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주거
1958.09
장소 인문지리
성북구 미아리고개와 길음동 일대의 주거와 관련된 내용이다. 해방 이후 무주택 빈민들을 위해 서울 곳곳에 공동 숙박소와 수용소를 설치하였는데, 미아리도 그 중 하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는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하여 미아리에 난민정착촌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있던 공동묘지를 망우리 등 외곽으로 이전하였다. 자연히 이 지역은 낙후될 수밖에 없었고,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불량주택 개량과 도시재개발을 추진하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서울시의 정책에 의해 길음뉴타운이 조성되었으며, 그동안의 지속적인 재개발로 인해 돈암동과 길음동 일대의 주거형태는 아파트가 중심이 되었다.
길음동 돈암동
  • 저무른 무자(戊子)의 대회(大晦)! 희비쌍곡선(喜悲双曲線)이 교착(交錯) 요구호동포(要救護同胞) 이백오십만(二百五十萬)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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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아리대지(彌阿里垈地) 조정공사(工事)에 동원(動員) 이촌동수재민(二村洞水災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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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재민주택(戰災民住宅), 미아리(彌阿里)에 입구동(廿九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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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재민주택(戰災民住宅), 미아리(彌阿里)에 입구동(廿九棟)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1958.09
  • 비고: 1950~60년대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길음동 일대

근거자료 원문

  • 미군부대나 한국군부대 근처에 정착한 전재민들은 부대에서 나오는 목판・아연철판・아스팔트 루핑・미군이 쓰던 가병사 퀸셀 등으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정부는 1948년 미군이 떠나면서 남겨놓은 각종 자재나 물품을 가지고 밀려드는 전재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미아리에 퀸셀집을 지어 2백 70세대를 수용할 계획이었다. 힘들게 마련한 전재민들의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언제 철거 당할지 모르는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위의 사실을 통해 관내는 토막집, 움집, 판자집이 혼재하면서 도시가 형성되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수진 외 5인, 2014, 미아리고개, 78쪽
  • 서울시는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난민정착촌을 조성하기로 하고, 부지를 물색하던 중 첫 대상지로 미아리를 선정하였다. 1957년 유솜(USOM)의 원조로 건설하기 시작한 난민정착촌은 900채의 주택을 건설하였다. 정착촌에는 난민이 기거할 21.5㎡(6.5평)의 흙벽돌주택과 함께 공동작업장, 공장 설립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자립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지만 2년이 지나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밀려드는 전재민과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서울시는 1957년부터 길음동 2번 묘지 인근을 주택으로 개발하기로 하고 연고자에게 묘지이장을 명령하였다. 무연고 묘지는 당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이장하기로 하고 이전을 추진하였다. 이로써 미아리 일대는 주택지대로 변신을 하게 된다. 명절과 한식날 성묘객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박수진 외 5인, 2014, 미아리고개, 81쪽
