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서 남경으로 향하는 길에 위치하여 거쳐갈 수밖에 없는 고암鼓巖과 제기현祭基峴은 오늘날 고려대학교 앞을 말한다. 이 길은 현재의 안암동과 동대문구의 용두동 · 제기동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조선의 여행자 숙박시설 겸 빈민구제기관인 ‘보제원普濟院’이 그 길 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1530년(중종 25)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한성부 동대문 밖의 보제원, 서대문 밖의 홍제원弘濟院, 남대문 밖의 이태원梨泰院, 광희문 밖의 전관원箭串院 등 네 개의 원院이 설치되어있음이 기록되어 있다. 원이란 고려의 역驛 제도를 계승하면서 지방제도 개편과 함께 재정비한 것으로 명령의 전달, 공무 수행자에 대해 말과 숙식 제공 등이 주된 임무였으나, 그밖에 굶주린 백성들에 대한 구휼 업무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 보제원은 동대문 밖 3리 지점에 있었다. 동대문을 벗어나 동묘東廟에 이르면 길이 둘로 갈라지는데, 동북쪽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보제원에 닿았다. 이 곳에서 안암동천 · 제기현 · 고암을 거쳐 수유리를 지나 노원역에 이르러 경흥으로 향하는 동북 제2로에 연결되었다. 결국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보아 이 지역이 교통의 요지였다 할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