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
장소 인문지리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일대에 있는 성매매 집결지이다. 1968년 종로 3가의 집창촌 철폐를 계기로 형성되어 이후 ‘미아리 텍사스’로 불리게 되었다. 미아리 일대의 집창촌은 처음에 정릉천 개천가를 따라서 500여 미터 정도 늘어서 있는 속칭 ‘하꼬방’ 같은 선술집의 형태였다. 1970년에 70여 개 무허가 대포집이 밀집되어 있었고, 1976년에는 30동의 건물에 100여 개의 무허가 주점들이 있었다. 1978년부터 월곡천과 정릉천의 복개공사가 진행되었고, 천변 좌우로 있던 술집들 중 종암동 쪽 술집들은 철거되고, 월곡동 쪽으로만 남게 되었다. 현재 ‘미아리 텍사스’는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어 대규모 주상복합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월곡동
  • 건강한 약국 이미선 약사 2: 건강한 약국과 미아리 텍사스 성매매 집결지 이야기
  • 건강한 약국 이미선 약사 1: 이미선 약사의 성북구에 대한 기억, 그리고 현재
  • 길음2동 성매매 집결지 골목
  • 하월곡동 88번지일대 성매매 집결지
  • 길음2동 성매매 집결지 일대(길음역 주변)
  • 길음2동 성매매 집결지 일대 2(길음역 주변)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전경(1)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전경(2)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전경(3)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입구(1)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입구(2)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입구 측면(1)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입구 옆 골목
  • 월곡텍사스대책회의
  • 건강한 약국 내부(6)
  • 건강한 약국 내부(2)
  • 건강한 약국 내부(3)
  • 건강한 약국 내부(4)
  • 건강한 약국 내부(10)
  • 건강한 약국 내부(9)
  • 건강한 약국 내부(5)
  • 건강한 약국 내부(7)
  • 건강한 약국 내부(8)
  • 건강한 약국 내부(14)
  • 건강한 약국 내부(13)
  • 건강한 약국 내부(12)
  • 건강한 약국 내부(15)
  • 건강한 약국 내부(11)
  • 하월곡동, 길음동 일대(1)
  • 하월곡동, 길음동 일대(2)
  • 길음역환승주차장에서 본 길음동, 하월곡동 일대(2)
  • 하월곡동 일대 방역소독
  • 건강한 약국 내부(1)
  • 건강한 약국 외부(5)
  • 내부순환로와 길음동, 월곡동 일대
  • 건강한 약국 외부(4)
  • 건강한 약국 외부(3)
  • 건강한 약국 외부(2)
  • 건강한 약국 외부(1)
  • 하월곡동 건강한약국
  • 동소문로40길 일대(3)
  • 동소문로40길 일대(2)
  • 동소문로40길 일대(1)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_영업소(2)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_영업소(1)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_미성년자 출입금지 안내판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_식당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_천막
  • 건강한 약국 이미선 약사 2: 건강한 약국과 미아리 텍사스 성매매 집결지 이야기
  • 건강한 약국 이미선 약사 1: 이미선 약사의 성북구에 대한 기억, 그리고 현재
  •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_영업소(3)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미아리 텍사스, 미아리 집창촌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
  • 비고: 1960년대 말 형성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1동 88번지

근거자료 원문

  • 성북구 길음동 일대 방범순찰 강화해야 6.25 이후부터 난민과 철거민들이 정착한 성북구 길음동. 무질서하게 난립한 주택들은 좁고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만들었고 시장상가와 술집 여관 등이 제멋대로 들어서있어 각종 도난사건, 폭력사건, 강력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주민들은 큰 불안을 안고 있다. (중략) 더구나 이 지역은 속칭 미아리 텍사스 골목을 비롯한 각종 술집이 줄을 이어 있는 탓인지 어두워지면 그야말로 폭력이 판을 친다. 이곳 주민 이상숙 부인(28)은 “밤만 되면 무서워 밖에 나가기조차 두렵다”면서 “접대부들의 괴성과 추태를 어린이들이 흉내내고 있다”며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이같은 각종 범죄가 발생해도 경찰의 활동은 소극적. 이 지역을 관할하는 길음파출소 소장 김용덕 경위(38)는 “얼마되지 않는 면적에 주민도 2만 2천에 불과하지만 워낙 골목이 좁고 어두운데다 광고물 단속 가격표시 위반업소 단속 등 각종 업무에 시간을 빼앗겨 방범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이규석기자> 동아일보 1976. 7. 10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48
