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을과 인연을 맺다
지역운동가로서 자기의 현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 지역의 주민들과 밀접하지 않고, 그들에 의거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관념운동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기에 성북센터에서 활동하는 초기에 필자의 현장이 어디가 될 것인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던 와중, ‘찾아가는 마을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길음1동 소리마을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소리마을은 ‘길음’이라는 단어를 한글로 그대로 풀어내 지은 동네 이름이었다. 한눈에 들어왔던 특징은 주변 사방은 온통 뉴타운 지대로서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소리마을은 일반 주택지로서, 일종의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필자는 이 동네에 처음 발을 들여 넣는 순간, 어릴 적 살았던 무악재 골짜기의 ‘추억의 단면’을 보는 느낌을 갖기도 했고, 비약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가 눈앞에 재연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이 동네와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앞으로 필자의 현장이 개발이냐 개발반대냐 하는 투쟁의 현장 속에 놓이지 않을까 하는 앞서나간 우려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행사장인 길음중앙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사라졌다. ‘찾아가는 마을학교’는 뉴타운의 존치지역인 소리마을이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활동을 통해 뉴타운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을을 재생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장이었고, 이 지역에 건립될 복지시설을 어떻게 하면 주민들 스스로의 역량으로 운영할 것인지 토론하는 자리였다. 거기서 나오는 지역주민들의 에너지는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강한 현장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