  • 거기는 맨날 산동네라고 그랬는데 차이 많이 났지. 왜냐면은 이(아리랑고개) 가장자리로 다 판잣집 짓고 장사들 하고 그랬어. ‘ㄷ’자형으로 부엌하나 있고 안방, 건넌방, 부엌 이렇게 세 개지. 대부분 집들이 그렇게 생겼지. 그렇지 않으면‘ㅡ’자로 방이 세 개가 쪼르륵 있고. 가운데 마루 하나 있고 그렇게 있지. 그러니까 문간방도 세주고 또 건넌방도 세 주고 그러고들 살았어. -주민 인터뷰-
  • 미아리고개 불량주택 1,590동 개량 성북구는 지난해 7월1일 도봉구가 떨어져나갈 때 변두리 외곽지대를 모두 안고 가버려 쓰레기, 분뇨비 수거지역이 없어지는 등 구행정이 많이 편해졌다. 그러나 장위동, 석관동, 정릉동, 월곡동 등의 변두리 높은 지대엔 아직도 하수도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신흥주택지가 된 장위동, 월곡동은 수도사정이 좋지않다. 그래서 성북구는 주민들의 생활환경개선에 모든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미아리고개를 넘어서면 서라벌예대 뒷산의 능선을 따라 즐비한 불량주택 1천5백90동을 7월까지 모두 개량한다. 이곳 돈암3지구 재개발사업계획에 따르면 이일대 4만4천3백69평의 불량건물을 모두 철거한 다음 65%인 28만8백89평은 택지로, 20%인 8천8백73평은 도로로, 15%6천6백57평은 녹지공원을 만들고 문화주택을 지어 연내 입주케한다는 것이다. 하수도 시설이 안되어있는 석관동 244 석관초등학교 뒤에 길이 4백 50m, 정릉1동 139정릉교회앞에 60m,장위2동106앞4백50m,상월곡동28일대에 2백m의 하수도를 6월 중으로 신설한다. 구는 하수도사업비에 8백80만원을 책정했다. 또 본청으로부터 6천5백만원의 예산지원을 받아 석관지역과 장위지역에 각각 5백m와 월곡지역에 2백m의 하수도를 암거공사도 벌인다. 하수도사업과 같이 뒷골목 포장사업에는 1천 4백 70만원을 들여 삼선1동4가38앞84m 미아리 고개~고명중학교까지 1백60m 삼선3동2가 232~293까지 3백50m 안암1동2가2의1~96 용문고등학교 입구까지 3백m 정릉동226일대 3백m 상월곡동28앞1백50m을 콘크리트로 포장할계획. 명랑한 창구행정을 위해 민원신청을 접수순위로 처리하는 표찰제를 실시하며 시민홀에 2명의 대서직원을 앉혀 무료대서를 해주고 있다. 관내 주요 간선도로변의 화단조성계획에 따라 월곡로에 화단이 꾸며진다. 미아3거리부터 종암동까지 2km의 월곡로 양쪽에 길이 2m, 너비 70cm규모의 화단을 22m간격으로 99개 만들어 고운 거리를 이룬다는 것. 경향신문 1974. 1. 21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46
  • 성북구의 새 모습 성북구 미아리고개를 중심으로 한 산동네의 무허가 불량주택이 대규모 고층 아파트단지로 새롭게 단장된다. 미아리고개 남쪽의 동소문구역은 구역면적이 7만평이 넘는 대규모단지로 현재 주민들간의 분쟁을 해소하고 공람공고절차를 끝낸상태에서 조합설립 및 사업 시행 인가 절차를 준비중. 구역내에 지하철역이 위치한 돈암2구역 1지구는 4면이 도로로 둘러싸여 섬처럼 된 지역으로 상가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 돈암1동 사무소 주변의 돈암2구역 2지구는 자력재개발에서 합동개발로 개발방식을 변경, 사업을 추진중이다. (중략) 6~15층 아파트 32동 3천8백1가구의 대규모 단지가 들어서게될 이지역은 경사지로 경관이 뛰어난데다 종로, 동대문 등 도심과 가깝고 특히 지하철 4호선이 지나기 때문에 교통여건이 훌륭한 지역으로 꼽힌다. 지하철 4호선 길음역이 단지내에 위치한 길음동 877일대 돈암2구역1지구는 4면이 도로로 둘러싸인 지역 여건을 활용, 당초 1만2천평 규모의 대형 쇼핑센터를 단지내에 건립키로 하는 등 특이한 개발 계획으로 눈길을끌었다. 최근 미아삼거리에서 문을 연 파레스백화점과 현대화된 길음시장이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한데다 대지극장 인근에 대형 쇼핑센터 건립이 계획돼 있어 당초의 계획이 변경됐다. 지난 5월 새로운 참여회사로 선정된 삼부토건은 사업추진을 서둘러 한달 보름만에 건축 심의를 받았다. 지난달 건축 심의에서 4번의 수정보완과정을 거쳐 아파트단지 중앙에 위치한 길음 역사부지 1천6백평이 당초 공영도로주차장에서 도로공원으로 변경됐다. 또 소음을 줄이기 위해 도로변에 폭 6m 수림대를 조성키로 했다. 한편 단지 남쪽의 정릉천변은 오는 10월말까지 완전 복개돼 7천여평의 지하철 연계 주차장으로 활용된다. 복합상가 스타일로 개발될 15층 아파트 7동에는 7백43가구가 들어서게 되는데 평형별 배분은 26평형 4백33가구 , 32평형 1백80가구 42평형 90가 구 등이다. 특히 참여업체과 바뀌면서 사업추진이 급속도로 진전되자 당초 재개발을 반대해온 도로변 상가 소유주들도 재개발을 적극 지지하는 가운데 사업시행인가 절차를 준비중이다. 