  • 종삼 ‘밤의 여인들’ 미아리로 이주 서울의 홍등가로 이름 높던 세칭 종삼 일대의 적선지대에 불이 꺼져가고 있다. 일제 단속 H아워인 4일 상오 5시 현재 남아있는 4백여 윤락여성들은 이날하오 5시까지 시립영등포부녀보호소에 강제 수용됐다. 단속 전날인 3일 하오 종로 3가 일대 골목마다엔 전축이며 캐비닛 등을 헐값에 사겠다고 몰려든 고물장사들이 붐비고 밤의꽃이 세들던 대부분의 집들은 빈집인데다 일부에서는 빌딩을 지으려고 허무는 둥 새바람이 분다. 그러나 서울시의 벼락치기 폐쇄 조치로 몸값으로 장만했던 TV, 전축, 옷장 등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마지막으로 떠날 채비를 차리고 있던 박모 양(28. 인의동)은 “갑작스런 종삼정화계획으로 곗돈은 잘리고 월부침대는 빼앗겼다”고 눈물이 글썽했다. “이런 직업(?)으로 세동생의 공부를 시켜왔다”는 양모 양(25. 돈의동)은 지난 5월 6만6천원짜리 월부 전축을 들어다 그동안 매달 7천원씩 2만8천원을 물었는데 종삼폐쇄보도가 있은 후 지난달 28일 전축상회에서는 전축을 그대로 회수해 가버렸다고 울상이고 20만원짜리 계를 매달 1만2천원씩 1년 동안 물어왔다는 주모 양(26. 돈의동)은 동료들이 뿔뿔이 헤어지는 바람에 자립 밑천을 하루아침에 날렸다고 통곡이다. “포주에게 진빚은 무효화한다”는 당국의 지시와는 달리 악착같은 포주들은 돈 대신 이부자리 등 가구를 압류하는 소동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으나 경찰은 모른척하고 있다는 게 김모 양(27. 봉익동)의 하소연이다. 종로3가 일대의 1천6백여명(시청 집계 8백 명)의 윤락여성들 중 8할 이상은 이미 정릉, 미아리, 상계동, 양동 등으로 흩어지고 일부는 도심지 여관을 무대로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는 것. 아직 떠나지 않은 윤락여성들은 포주와의 채권 무효화 선언에 따른 시비가 벌어져도 관할 파출소 등은 얼씬도 하지 않는 다는 것으로 당국의 호릿한 종삼 폐쇄 조치를 비난했다. 문제의 종삼지역은 이조말 아전 등 말단관리들이 살던 주택지, 이조의 몰락과 함께 술집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자 혼란한 사회속에 밤의 여인이 등장했고, 6.25를 겪으면서 흥등가로 뿌리를 박았다. 5.16이후인 지난 62년 이들 윤락여성을 선도하기 위해 적선지역으로 책정, 일종의 공창으로 윤락지대의 대표 구실을 해왔다. 경향신문 1968. 10. 4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19
  • 매춘여성 사진 전시회 지난달 28~31일 이화여대 교정에서는 여대생과 매춘여성들의 사진들이 나란히 걸린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보라. 국적 잃은 문화 속에 신음하는 우리 여성들의 모습을!” 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이대 총학생회 여성부가 기획, 대학가 여대생들의 모습과 서울 미아리 ‘텍사스촌’ 등의 매춘 현장을 직접 찍어 마련한 것. 성이 상품화 되어 있는 여성문화의 현실에 대해 반성할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했다는 이 전시 사진들의 바로 옆 의견을 적는 벽보판에는 ‘슬프다, 가슴아프다, 창피스럽다는 생각을 떨치고 문제를 제기해 준 것이 너무 고맙다’, ‘너무하다. 떼내라’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겨레신문 1988. 6. 1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20
  • 1990년 미아리 텍사스 취재기<서울텍사스 「不夜特區(불야특구)」에도 消燈(소등)신호/深夜(심야) 규제 재개발타고 轉業(전업) 채비/거세진 「성(性)의 商品化(상품화)」 비난 ...88땐 觀光名所(관광명소)로 꼽히기도> 서울 성북구 하월곡1동 88번지. 시내방면에서 미아리 고개를 넘어 내려가 오른편 화랑로로 꺾어든 뒤 곧바로 차도 왼편을 따라 종암동사거리까지 약 1.2km 동안 이어지는 이 일대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서울 북동지역의 일개 최소 행정구역일 뿐이다. 겉모습이 거의 똑같은 2~3층짜리 한옥과 양옥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대낮에는 건물과 차도 사이를 차단하는 높이 2.5m의 측백나무 숲에 적당히 은폐된데다 사람마저 별로 없어 아무런 움직임도 느낄 수 없지만 주위가 어둠으로 휩싸이기만 하면 그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별천지로 변한다. 노출이 심한 똑같은 홈드레스를 유니폼처럼 입은 짙은 화장의 젊은 여성들이 5~10명씩 쇼윈도 가에 얌전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이미 다른 곳에서 상당히 취기가 오른 손님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킬킬거리기도 한다. 여성들의 야한 드레스 각 업소에서 뿜어대는 강렬한 조명, 좁은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는 수많은 젊은 내․외국인들은 서로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금방 이곳은 북부 서울 최고의 향락지대로 탈바꿈해버린다. 속칭 미아리 텍사스. 한강 이남의 천호동 텍사스와 함께 남북 텍사스를 이루며 서울의 관광 명소로까지 발전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윤락가가 아니다. 이 일대는 이제 우리사회 전반의 퇴폐향락화, 비도덕화에 발맞춰 돈이면 어떤 일이라도 가능한 유전 무소불능지대로 정착하고 있으며 여성의 몸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상품화하는 반인간적 경제구역이기도 하다. 