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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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종교시설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에 있었던 종교시설이다. ‘당’은 주로 마을 단위의 민속신앙에서 신을 모시는 장소인데, 전통사회에는 서울에도 곳곳에 이러한 당집이 있었다. 미아리고개에도 조선시대부터 당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미아리당은 특히 자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영험하다고 소문이 났었고, 조선왕조의 왕비를 배출했던 민씨 집안도 이곳에서 치성을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미아리고개 일대에서 점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증언으로는 미아리당이 1990년대에 없어졌다고 하며,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돈암동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종교시설

시기

  • 시대: 미상
  • 시기: ?
  • 비고: 미상, 1994년경(90년대 초중반) 폐쇄 추정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근거자료 원문

  • ­ 정릉 북악당에서도 독경을 하나요? 지금은 당이 줄었지만 그때는 당이 여러 군데 많았어요. 미아리에도 고개 올라가면 왼쪽으로 당이 있었어요. 미아리당인데 옛날 노인네들은 되너미당이라고 그랬어요. 중국 사람들이 넘어 왔었다고. 그래서 청나라 때 넘어 온 고개라고 해서 되넘이당이라고 그러다가, 나중에 거기가 미아리고개에 있으니까 미아리당이라고 불렀어요. 없어진 지 한 20년 밖에 안돼요. 당이 역사가 오래 됐어. 몇 백 년 됐었어. 민씨네(명성황후 민비)가 자꾸 아이만 나면 죽고 손이 끊기게 되고 그래서 정성을 드리고 그랬더니 꿈에 동네 미아리고개를 가면 어디어디를 땅을 파봐라. 그럼 거기서 미륵이 나올테니 그것을 대대로 잘 위해라. 그래서 민씨네가 그렇게 손이 안 끊기고 내려왔다고. 미알이, 미륵이 알려줬다고 미아리야. 그러니까 그 지명이 미륵 때문에 생겼다는거야. 우리 어려서 다닐땐 미아리고개가 지금보다 엄청 높았지요. 66년도에 깎았어요. 전차가 그때 없어졌으니까. 깎고 고가를 놨지. 미아리 막바지 올라가면 미아리당하고 고개하고 똑같았었는데 그걸 깎고 보니까 우리 길로 두 길이 되도록 깎았더라고. (중략) ­ 그럼 서울에서는 미아리당이 제일 유명했습니까? 제일 오래되고, 자손 못 보는 사람들이 가서 많이 효과들을 보고 그랬어요. 동대문 창신동 올라가는데 가면 자주당이라고 있었고. 자주당은 왜 자주당이냐면 단종이 그 쪽으로 끌려 넘어 가는 장면을 부인 송씨가 언덕에 올라가서 봤는데 송씨가 단종이 보고 싶으면 자주색 치마를 입고 거기 올라가서 보라고 했대. 옛날에는 시골 웬만한 마을에는 당이 하나씩은 다 있었어요.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No. 160
  • ­ 정릉 북악당에서도 독경을 하나요? 지금은 당이 줄었지만 그때는 당이 여러 군데 많았어요. 미아리에도 고개 올라가면 왼쪽으로 당이 있었어요. 미아리당인데 옛날 노인네들은 되너미당이라고 그랬어요. 중국 사람들이 넘어왔었다고. 그래서 청나라 때 넘어온 고개라고 해서 되넘이당이라고 그러다가, 나중에 거기가 미아리고개에 있으니까 미아리당이라고 불렀어요. 없어진 지 한 20년밖에 안돼요. (동양철학관, 이회택)
    박수진 외 5인, 2014, 미아리고개, 238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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