사업시행인가를 얻으면 9월부터 철거를 시작, 내년 2~3월 부터는 본격적인 아파트 건축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라벌 고교옆 정릉천변의 돈암동 4일대 돈암2구역 2지구는 자력개발 구역이었으나 최근 개발방식을 합동개발로 바꾼 지역이다. 합동개발이 거론되면서부터 2개 추진위원회가 대립해오다가 구청의 주선으로 지난해 6월 통합추진위원회를 결성, 사업추진이 급진전을 보아 올들어 건축 심의를 마친데 이어 사업 계획서 제출을 서두르고 있다. 또 국유 및 사유지를 조합이 일괄 분양받고 점유자별로 제한적으로 불하받도록 해 20평 미만의 땅을 소유한 대부분의 영세민들이 실제로 재개발후의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서 관리 처분 계획을 마련중이다. 10~15층 아파트 6동 4백 98가구를 짓게되는데 평형별로는 24평형 142가구, 30평형 56가구 이고 돈암1동 사무소가 단지 내에 들어선다. 미아리고개 동쪽의 돈암동 산6 일대 돈암3구역은 공원용지가 절반이 넘는 급경사지로 82년 새로 재개발구역이 조정된 후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매일경제 1986. 7. 3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52
  • 무주택자를 위한 미아리 수용소<저무른戊子(무자)의 大晦(대회)! 喜悲双曲線(희비쌍곡선)이 交錯(교착) 要救護同胞二百五十萬(요구호동포이백오십만)은 운다> 한편 지난 3월 현재 남한에는 세궁민, 전재민 등의 요구호자 중에서 무주택 호수는 3만8천여 호에 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사회부에서는 1억 원의 국고 보조금을 얻어 서울시에 800호를 위시하여 남한에 5,500호의 주택을 건립하였으며 이밖에 서울시내 7개소에 무료공동 숙박소, 영등포 ․ 마포 ․ 미아리 등지에 수용소를 설치하여 도합256세대 1,280명을 수용하고 있다 한다. 동아일보 1948. 12. 31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16
  • 미아리에 수재민 들을 위해 천여호를 건축 보건사회부에서는 금년 내로 1,200호의 주택을 지어서 1,874세대 9,400여명의 수해 이재민을 입주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주택이 건축될 대지는 시유지로 되어 있는 미아리 공동묘지 부근에 300호 불당동에 302호밖에 미아리 산 7번지에 200호 금호동에 400호를 각각 건축하여 입주시킬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 주택이 마련될 때까지는 미8군과 군에서 300매의 천막을 대여받아 수용할 것이라고 한다. 경향신문 1958. 9. 11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27
  • 미아리 택지 조정 공사에 동원 이촌동 수재민들이촌동 수해 이재민들의 “우리를 일할 수 있게 하여 달라”는 진정에 대하여 5일 허서울시장은 “미아리 택지 조정 공사에서 그들을 사용하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지금도 가급적이면 어떠한 공사이고 이재민들을 사용할 방침이며 이렇게 하면 일석이조의 성과를 얻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동아일보 1958. 12. 5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28
  • 미아리 전원주택가 건설 서울시 교외 미아리 일대에 107만평의 주택지를 마련해서 9천호에 인구 5만의 전원 주택가 건설을 착수하였다. 최초의 위성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 넓은 주택지는 서울-의정부 간의 국도를 가운데 동서남으로 이루어질것인데 금년에는(3년차 계획 중 1차년도)그 중 30만평의 대지를 닦게 되었다. 서울시는 이미 현지 측량과 구획 설계를 마치고 4월 하순부터 정지공사에 착수할 작정이다. 새로운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착수된 택지조성은 먼저 서울시가 10여 억환의 예산으로 대지를 마련하여 주택난 완화와 시중의 집값을 조절하기 위하여 희망자에게 팔아주자는 것이다. 당국의 설계도에 의하면 변두리 주민의 골치였던 도로·수도·전기·하수도 시설은 물론 이 지역에 국민학교 3교와 중·고등학교 1교를 신설하는 외에(현재 경기대학은 이 주택지의 중심에 들게 됨)교회지구와 3천평의 시장과 1개소의 극장 1만3천평의 공원지역을 미리 확보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 택지 조성을 위해 작년에 미아리 공동묘지를 철거 하였는데 그 인상을 씻기위해서 “미아리”라는 이름을 길음동으로 고쳐 부르기로 동명칭 개정 조례를 의회에 낼 것이라고 한다. 