최근 여성 단체들의 주도로 매춘행위를 윤락여성 개인의 도덕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하월곡동 천호동 일대의 실태를 통해 적선지대의 윤락행위의 현주소와 문제점 대책 등을 살펴본다. 주말인 지난 10일 밤 직장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미아리 텍사스에 갔다온 중소 무역회사 신입사원 권오준씨는 아직도 그날의 원색의 낱말들 난무. 이날 사무실주 변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꽤 취기가 들도록 마신 권씨는 신입사원 환영식을 해준다는 선배들과 함께 그곳에 들렀는데 대학시절 귀동냥으로 들었던 미아리 텍사스의 진귀한 즐거움을 기대하며 정해진 코스를 밟았으나 즐겁기는커녕 경악과 수치심과 자기 모멸감 나아가 사회에 대한 일종의 분노마저 느끼고 돌아왔다. 권씨는 우선 자기 동생 또래의 젊은 여성들이 수천 명 씩 한 장소에 모여 거대한 매춘단지를 이루고 있는 이곳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권씨가 정작 충격을 받은 것은 삐끼의 안내로 ××정이란 업소에 들어갈 뒤부터였다. 일행의 수만큼 방안에 들어온 아가씨들은 옷을 모두 벗은 채 자기소개를 하는 신고식과 함께 대중가요의 가사를 외설적으로 바꾸고 ××정이란 구절을 삽입한 주제가를 합창한 뒤 각자 묘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권씨는 신체의 특정부위로써만 진행되는 이 묘기에 전혀 즐겁지 않았고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선배들에게 묘한 반항심을 느꼈다. 지난 60년대 중엽부터 형성된 미아리 텍사스는 서울역, 청량리역, 영등포역, 종로3가 등과 더불어 서울의 대표적인 윤락가였다. 그러나 지난 83년 이곳을 관통하는 월곡천의 복개 공사 이후 대대적인 새 단장과 함께 어느 곳에서도 보기 드문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윤락행위 직전에 거행되는 신고식과 묘기 연출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로 인해 미아리는 다른 윤락가와는 다른 독특한 명성과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한국을 찾는 많은 외국 관광객과 바이어 등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특히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때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폭발적인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현재 하월곡동 일대에는 1백80여 개 업소가 영업 중인데 업소당 작은 곳은 3~5명, 평균 10명의 여성들을 고용하고 있다. 외국인 전용으로 알려진 ㅅ, ㅁ, ㅊ 등의 업소는 30여 명의 여성을 두고 있어 윤락기업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직업소개소를 통해오게 되는데 남대문로 일대에 있는 직업소개소가 대표적인 창구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개 딴 곳에서 1, 2차 술자리를 거친 뒤 오게 마련인데 혼자오는 이는 드물다는 것이 아가씨들의 설명이다. 다른 윤락가와는 달리 미아리 텍사스는 철저한 정찰제를 고수하고 있는데 맥주 안주를 포함한 술 한 상과 묘기 공연 및 실질적인 윤락행위 모두를 포함해 1인당 2만원이면 돼 가장 저렴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묘기가 선보일 때마다 들어가는 팁과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뒤의 수고료까지 포함하면 1인당 4만~5만원씩의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이곳 업소들의 소유주는 미아리에서 뼈가 굵은 여성들이 독립해서 창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윤락업과는 별 관계 없는 이들이 순수한 투자목적으로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각 업소는 대부분 현역에서 물러난 여성이나 현역중 최고참 중 1인을 마담으로 두고 있는데 이 마담이 경영전권을 행사 철저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원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 여성들은 한달에 업주로부터 25만원 내외의 월급을 받는데 팁으로 버는 돈이 훨씬 많아 70만~80만원에 이르고 있다. ㄷ정에서 3년째 일을 하고 있는 문모 양은 업주측이 드레스 및 숙식을 제공하는데다 낮에는 잠자기 바빠 돈을 쓸데가 거의 없다면서 동료들 대부분이 한 달에 70만원 정도 저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입이 높은데다 인신매매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드높은 상태여서 이전처럼 강제납치 구속감시 등의 형태는 거의 사라졌다고 업주들은 말하고 있다. ㅈ정 업주 양모 씨는 이곳 아가씨들은 전부 자발적 취업상태라면서 요즘은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그만 두고 딴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취객들의 행패와 여성들의 자위권 발동 등으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으나 후불제에서 선불제로 바뀌고 당국의 순찰 감독이 강화된 이후부터는 거의 뜸한 상태. 