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사로 일주문 앞의 널찌막한 다리를 건너다보면 왼쪽으로 화강암을 다듬어 쌓은 작은 돌다리 하나가 보인다. 철제 난간만 최근에 새로 설치한 것일 뿐, 교각과 다리바닥의 매끈하지 않은 표면을 보면 석재를 다룬 솜씨가 오늘날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반야교般若橋’라는 이름을 가진 돌다리로 경국사에서 1932년 황금정(지금의 을지로 일대)의 부호 이원우李元雨의 시주를 받아 중수한 것이다. 지금은 그 옆에 현대식 교량이 세워져 반야교는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진 작고 쓸모없는 다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 다리가 정릉동에서 돌일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마지막 건조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할 때 경국사 앞 반야교는 단순한 돌다리가 아니라 옛 정릉동 사람들의 또 다른 생업이었던 돌일을 기리는 기념비라고 할 수 있다. 척박한 토지를 일궈 농사를 짓고, 무겁고 단단한 화강암을 떼어 나르던 정릉동 사람들의 힘겨운 노동의 역사가 이 다리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몇 번의 개발과 공사에도 반야교는 살아 남았다. 정릉천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반야교가 그 옛날 정릉동 사람들이 흘린 땀의 역사를 증언하는 멋진 기념물로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