대지분양 가격과 요령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시 예산상으로는 이곳 사유지의 경우 일평에 일만 오천환에 팔 셈으로 계상되어 있다. ‣환경 : 도심지에서 6,7키로 떨어져있는 이 지역은 북서에 북한산의 “백운대”, “인수봉”과 도봉산의 아름다운 풍치를 등지고 앞으로는 관악산과 남산을 바라볼 수 있다. ‣기초공사 : 먼저 “부르도자”와 노력을 동원해서 정지공사를 한 다음 구획 설계도에 따라 도로를 건설한다. 도로는 서울 의정부 간의 국도에 평행하여 넓이 15미터 12미터 등 주요도로를 두고 10미터, 8미터, 6미터, 4미터의 길을 가로 세로 만든다. 그 다음에 축대를 쌓아올린다. ‣수도 : 7만톤 증수공사의 완성으로 도로공사와 동시에 배수관을 시설한다 ‣하수도와 배수공사 : 도로공사와 동시에 완전한 하수도와 배수공사를 실시한다 당국자는이 공사를 가장 모범적인 것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지분양 : 주택하나에 일백평이상 일백오십평을 표준으로 하되 채광과 통풍을 특히 고려한다고. 지대는 매호에 이백평 또는 삼백평의 넓은 대지를 마련한다 ‣사유지에 대한 조치 : 이 지역내의 사유지는 금융기관이 평가하는 값으로 매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매매를 희망하지 않는지 주에 대하여는 지주승락을 받은 후에 조성공사를 마친 후에 공사 실비를 부담시키고 그 토지는 지주에게 환원한다. 매수에 응한 지주에 대하여는 대지가격(원가)에 공사비를 가산하여 우선적으로 팔아준다. 경향신문 1959. 4. 10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30
  • 새로운 판자집 미아리에 세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경향만평 경향신문 1955. 6. 3 참고 *그림은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성북문화원, 28쪽 참고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20
  • 미아리 난민주택 서울시는 제 3차로 350가구가 들어갈 난민주택을 완성하여 그 입주식을 현지 “미아리”에서 20일 거행한다. 당초 계획에 의한 1,007호의 건축공사는 8월말에 완성 예정이다. 경향신문 1957. 7. 20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22
  • 철거민은 미아리로 시내 묵정국민교 건축대지에 자리잡고 있던 약 2백동의 판잣집들은 4일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철거가 단행됐다. 이날 오전 10시경부터 중구청과 중부서관계관들은 장충동 2가 현장에 출동하여 판잣집을 허물었는데 아무대책도 없이 어디로 가느냐고 아우성치는 주민들로 한때 혼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이날 오후 4시경에는 판잣집 195동 265세대는 환전히 허물어 졌다. 고함과 울부짖음에 지친 주민들은 대개 품팔이 노동으로 끼니를 이어가는 세궁민들인데 그들은 다만 당국의 대책만을 바란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소개지인 “미아리”에는 이날 오후 4시 현재 불도져로 땅만을 밀어놓았을뿐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고 주민대표 황씨는 말하고 있었다. 이날 철거소동에 주민들과 경관들 사이에는 주먹질까지 있었다고 하며 주민 김영길씨는 고막이 터지고 얼굴에 타박을 입고 있었으며 묵정파출소 주임은 혼란통에 시계까지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경향신문 1957. 10. 5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23
  • 미아리에 난민부락 건설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난민부락이 유엔군경제조정관실에 의하여 미아리에 건설되었다. 12만평의 황무지에 건설된 이 부락은 불과 8개월만에 준공된 것인데 해방 이후 남하한 북한피난민과 10세대의 상이용사가족이 수용될 것이다. 한편 O·E·C촌락개발국에서는 23일 현재 1천여건의 난민부락건설이 전국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완성되면 25만명의 북한피난민들이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발표하였다. 경향신문 1957. 12. 24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024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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