관할 종암경찰서 월곡파출소 측은 이곳에 4개의 초소를 설치, 구청․교육청․ 청소년선도지도육성회 등과 함께 순찰업무를 맡고 있는데 파출소장 인노수 경위는 요즘은 무전취식 폭력 등의 사건이 거의 없어졌다고 귀띔했다. 한 편 미아리의 지금까지의 호황을 위협하는 요소가 최근에 등장해 이곳 사람들을 초조하게 하고 있다. 심야영업 제한 조치와 길건너 재개발 아파트 단지 건립이 바로 그것. 심야영업 단속 이후 많은 업소들이 간판을 아예 없애버리거나 손바닥만한 포터블 간판을 내거는가 하면 밤 12시 이후에는 커튼을 치고 영업을 계속하는 등 나름의 자숙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이 정작 불안해 하는 것은 재개발 아파트의 건립.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돈암동 2-2지구 현대아파트가 내년초 완공되면 입주자들의 거센항의가 예상되는데 이에 몇몇 업소들은 최근 전업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ㅂ 업주 백모씨(40)는 아파트 주민들이 틀림없이 텍사스 철거를 요구할 것으로 보여 이를 계기로 딴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강북 미아리와 함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 423번지. 속칭 천호동 텍사스도 미아리와 거의 비슷한 실정이다. 서울시로 편입되기 이전부터 상업중심지였던 이곳에는 예부터 이른바 니나노집들이 밀집해 있었는데 미아리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형태의 윤락가가 이루어졌다. 전성기였던 88올림픽 전후에는 6백여 명의 여성이 몰려있기도 했던 이곳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113개였던 업소가 눈에 띄게 감소 현재 87개 업소에 2백 60여명의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여성들의 임금이 미아리보다 훨씬 높아 업주들은 심한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는데 업주들의 모임인 업소자율정화위원회회장 김동호씨는 심야영업단속이후 매상이 격감 종업원 월급주기도 힘들다면서 올 연말이면 많은 업소들이 문을 닫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업소들의 마지막 까지 가버린 윤락양태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개인의 부도덕보다는 사회전체의 구조적 병폐의 노출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여성 단체 연합 박난숙 간사는 70년대 이후 가속화된 3차 산업의 기형적 성장 및 전체 산업 구조의 파행성이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면서 역대 정권을 비롯한 사회 상부구조의 부도덕성도 웬만한 부도덕을 합리화하는 요인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박 간사는 또 여성을 비하하는 봉건적 가치관과 여성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적 발상이 교묘히 결합한점 정상적인 여성인력의 고용이 어려운점등도 그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간사는 이어 이같은 문제점의 극복방안으로는 산업구조를 적절히 재조정 향락 퇴폐로 유입되는 돈을 막고 매춘행위등에 대해서는 철저한 단속을 하며 언론매체 사회단체등에서 계몽과 선도를 통한 윤리성의 함양 등을 제시했다. YWCA 인신 매매신고센터 상담원 최순옥 씨는 최대한의 말초 신경 자극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폭발적 수요가 이같은 도덕적 마비 현상을 불렀다면서 남성들에게만 무조건 관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성윤리도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윤락행위 방지법등 현행법이 윤락행위의 예방 선도는 물론 처벌조항도 미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보사부 김명숙 부녀복지과장은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미성년자등에게 윤락행위를 강요하는 경우 등은 처벌을 강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성심여대 성민선 교수는 윤락행위의 사전예방 방안에 대해 가족법과 같은 남녀불평 등법의 개정으로 남녀간지배 종속논리를 타파하고 윤락행위를 단속 상담 선도하는 일에 종사하는 인력을 대폭 늘리는 한편 이들을 전문화시켜야 윤락 그 자체를 줄일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손동우 기자) 경향신문 1990.03.28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21
  • ‘미아리텍사스’ 정화 대회 서울의 대표적 윤락가인 성북구 하월곡1동 88번지. 속칭 ‘미아리텍사스’ 일대 업주 3백여 명은 13일 오후 3시 자율정화추진위원회 주최로 결의대회를 갖고 미성년자 자체색출, 호객행위 금지, 가출소녀나 인신매매 자진신고, 영업시간 준수 등 5개항을 결의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4일부터 ‘미아리 텍사스’ 지역에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경찰 2백여 명을 상주시키며 출입자 통제와 불법영업 단속을 강화해왔다.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23
