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후반, 청수장 아래 정릉 골짜기에 작은 양옥을 마련하여 이사를 했다. 산이 가까이 있어 산새 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키우는 개들이 마당에서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집이었다. 셋방에서 주변 소음에 시달리며 글을 쓰던 때와 달리, 산골짜기 정릉에서는 복잡한 세상과 번거로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몇 년 뒤에는 다시 경국사 뒤쪽에 있는 768-2번지로 집을 옮겼다. 이 집이 바로『토지』집필을 시작한 집이다. 그림이나 조각, 수예에도 손재주가 있던 박경리는 건축에도 관심이 많아 설계 도면도 그려보고, 집 구조를 바꾸기도 했다. 이사 후에 서재를 덧대 짓고, 석축을 손수 쌓고, 난간을 만들고, 마당에는 돌을 깔았다. 마당이 넓은 단층짜리 국민주택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았다. 동료, 선·후배 문인들이나 원고청탁을 하러 온 기자들이 자주 찾아왔고, 이 집에서 사위를 보고, 첫 손자를 키웠다.
한국 문학사의 중요 작품인 대하소설 『토지(土地)』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1965년부터 1980년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정착하기 거주했던 가옥이다.
박경리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간 걸쳐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다.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한 1969년은 박경리가 정릉 가옥에 거주하고 있던 때이므로, 정릉의 박경리 가옥은 대하소설 『토지』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 박경리는 사위 김지하의 구속으로 옥바라지를 하는 딸을 위해 원주로 이사를 한다. 2014년 3월 홍릉 임시터전에서 개교한 서울정릉발도르프학교가 2014년 10월 학교 건물 준공을 받고 박경리 가옥으로 이전한다. 현재 인근 지역은 재개발이 필요한 노후화된 건물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작가 박경리(朴景利, 1926-2008)는 경남 통영시에서 출생하여 1945년에 진주여고를 졸업했다. 1956년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 「흑흑백백」이 실리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199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다 2008년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작품집에 1959년에 장편 「표류도」를 발표, 이 작품으로 제3회‘내성문학상’을 수상했다. 1962년 『김약국의 딸들』, 1963년 『노을진 들녘』, 『불신시대(不信時代)』, 1964년 『내 마음은 호수』, 1965년 『파시(波市)』, 1966년 수필집 『기다리는 불안』, 문학론 『Q씨에게』 등을 발간했다.
1973년부터 1994년까지 『토지』 전 16권을 발표했으며 2002년에는 전 21권으로 재출간했다. 1977년 『호수』, 수필집 『거리의 악사』, 1978년 『나비와 엉겅퀴』, 1979년 『영원의 반려』 등을 발간했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5년 제2회 한국 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2년 보관문화 훈장, 1994년 유네스코 서울협회 선정 올해의 인물, 1996년 칠레정부 선정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기념메달, 1996년 제6회 호암상, 1997년 제3회 용재석좌교수상을 수상했다.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문화정책과,
서울미래유산, 항목명: 박경리 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