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동1~7가(1947) : 동대문 밖 신흥주택지
보문동이란 행정동(동장 관할 구역, 1960년대 후반까지는 동회)이 생긴 것은 1955년으로 보고 있지만 그 이전부터 보문동이란 명칭은 쓰이고 있었다. 이를 다음 신문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돈암동 일부, 안암동 일부, 신설동 일부를 보문동1가로부터 7가까지, 안암동1가부터 5가까지로 변경하였다. 이번 지번 변경으로 신(新)번지가 순서 있게 설정되었다.
― 『동아일보』 1947년 6월 4일 「구역지번동명(區域地番洞名變更)」
1936년 일제에 의해 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고 광복 후인 1947년 서울시가 이미 조성된 택지를 분할하여 동명과 지번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기존 돈암 · 안암 · 신설동 일부 지역을 떼어 보문동1~7가와 안암동1~5가라는 명칭으로 구획 조정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보문동이란 행정동(동회)이 생기기에 앞서 이미 보문동1~7가라는 이름의 법정동이 존재하였다는 말이 된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법정동과 행정동을 구분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일일지 모른다. 다만 보문동이란 마을 이름의 연원이 보문동이라는 행정동명에 앞서 1947년에 제정한 보문동1~7가라는 법정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정도만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동명의 탄생이 오늘날 보문동의 도로와 골목과 필지를 결정지은 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분당, 일산, 동탄, 운정 같은 수도권 신도시의 이름들이 신도시의 계획과 조성 과정에서 미리 관청에 의해 새롭게 부여되고 그것이 계속 도시의 이름으로 쓰이면서 지명으로 굳어지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말해 보문동이란 이름은 8 · 15 해방을 전후해 서울 동대문 바깥에 조성된 작은 신도시의 이름이었다고 보면 된다. 신도시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하던 관리가 인근의 사찰 보문사에서 힌트를 얻어 지었을 따름이다. 70년 묵은 신도시, 우리나라 신도시의 조상뻘, 바로 보문동1~7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