  • 「미아리 텍사스」사라진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88 일대 속칭 「미아리 텍사스」가 사라진다. 동대문구 청량리 「588」, 강동구 천호동 423 「천호동 텍사스」, 영등포역 주변 등 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홍등가로 흥청거리던 미아리 텍사스촌이 속속 들어서게 될 고층빌딩에 밀려 97년쯤부터 서서히 없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최근 성북구가 이 일대 7만7천여 평을 일반주거지역 등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을 변경하는 내용의 도시계획 공람 공고를 했다고 6일 밝혔다. 구는 또 이 일대를 서울 동북부 지역의 중심지로 키우기 위해 상세계획구역으로 지정해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다. 상세계획구역으로 지정되면 건축물의 용도 등이 크게 제한되고 도시 기능이 재배치돼 1~2층짜리 소규모 홍등가가 사실상 발붙일 수 없게 된다. 구는 이곳을 대대적으로 정비, 고층 빌딩촌으로 재개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구 관계자는 “상세계획구역으로 지정하려면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1~2년 정도 의 기간이 걸린다”면서 “97년 쯤부터는 이일대의 홍등가 기능이 크게 축소돼 점차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아리 텍사스」는 65년 정부의 시내 중심가 무허가 유흥업소 철거에 따라 도심에서 쫓겨온 업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형성됐으며 70~80년대 거치면서 서울의 대표적인 홍등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이 일대에 주택재개발사업으로 아파트촌이 형성되면서 주민들과 잦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주민들의 민원을 피해 90년대 초에는 유흥업소 주변에 수림대를 조성, 아파트촌으로부터 시야를 차단하기도 했다. 현재는 1백여개 업소에 8백50여명이 유흥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한 청량2동 588일대는 최근 서울시가 도심재개발 구역으로 지정, 고층 건물 신축을 유도하고 있어 멀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이며 영등포 역 주변 홍등가 역시 상세계획구역으로 개발을 추진중이어서 점차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경향신문 1995. 4. 7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24
  • 미아리 텍사스촌 종사자 수와 수입<홍등가 윤락녀 1,602명/미아리텍사스村 856명 최다/월수입 200萬원이상 40%나/서울市 자료>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등 서울시내 5대 홍등가에 몸담고 있는 윤락녀는 모두 5백71개업소에 1천6백2명으로 조사됐다. 1일 서울시가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윤락녀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은 하월곡동 88번지 일대 속칭 미아리 텍사스로 250개 업소에서 856명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강동구 천호동 423일대 2백 95명(업소수 120개)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 197명(56개) △동대문구 청량리 588일대 167명(90개) △용산구 용산역 앞 87명(55개)으로 조사됐다. 한편 하월곡동 윤락녀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이들의 수입은 월 2백만원 이상이 40%로 가장 많았고 1백만원 이하 35%, 1백만~2백만원 25%로 나타났다. 학력은 고졸 50%, 중졸 34%, 국졸이하 12%순이며 연령은 20~24세 63%, 25~29세 30%, 30세이상 6%순이었다. 전직으로는 무직이 30%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회사사무원 23%, 생산직공원22%, 점원 10%등이었다. 동아일보 1996. 6. 2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25
  • 미아리 텍사스촌 폐쇄<'미아리 텍사스촌'도 폐쇄/가출 10대소녀 감금 윤락가요 드러나…업주 대부분 조직폭력배/검찰, 대선직후 대대적 수사> 검찰은 서울시내의 대표적 사창가인 속칭 ‘미아리 텍사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이 지역 윤락업소를 폐쇄하기로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11일 “최근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의 하나로 미아리 텍사스 실태를 파악한 결과, 대부분의 업소가 가출 10대 소녀들을 사실상 가둔 상태에서 윤락을 강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들 업소에 대한 수사와 폐쇄조처를 강구하라는 대검의 지시가 서울지검에 내려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 업소 대부분은 폭력조직 우두머리들이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서울시내에 이런 ‘강력범죄 커넥션’이 치외법권지대처럼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서울지검 형사1부와 강력부는 이날 구체적인 미아리 텍사스 수사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검찰은 구체적인 수사 착수시기를 18일 대통령선거가 끝난 이후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현재 영업중인 70여 개 미아리 텍사스 윤락업소 대부분이 13~17살의 가출소녀를 10~30명씩 고용하고,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 이들을 24시간 감시하는 것은 물론 화대마저 빼앗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이들 업소가 이런 방식으로 한달 7000~80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특히 이들 업소 대부분을 폭력조직이 직접 운영하는 사실을 중시하고, 폭력조직 소탕 차원에서 수사해 엄중히 처벌할 방침이다. 