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바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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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문지리
성북구 안암동의 밭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북바위밭은 한자로 고암전(鼓岩田)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고려대학교 경상대 쪽에 북바위로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그 뒤쪽 일대의 밭을 북바위밭이라고 하였는데, 수확이 잘되는 기름진 땅이었다고 전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태종이 하루는 미행을 나갔는데, 몰래 우의정 박은(朴訔)의 집에 이르러, 박은이 간장그릇 하나로 조밥 먹는 것을 모고 “한 나라의 재상으로 조밥을 먹을 정도로 가난한가?”라고 의심하였으나 사실이었다. 이에 태종은 청빈함에 놀라고 감탄하면서 청문(동대문) 밖 북바위 밭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안암동
  • 북바위 전답터 표지석(1)
  • 북바위 전답터 표지석(2)
  • 북바위 전답터 표지석(3)
  • 도성도 (도성 밖 동쪽 세부)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鼓岩田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근거자료 원문

  • ⑦ 鼓岩田이야기 鼓岩田이란 북바위밭을 가리키는데 지금의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뒤쪽 산아래 있는 지역으로 지금은 주택가이지만 옛날은 논과 밭이 있어 채소가 잘 되었다고 한다. 이 밭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太宗이 미행을 나갔는데 右議政 朴訔이 사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朴訔은 퇴청하여 늦은 저녁상을 받고 있었는데 간장그릇 하나와 조밥이 한사발 담긴 것이 전부였다. 이 때 都承旨가 와서 太宗의 행차가 있음을 알렸다. 朴訔이 황송해 하면서 곧 임금을 맞아들이려 했으나 너무 급해 씹지도 않고 삼킨 좁쌀이 목에 걸려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임금이 문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이에 임금이 노하여 박은을 꾸짖자 박은은 사실대로 아뢰었으나 왕이 「한나라의 宰相으로 조밥을 먹을 정도로 가난한가」라고 의심하여 사람을 시켜 들어가 보게 하니 사실이었다, 이에 왕은 그의 청빈함에 놀라고 감탄하면서 특별히 靑明(동대문) 밖 鼓岩田을 하사하였다. 왕의 이같은 은혜에 박은은 너무나 고맙고 놀라와서 더욱 나라에 충성하였는데 柳寬과 더불어 청빈한 宰相으로 꼽는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631쪽
  • 이토록 內外 高位職을 많이 역임하였음에도 그는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하고 家産을 생각하지 않아 자신도 조밥과 거친 옷으로 自足하는 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太宗이 私服차림으로 그의 집을 찾았는데 마침 조밥 식사를 하다가 재채기가 나서 곧 나와 손님을 맞이하지 못함에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던 태종의 안색이 자연 좋지 않았다. 이를 송구스러워 하며 사실을 말하자 태종은 놀라 믿지못하고 「경이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조밥을 먹는다니 말이 되는냐?」면서 사람을 시켜 안으로 들어가 알아보게 하였는데 사실이어서 이때 태종은 감탄하며 특별히 명하여 동대문 밖의 북바위 부근의 논·밭(鼓岩田) 몇 마지기를 주게 하였다고 한다. 이 鼓岩田은 현재 성북구 안암동 1번지 부근에 있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38쪽
  • 북바위 밑의 밭은 鼓岩田으로서 기름져서 소출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데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뒤편 아랫쪽의 주택가에 해당된다. 이 땅은 조선초 朴訔에게 하사된 토지로 알려져 있다. 하루는 太宗이 私服차림으로 옛 친구이자 대신인 박은의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조밥식사를 하다가 재채기가 나서 곧 나와서 손님을 맞이하지 못하였다. 태종이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다가 주인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니 자연 안색이 좋지 않았다. 주인인 박은이 송구스러워 하며 사실을 말하니 태종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이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조밥을 먹는다니 말이 되느냐?」고 하며 사람을 시켜 안으로 들어가서 알아보게 하였는데 과연 사실이었다. 이에 태종은 감탄하며 특별히 명하여 동대문 밖의 鼓岩田 몇 마지기를 주게 하였다는 것이다. 또 북바위 전답은 농부의 자격을 결정하는 의미로도 쓰여 「북바위 전답을 아느냐?」고 물어서 대답을 못하면 「농군으로서 그것도 모르는 것을 보니 가짜 농군임에 틀림이 없다.」라고 하여 동리에서 쫓겨났다고 전해온다. 한편 설렁탕의 유래가 북바위 전답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하는데 국왕이 親耕을 하기 위해 직접 행차하여 농부에게 「북바위 전답을 아느냐」고 물어서 안다고 하면 「진정 그대는 농부이구나」라고 흡족해 하며 곧 북바위 아래에서 잡은 소로 끓인 설렁탕을 수행한 대신은 물론 인근 마을의 주민들에게까지 주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북바위 밑은 근처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모두 이곳에 피신해 있다가 날이개인 후에 다시 일을 계속 하는데 그러한 일이 있은 후에는 반드시 소나 돼지를 잡아서 북바위에 제사를 드렸다.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물난리를 당한다는 말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00-801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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