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
장소 인문지리
성북구 길음동과 하월곡동 그리고 강북구 미아동 일대의 옛 이름이다. ‘미아리’라는 지명은 ‘미아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한성부 동부 숭신방 동소문외계 미아리로 지칭되면서부터였다. 1949년 성북구가 설치되면서 미아리가 성북구 관할이 되었다가 1950년 동명 개정에 따라 미아동으로 바뀌었다. 이후 행정구역 개편을 거치면서 미아동은 도봉구에 속했다가 현재 강북구 관할로 되어 있다. 한편 돈암동에서 길음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미아리고개인데, ‘미아리’라는 표현이 미아리고개를 가리키기도 한다.
길음동 월곡동
  • 대한뉴스 제399호 '어린이 빙상경기'
  • 건강한 약국 이미선 약사 1: 이미선 약사의 성북구에 대한 기억, 그리고 현재
  • 건강한 약국 이미선 약사 2: 건강한 약국과 미아리 텍사스 성매매 집결지 이야기
  • 미아리 도로공사(40)
  • 미아리 도로공사(39)
  • 미아리 도로공사(38)
  • 미아리 도로공사(37)
  • 미아리 도로공사(36)
  • 미아리 도로공사(35)
  • 미아리 도로공사(34)
  • 미아리 도로공사(33)
  • 미아리 도로공사(32)
  • 미아리 도로공사(31)
  • 미아리 도로공사(30)
  • 미아리 도로공사(41)
  • 미아리 도로공사(42)
  • 미아리 도로공사(43)
  • 성북구 미아리 도로 확장 공사
  • 성북구 미아리 도로공사(6)
  • 성북구 미아리 도로공사(5)
  • 성북구 미아리 도로공사(4)
  • 성북구 미아리 도로공사(3)
  • 성북구 미아리 도로공사(2)
  • 성북구 미아리 도로공사(1)
  • 미아리 지역 수해 복구 현장(1967)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21)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5)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4)
  • 미아리 확장도로 개통식
  • 미아리 도로공사(29)
  • 미아리 도로공사(28)
  • 미아리 도로공사(27)
  • 미아리 도로공사(1)
  • 미아리 도로공사(2)
  • 미아리 도로공사(3)
  • 미아리 도로공사(4)
  • 미아리 도로공사(6)
  • 미아리 도로공사(7)
  • 미아리 도로공사(8)
  • 미아리 도로공사(9)
  • 미아리 도로공사(5)
  • 미아리 도로공사(12)
  • 미아리 도로공사(11)
  • 미아리 도로공사(10)
  • 미아리 도로공사(13)
  • 미아리 도로공사(14)
  • 미아리 도로공사(26)
  • 미아리 도로공사(25)
  • 미아리 도로공사(24)
  • 미아리 도로공사(23)
  • 미아리 도로공사(22)
  • 미아리 도로공사(21)
  • 미아리 도로공사(20)
  • 미아리 도로공사(19)
  • 미아리 도로공사(18)
  • 미아리 도로공사(17)
  • 미아리 도로공사(16)
  • 미아리 도로공사(15)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20)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9)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8)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7)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6)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2)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3)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4)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5)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6)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7)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3)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9)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0)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1)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8)
  • 돈암동, 미아리 간 도로확장공사 기공식(12)
  • 건강한 약국 내부(7)
  • 건강한 약국 내부(8)
  • 건강한 약국 내부(9)
  • 건강한 약국 내부(10)
  • 건강한 약국 내부(11)
  • 건강한 약국 내부(12)
  • 건강한 약국 내부(13)
  • 건강한 약국 내부(14)
  • 건강한 약국 내부(15)
  • 건강한 약국 내부(6)
  • 건강한 약국 내부(5)
  • 건강한 약국 내부(4)
  • 건강한 약국 외부(1)
  • 건강한 약국 외부(2)
  • 건강한 약국 외부(3)
  • 건강한 약국 외부(4)
  • 건강한 약국 외부(5)
  • 건강한 약국 내부(1)
  • 건강한 약국 내부(2)
  • 건강한 약국 내부(3)
  • 대한뉴스 제399호 '어린이 빙상경기'
  • 건강한 약국 이미선 약사 1: 이미선 약사의 성북구에 대한 기억, 그리고 현재
  • 건강한 약국 이미선 약사 2: 건강한 약국과 미아리 텍사스 성매매 집결지 이야기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彌阿里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길음동, 하월곡동, 강북구 미아동 일대