한편 서울지검 형사1부(이종왕 부장검사)는 최근 미아리 텍사스 윤락업소‘백송’에 감금됐다 탈출한 신아무개(15)양 사건을 수사한 데 이어, 이 업소 대표 이승덕(41.여)씨와 마담 서선옥(45.여)씨 등을 윤락행위방지법등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 조사 결과 지난 9월 가출한 신양은 단란주점으로 알고 간 이 업소에서 석달 남짓 갇힌 채 한 사람당 6만~7만원을 받고 하루 6~8명을 상대했으나, 이씨 등이 이를 대부분 빼앗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검찰이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을 시작한 이후 이미 형사처벌한 업소중 미아리 업소 3~4군데 화양동의 1곳 등도 10대 소녀들을 감금한 채 윤락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겨레신문 1997. 12. 12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26
  • 2.8% ‘미아리텍사스 맥주’ 한 유명 맥주회사의 홈페이지. ‘저온 발효’에서 ‘비열 처리’까지 제조공법(?)도 다양한 제품이 14개나 소개돼 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고알코올(도수 6.9%) 맥주도 있고, 노래방용으로 알려진 무알코올 맥주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회사가 만드는 맥주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이름하여 ‘저스트라이트’ 맥주도 존재한다. 일반 소비자에게 생소한 ‘저스트라이트 맥주’는 알코올도수가 2.8%로 국내에서 시판 중인 맥주 가운데 제일 순하다. 하지만 이 맥주는 아무 데서나 맛볼 수 없다. 이 맥주를 맛보고 싶다면 반드시 ‘어딘가’로 가야 한다. 그 장소는 다름 아닌 집창촌. 그래서일까. 이 맥주는 ‘미아리텍사스 맥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미아리텍사스에서 일하는 한 여성 접대부의 말이다. “서울 미아리에만 있는 맥주예요. 서울 영등포와 지방 몇 곳에도 일부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하는 아가씨들의 건강과 꽤 취한 뒤에야 이곳을 찾는 남성들의 몸을 생각해서 들여온 맥주죠. 한 2, 3년 됐어요.” 이 맥주의 정체를 알기 위해 맥주회사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오히려 이런 질문이 날아왔다. “그 맥주를 어디에서 보셨어요?” “미아리텍사스에서 봤다”고 하자 그 직원은 “그렇다면 맞다”고 답했다. “특수 경로를 통해 판매하는 맥주로 시중에는 공급하지 않는다”는 설명. 이 관계자가 들려준 ‘저스트라이트 맥주’의 역사는 이렇다. 2003년 맥주회사들은 일제히 도수가 낮은 맥주를 시장에 내놨다. 과도한 음주문화를 질타하는 사회 분위기에 부응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블루오션 전략’이었다. 하지만 실패였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설비와 광고비를 쏟아부었지만 소비자는 저알코올 맥주를 외면했다. ‘밋밋하고 쏘는 맛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 쌓이는 재고만큼 맥주회사들의 시름은 깊어갔다. 이때 등장한 ‘흑기사’가 집창촌. 집창촌 여성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온 것이다. 덤핑으로 넘기다 보니 업주들도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게 3, 4년이 흘렀고 이제 이 맥주는 ‘미아리텍사스 공식 맥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한 업주에 따르면 미아리 집창촌에는 O, H사가 만든 저스트라이트 맥주가 평균 2, 3일에 한 번, 4t 트럭 한 대 분량이 공급된다. 맥주회사로서는 그야말로 ‘효자시장’인 셈이다. 이 사실을 좋아해야 하나, 감춰야 하나. 맥주회사들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쁜 기색이다. 주간동아 2007. 10. 9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27
