제 때부터 광복 후까지 채석장으로 쓰였으므로 산의 반쪽은 사라져 절벽이 되었다. 단종비(端宗妃) 정순왕후 송씨는 현재 청룡사 자리인 정업원(淨業院)에서 시녀와 같이 지내면서 매일 조석으로 이 산에 올라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冥福)을 빌었기 때문에 동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 당시 동대문 밖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된 단종과 눈물의 이별을 한 송씨는 영월 쪽을 바라볼 수 있는 동망봉 부근에서 머리를 깎고 희안(希安)・지심(智心)・계지(戒智) 세 시녀를 데리고 정업원 암자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지냈다. 이에 조정에서는 근방에 집을 지어주고, 이 곳을 영빈정동(英嬪貞洞)이라 부르게 했으나 송씨는 끝내 그 집에 들지 않고 정업원에 머물렀다. 송씨는 아침저녁으로 동망봉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평안을 빌었으나 헤어진 지 4개월 뒤인 세조 3년(1457) 10월 4일, 영월에서 노산군이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부터 송씨는 동망봉에 올라 단종의 고혼(孤魂)이 헤매는 영월을 바라보며 명복을 빌었다. 조선후기 영조 47년(1711)에 영조는 창덕궁에 갔다가 현재 동대문구 숭인동인 연미정동(燕尾汀洞)의 정업원을 들러 단종비 송씨의 옛일을 물어보았다. 이 때 전 참판(參判) 정운유(鄭運維)가 불려 와서 말하기를 세조가 송씨의 의지할 곳이 없음을 측은히 여겨 성안에 집을 마련하여 주고자 했으나 송씨가 동대문 밖에서 동쪽을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에 거처할 것을 원하였으므로 재목을 내려 집을 꾸민 것이 정업원이라고 했다. 영조는 지난날의 일을 듣고 나서 친히 청룡사 자리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글을 써서 비석을 세우게 하고, 또한 ‘동망봉(東望峯)’이란 석 자를 써서 정순왕후 송씨가 올랐던 바위에 새기게 했다. 그러나 일제 때 채석장이 되면서 바위가 깨어져 나가 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재는 동망봉 정상 주위에까지 주택이 밀집하여 바위산 봉우리의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는데 정순왕후가 영월로 귀양을 간 노산군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곳에는 동망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이 산신각은 언제, 누가 세웠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15세기경 호랑이가 출몰하여 인명과 가축의 피해가 심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산제(山祭)를 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전한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10월 초하룻날이면 이 산신각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참고자료 : 문화재관리국, ≪문화유적총람≫, 1977.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160쪽
    동망산신각은 재개발로 인해 동망산길 147(보문동 6가 209-92)로 이전되었다.
  • 그런데 이 동망봉의 동쪽 普門洞 6가 지역에는 「洞望山神聞」이 있어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마을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제사를 드린다. 산신각이 있는 곳은 단종이 영윌로 귀양 가 있을 때 단종의 대비마마인 顯德王后 權氏(단종왕비 定順王后 宋氏의 誤傳인 듯)가 단종의 無事歸還을 기원하던 곳이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88쪽
  • 그리고 이 동망봉의 동쪽 보문동 6가 지역에는 「東望山神閣」이 있는데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마을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제사를 드린다, 산신각이 있는 곳은 일찌기 端宗이 영월로 귀양 가 있을 때 단종의 모친 현덕왕후가 아들의 無事歸還을 기원하던 곳이라고 주민들이 말하는데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은 뒤 바로 세상을 떠났으므로 端宗紀宋氏가 기원하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23쪽
  • #동망봉_산신각_가는_길 점심식사는 보문역 사거리 근방에 있는 중국음식점인 안동반점에서 먹기로 정했다. 1970년 개점 이후 48년 동안이나 영업을 해오고 있는 보문동의 이름난 음식점이다. 나와 M은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짬뽕을 먹으며 다음 목적지에 대해 의논을 시작했다. 날씨가 더우니 보문동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동망봉 산신각에 들른 다음 차근차근 내려오면서 다른 장소들도 찾아보자는 것으로 의견이 수렴됐다. 그런데 산신각은 어디에 있나? 2014년엔가 산신각이 있는 마을이 재개발되면서 다른 데로 옮겨지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그 후 찾아가 본 적은 없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에서 검색해 봐도 찾을 길이 없다. 별 수 없이 보문동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새로 생긴 보문동 자이 아파트 101동 옆, 그러니까 동망봉 숭인공원 내 공공화장실 조금 못 미처 왼쪽으로 빠져 내려가는 길 옆에 있다는 친절한 설명. 자이 아파트는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도 동망봉 숭인공원은 예전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으니 금방 찾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 다행이었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5-26쪽
  • #동망봉_산신각 동망봉 산신각은 아파트 단지 옆 넓지 않은 곳에 남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소나무로 엮은 가로 2칸 세로 1칸짜리 몸체 위에 단정한 맞배지붕을 올렸다. 한자로 ‘동망각東望閣’이라 쓴 현판의 글씨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문은 가운데 큰 문과 그 왼쪽으로 작은 문 하나가 달렸다. 뒤편의 자이아파트가 완공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라 목재의 결과 색이 아직 살아있다. 안에는 동망봉 산신령과 정순왕후 송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을 것이어서 문을 열고 보려고 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들은 다가오는 10월 산신제가 있는 날 활짝 열릴 것이니 그때 다시 오면 내부 구경도 할 수 있을 것이다. M은 가져온 DSLR 카메라로 산신각 주위를 돌면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나 나는 사진 찍을 마음이 별로 나지 않는다. 없어진 옛 산신각을 찍어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새로 지은 산신각이야 앞으로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담아 둘 기회가 많을 것이나 없어진 산신각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지난 2013년 10월 보문동 산신제를 취재하면서 제사 때 딱 한 번 방문하여 찍어둔 사진이야 있지만 그 사진들이 옛 산신각의 분위기를 온전히 전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시는 이미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산신각을 두른 담장 일부는 헐려나갔고 주변의 주택들이 대부분 철거되어 산신각은 사막 같은 황량한 풍경 속에 위태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부랴부랴 사진을 찍어두긴 했지만 그 사진들은 옛 산신각의 본 모습을 담아내지는 못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언덕바지 빼곡한 주택들 사이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호위무사 삼아 엄숙하게 앉아서 보문동을 내려다보는 이끼 낀 옛 산신각의 모습은 지금은 어느 누구의 사진첩 혹은 기억 속에나 존재하리라. 그리고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유추할 수 있는 나에게 지금 이 아파트 옆 인적 드문 공지에서 셋방살이하고 있는 듯한 새 산신각은 뭔가 허전한 느낌을 준다. 차지한 평수가 넓어지고 더 좋은 목재로 지은 튼튼한 한옥이라 할지라도, 결정적으로 이 장소에는 시간의 원근이 없다. 오직 현재, 현재만 있을 뿐이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7-28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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