근거자료 원문

  • 미아리는 지금의 성북구 길음동과 하월곡동 그리고 강북구 미아동 일대를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성북구 돈암동에서 길음교로 넘어가는 길, 즉 미아리고개를 넘어서 미아삼거리를 지나 의정부 방향으로 가는 길을 말한다. 현재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혜화문惠化門, 즉 동소문東小門 밖의 지점인 삼선평三仙坪을 지나 아리랑고개에서부터 시작하는 지명이 바로 미아리라는 곳이다.
    강성봉 외 4인, 2013, 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191쪽
  • 이 미아리라는 지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지방제도상의 커다란 변천이 있었던 1894년 갑오개혁 이후였다. 당시 미아리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 동소문외계 미아리로 지칭되었다. 그러나 1911년 4월 일제는 서울의 행정구역을 도성안은 5부, 도성 밖은 8개 명으로 나눈 후 혜화문을 기점으로 도성 안쪽은 숭신방, 도성 밖은 숭신면으로 나누었다. 이어서 1914년 경기도 도내 각면의 명칭과 구역이 새로 제정될 때 미아리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가 되었다. 이는 이 지역이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미아리라 지칭되는 배경이 되었다. 본래 미아리 일대의 거주 인구는 100호 정도로서 한 호戶 당 5명으로 계산한다면 대략 500명 정도가 거주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앞서의 갑오개혁 이후 서울의 발전과정 속에서 대거 인구 유입이 있었다. 1936년 일제 경성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한다면 1936년 1만 명을 상회했고, 1937년부터 진행된 돈암정 구획정리사업의 완공으로 더 많은 인구가 미아리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아리랑고개를 넘기 전, 즉 지금의 성신여대입구 역 부근에는 당시 전차 종점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는 미아리 지역에 대거 인구가 유입되는 한 원인이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의하면 1943년 미아리, 정릉리, 월곡리에는 총 호수가 6천호, 인구가 6만 명이나 되고, 매일40여 명의 인구가 증가하곤 했다고 한다. 이곳으로 몰려든 이유는 주택신축이 자유롭고, 집세도 싼 편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생활은 농업이나 축산업보다는 대개 서울 안에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강성봉 외 4인, 2013, 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192-193쪽
  • 시내 일부 동명 개정 서울시에서는 15일부로 시내의 일부 동명을 개정하는 동시에 새로 편입된 지역의 동명을 다음과 같이 시조례 제10호로 개정 실시하였다. 성북구 석관동(석관리), 상월곡동(상월곡리), 하월곡동(하월곡리), 장신동(장신리), 번동(번리), 우이동(우이리), 수유동(수유리), 미아동(미아리). (이하 생략) 동아일보 1950. 3. 17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18
  • 내가 태어난 곳은 광화문 근처 내수동이지만 네 살 때 미아리로 이사한 뒤로는 미아리 일대가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였다. 당시 미아리는 온통 산과 논밭, 개울 뿐이었고 인가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유치원은 미아리고개를 넘어 덕성유치원까지 가야했고 국민학교는 돈암동까지 가야 했다. 학교가 멀어서 애를 먹긴 했지만 여름에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고 개울에선 붕어와 가재를 잡는 재미가 그런 불편을 보상해 주었다. 겨울엔 꽁꽁 얼어붙은 앞 개울에서 온종일 팽이를 돌리고 썰매를 타는 것이 일과였다. 내 어린시절은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된 생활이었다.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08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1-30

이 자료의 하위 자료 보기

관련 마을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