  • 서울 미아리 텍사스 ‘性戰’ 10년 그 이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에는 외딴 ‘섬’ 하나가 있다. 5∼6년 전 급격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 한가운데에 1, 2층짜리 단층건물 10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곳은 단순한 쪽방촌이 아니다.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로 불리는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집창촌이다. 2000년 1월 김강자 전 서울 종암경찰서장이 대대적 ‘성전(性戰)’을 펼치면서 미아리 텍사스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크게 달랐다. 기자가 찾아가 본 미아리 텍사스는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지역 주민들과의 불편한 동거(同居)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인 지난달 28일 밤 12시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를 나서자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년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입구에는 가림막이 설치돼 있었던 것. 미로처럼 복잡한 청소년 출입금지구역 안으로 들어서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던 ‘이모’들이 대뜸 물었다. “연애하고 가시게?” 손사래를 치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100여 m를 걷는 동안 귀에 이어폰을 낀 호객꾼들이 열 번도 넘게 기자의 손목을 잡았다. ‘피크 시간’대라는 오전 1시가 되자 ‘볼일’을 보고 나오는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500여 곳)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에선 여전히 90여 개 업소가 성업 중이었다.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해온 김경아(가명·30·여) 씨는 “철거된 줄 알았다가 옛 생각에 다시 한 번 와보는 손님도 있고, 그렇게 한 번 왔다가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며 “요즘도 아가씨 한 명에 하루 평균 5, 6명의 손님을 받는다”고 했다. 이 동네에서만 16년째 이모 일을 하고 있다는 이모 씨(42·여)는 “예전에는 경찰 단속이 제일 두려웠다면 요즘은 동네 사람들 눈치가 제일 보인다”며 “업주들이 신참 이모를 쓰지 않는 것도 동네 주민과 손님들을 구별하는 ‘눈썰미’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빨간 불빛이 새나가지 않게 검은 커튼을 치는 것은 기본이다. 재개발만 되면 집창촌이 사라질 거라 믿었던 주민들은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지난달 30일 다시 찾은 이곳에서 만난 이모 씨(72)는 “재개발 초기에는 집창촌이 모두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며 “최근 부동산시장 침체로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데, 집창촌때문에 더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이사를 결심한 주민도 있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주민들의 신고도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다. 서울 종암경찰서 관계자는 “요즘에는 성매매 지역을 단속해달라는 민원성 신고도 거의없다”며 “매일 단속에 나가다시피 하지만 성매매 현장을 매번 적발하기는 어렵다. 재개발이 되면 자연 소멸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일대가 본격적인 재개발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2, 3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미아리 텍사스는 지난해 1월 도시환경정비사업 신월곡 1구역으로 지정됐다”며 “2012년 상반기나 돼야 이주 및 철거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서울의 다른 집창촌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산역 일대의 집창촌은 현재 재개발 보상을 놓고 협의 중인데 연말쯤에나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동대문구 청량리 일대도 미아리 텍사스와 비슷한 상황이다. 경찰청이 최근 발표한 성매매단속 현황에 따르면 성매매 관련 검거 인원은 2000년 7783명에서 지난해 7만3008명으로 증가했지만 구속 인원은 895명에서 633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검거 인원은 늘었는데 구속인원이 줄어든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강요된 성매매’가 줄어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2000년에는 미성년자를 고용한다 든지 채무를 빙자한 감금 및 강요 등 반인권적 행위가 많아 구속 건수가 많았던 반면 성매매특별법이 마련된 2004년 이후 강요된 성매매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장소나 방식만 바뀌었을 뿐 성매매는 줄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성매매 여성들이 오피스텔이나 주택가로 근거지를 옮기고,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가 늘어나는 등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흩어지면서 성병 등 보건관리가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성매매특별법이 완벽하진 않지만 성매매를 범죄 행위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라며 “초범의 성매수 남성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칠 수 있도록 존스쿨(성범죄 재발방지 교육기관)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10. 9. 7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28
