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국사
1354
비지정 문화재
장소 종교시설
정릉로 202-27(정릉동637)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 원찰로, 고려말 공민왕 3년(1354) 나옹대사가 주도하여 창건했다고 하는 설이 있으나, 조선 태조 4년(1395)에 당시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주도하여 세운 사찰로, 창건 당시 법당에 약사여래를 봉안하여 약사사라고 불렀다. 조선 현종 10년(1669)에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을 단장하고 태묘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서 이 절을 원찰로 삼고 나라를 받든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봉국사로 고쳤다. 임오군란(1882) 때 불에 탔으나 이듬해 한계·덕운 등이 중건하였고, 이후 몇 차례 더 중건되었다. 1979년 10월에는 절 입구에 일음루를 건립하고, 1994년에는 안심당을 지어 스님들의 수행정진과 신도들의 신행처로 사용하고 있다.
정릉동
  • 봉국사(2)
  • 봉국사(1)
  • 봉국사 용왕단
  • 봉국사 마하선실
  • 봉국사 천왕문
  • 봉국사 안내도와 천왕문
  • 봉국사 안내도
  • 봉국사 일주문
  • 봉국사 입구
  • 봉국사 산신각(2)
  • 봉국사 산신각(1)
  • 봉국사 명부전
  • 봉국사 명부전과 석등
  • 봉국사 독성각
  • 봉국사 만월보전(2)
  • 봉국사 만월보전(1)
  • 봉국사 탑
  • 봉국사 어린이법당
  • 제1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_돈암동 주민들의 정릉동 나들이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奉國寺
  • 이명칭: 악사사(藥師寺)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종교시설