  • 1968년에는 서울시에서 대표적인 공창 구실을 해오고 있다는 비판을 받던 종로 3가의 집창촌을 철폐하기로 하였는데, 이러한 조처는 미아리에 집창촌이 들어서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1960년대 후반 서울시내의 집창촌은 종로구 낙원동의 납작 술집에서부터 그 일대인 인의동, 돈의동, 봉익동, 훈정동, 묘동, 원남동, 예지동, 장사동, 관수동으로 종로3가에서 원남동 로터리를 지나 종로4가 로터리에 이르는 동서남북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속칭 ‘종삼’으로 불렸던 집창촌은 서울의 노른자위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데 도시질서와 시민도덕을 혼란케 하는 주범이라는 인식과 지역의 이미지를 갉아먹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당시 ‘종삼’에는 1,600명의 매춘여성이 있었는데, 서울시에서는 기습적으로 기곳을 철거하였고 이에 매춘 여성들은 대대적으로 서울의 부도심 및 신흥개발지구로 이주하게 되었다. 당시 조사에 의한다면 ‘종삼’의 철거 3일전에 이미 많은 매춘여성들은 정릉, 미아리, 상계동, 양동, 전농동으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종삼’에 밀집해 있었던 매춘지역은 1971년을 기준으로 서울의 26개 지역으로 분산되었다고 조사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하월곡동 88번지 일대의 월곡천변, 동대문 중화동 420번지, 중랑천변, 영등포구 구로 2동에 특히 밀집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 가운데 하월곡동 88번지, 훗날 ‘미아리 텍사스’라는 곳은 종삼 철폐 직후만 하더라도 서울의 대표적인 집창촌으로 인식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종삼’ 철폐 이후 4대문 안의 지속적인 집창촌 정화운동은 매춘여성들을 도시외곽으로 이주하게끔 만들었는데, 미아리는 서울의 도심과 비교적 가깝고 아울러 각종 인구의 유입이 빈번했던 곳이라 단속이 심하지 않았기에 매춘여성의 유입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미아리 일대의 집창촌은 처음에 정릉천 개천가를 따라서 500여m에 늘어서 있는 속칭 ‘하꼬방’ 같은 선술집의 형태였다. 1970년에 70여 개 무허가 대포집이 밀집되어 있었고, 1976년에는 30동의 건물에 100여 개의 무허가 주점들이 위치해 있었다. 1978년부터 시작된 월곡천 상류부터 진행된 복개공사는 하류 쪽의 정릉천으로 진행해갔고, 천변 좌우로 있던 술집들이 하천 복개로 인하여 종암동 쪽 술집들은 철거되고, 월곡동 쪽으로만 남게 되었다. 1980년 후반부터 개발이 진행된 길음역 주변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화는 집창촌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릉천 복개공사가 끝나고 난 후 길음역 10번 출구 쪽으로 1989년 환승주차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하철 개통과 사람들의 잦은 왕래는 개발에 관한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 동안 4대문 안의 개발호재로 개발바람에 밀려나있던 이 지역은 주변지역이 빠르게 변모하면서 다른 인상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집창촌은 급격하게 개발되는 주변지역에 비해 흡사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낡은 건물과 함께 다른 삶의 방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아주 이색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타지사람들이 집창촌의 대명사처럼 미아리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도 자연스레 지역주민들이 불만을 갖도록 만들었다. 사실 서울시내의 미관과 발전 문제는 그에 수반된 부정적인 것들의 도시 외곽으로 이전으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미아리 텍사스촌은 대표적인 사례로서 미아리라는 이미지에 부정적 역할을 미쳤던 것을 심화시켰다. 일제시대 이래로 공동묘지가 존재하는 곳, 아울러 피난민에 철거민들이 지저분하게 거주하는 동네로서 미아리가 인식되어 왔던 것에서 다시 집창촌의 존재는 미아리라는 이름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집창촌은 특히 지역주민에게 골칫거리었는데, 이를테면 집창촌 주변에 위치한 아파트에 거주한 어느 학부모는 7살 난 딸아이가 “저기 [집창촌] 언니 공주 옷 입었다”며 자기도 같은 옷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하소연했다는 사연은 그 정도가 어땠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강성봉 외 4인, 2013, 동소문 밖 능말이야기, 201-204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1-30

관련 마을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