시기

주소

  • 주소: 02813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637 (정릉로 202-27)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성북구 貞陵 2동에는 奉國寺가 있다. 이 절은 고려 恭愍王 3년(1354)에 왕사 나옹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法殿의 12大願을 안에 藥師如來像을 봉안하였음으로 하여 藥師寺로 이름하였는데, 조선 顯宗 10년(1669)에 절 남쪽에 있는 神德王后의 貞陵을 修封하고 제사드리면서 이 절을 願刹로 하고 이름을 奉國寺로 고쳤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32-733쪽
  • 貞陵의 願刹로는 앞서 돈암동의 新興寺가 있었지만 정릉동에도 奉國寺(정릉동 637번지)와 慶國寺(정릉동 754번지)가 있다. 봉국사는 「貞陵길」 변에 있는데 高麗 恭愍王 3년(1354)에 懶翁大師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일명 藥師寺로 칭하다가 현종 10년에 정릉을 수봉하면서 이 절을 奉國寺로 고치고 願刹로 삼았다. 조선말 임오군란 때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重建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90쪽
  • 그리고 성북구 정릉2동 637번지에는 奉國寺가 자리하고 있다. 太祖 4년(1395)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당시 王師였던 無學大師의 지시에 의해 창건된 護國寺刹로 처음에는 法堂에 藥師如來를 봉인한 관계로 藥師寺라 하였다. 顯宗 10년(1669) 神德王后의 貞陵을 修封하고 太顧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서 정릉의 沙草를 새로 하는 동시에 丁字閣·安香廳·典禮廳등을 새로 세웠는데 이때 이 절을 願刹 즉 造泡寺로 하여 이름을 奉國寺로 고쳤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97-98쪽
  • ○ 삶을 일깨우는 인생 교과서 사찰 사찰 43 봉국사 불자들의 정진도량, 시민들의 안식처 - 정릉 북동쪽 산등너머에 자리한 조계종 사찰. 봉국사는 고려 말 나옹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조선 초에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당시 왕사였던 무학대사에 의해 창건된 호국 사찰인데, 약사사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처음에는 법당에 약사여래를 봉안한 관계로 약사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나라를 받든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봉국사로 고쳤다고한다. 그후 조선말 임오군란 때 절이 소실되자 한계, 덕운두 스님이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현대에 들어서는 절 입구에 일음루를 건립하였고, 안심당을 지어 스님들의 수행 정진과 신도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절인근에 주택가가 밀집되어 있어 누구라도 쉽게 부처님의 지혜를 듣고 배울 수 있는 터전이 되고 있으며, 천연의 청정수가 샘솟아 봉국약수를 찾는 발길이 이른 새벽부터 끊이질 않고 있다. 불자들의 수양 도량으로서는 물론 시민들의 휴식처로도 자리매김한 곳이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4, 성북 100경, 80-81쪽
  • ▫ 비지정 봉국사 奉國寺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봉국사 소재지 : 서울 성북구 정릉동 637 봉국사는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 원찰(願刹)로 정릉길 옆에 위치한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이 절은 고려말 공민왕 3년(1354)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주도하여 창건했다고 하는 설도 있고, 조선초 태조 4년(1395)에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당시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가 주도하여 창건했으며 약사사(藥師寺)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법당에 약사여래를 봉안한 관계로 약사사라고 했다. 조선후기 현종 10년(1669)에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정릉을 수봉(修封)하고 태묘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서 정릉의 사초(沙草)를 새로 하는 동시에 정자각(丁字閣), 안향청(安香廳), 전례청(典禮廳) 등을 새로 세우면서 이 절을 원찰로 했다. 이 때 나라를 받든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봉국사로 고쳤다. 그러나 이후의 절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으며 조선말 임오군란(1882) 때 봉국사가 소실된 것을 한계(寒溪)・덕운(德雲) 두 스님이 힘을 모아 이듬해에 중건했다. 그 후 1898년에 명부전을 중건하고, 1913년에는 칠성각을 중건했다. 1979년 10월에는 절 입구에 일음루(一音樓)를 건립했고, 1994년에는 안심당을 지어 스님들의 수행정진과 신도들의 신행처로 사용하고 있다. * 참고자료 :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 문화사적편, 1987 / 성북구, ≪성북구지≫, 1993 /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총서 –서울-≫ 4, 1994.
    성북문화원, 1997, 성북의 문화재, 172-173쪽
  • 봉국사는 정릉의 원찰(願刹)로 정릉길 옆에 위치한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이 절은 고려말 공민왕 3년(1354)에 나옹대사(懶翁大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설과, 조선 초 태조 4년(1395) 당시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에 의해 창건된 호국 사찰로 약사사(藥師寺)라고 불렸다는 설이 있다. 조선 후기 현종 10년(1669)에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정릉을 수봉(修封)하고 태묘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서 정릉의 사초(沙草)를 새로 하는 동시에 정자각(丁字閣), 안향청(安香廳), 전례청(典禮聽) 등을 새로 세우면서 이 절을 원찰(願刹)로 하였고, 이 때 나라를 받든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봉국사로 고쳤다. 그러나 이후의 절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으며, 조선말 임오군란(1882) 때 소실된 것을 한계(漢溪)ㆍ덕운(德雲) 두 스님이 힘을 모아 이듬해에 중건하였다. 그 후 1898년에 명부전을 중건하고, 1913년에는 칠성각을 중건하였다. 1979년 10월에는 절 입구에 일음루(一音樓)를 건립하였고, 1994년에는 안심당을 지어 스님들의 수행정진과 신도들의 신행처로 사용하고 있다.
  • 정릉 북동쪽 산등너머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395년(태조 4) 무학대사 자초(自超)가 세운 사찰로, 창건 당시에는 법당에 약사여래를 봉안하였기 때문에 약사사라 불렀다. 1468년(세조 14) 중건하고, 1669년(현종 10)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능인 정릉을 단장하면서 이 절을 원찰로 삼았다. 이 때 정자각(丁字閣)과 안향청(安香廳)·전례청(典禮廳) 등을 지었으며, 나라를 받드는 절이라는 뜻으로 ‘봉국사(奉國寺)’라 하였다. 조선 말 임오군란 때 절이 소실되자 1898년에 한계, 덕운 두 승려가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1913년 칠성각, 1938년 염불당을 세웠으며 1977년에는 일주문 옆에 2층 누각을 짓고 아래층은 천왕문, 위층은 일음루(一音樓)라는 종루로 삼았다. 1994년 안심당을 지어 승려들의 수행전진과 신도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사찰 내 봉국약수는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여 불자들의 수양 도량으로서는 물론 시민들의 휴식처로도 사랑받는 곳이다.
    정릉 마을 한 바퀴 주민실행위원회, 2017, 정릉 마을 한 바퀴,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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