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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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래유산
장소 인문지리
성북구 성북로 23길 일대의 마을 이름이다. 북정마을은 심우장 뒤편 한양도성 성곽이 보이는 언덕에 있다. ‘북적마을’로도 불렸는데, 조선시대 포백훈조 계가 여기 있던 시절, 인부들이 ‘북적북적’ 거리는 소리 또는 메주 쑬 때 ‘북적북적’ 끓는 소리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아름다운 경관과 맑은 공기 덕분에 한용운 등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무너진 한양도성 성곽 아래 판자촌을 이루어 살면서 마을이 커졌다. 마을을 한 바퀴 빙 두르는 도로는 1983년에 완공한 소방도로인데 이 도로 안팎에 500여 가구가 모여 산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 너른 길은 크고 작은 마을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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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적도 : 성북동 246번지 일대, 일제강점기~1962년
  • 지적도 : 성북동 246번지 일대,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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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북적마을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
  • 비고: 1950년대 전후 이주민들이 정착

주소

  • 주소: 02879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4 (성북로 23길)
  • 비고: 성북로 23길 일대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북정마을은 터가 예전에 국유지인가 그래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집 짓고 구들 놓고 살았습니다. 그 주거단지가 신정동으로 쫓겨나면서 사람들은 더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지요. 북정마을이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104쪽
  • 북정마을은 그냥 산동네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상수도가 없어서 공동수도를 사용하고, 우물이 있어서 물도 길어다 마셨죠. 달동네에는 연탄도 때고, 방 하나에 부엌 하나 이렇게 두고 살았습니다. 또 옛날에는 눈이 오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쌍다리부터 종점까지 발에 새끼 꼬고 올라가고 그랬습니다.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107쪽
  • 북정마을은 한양도성에 접해 있는 마을로 요즘 서울에서는 찾기 힘든 오래된 마을이다. 북정마을에서는 시골의 자연부락과 같이 이웃집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이웃 간에 정이 두텁고 공동체 생활이 지속되어 왔다고 한다.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123쪽
  • 성북동 길상사를 둘러 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언덕 위에 집들이 있다. 큰길을 두고 왼쪽은 크고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모여 있다. 반대편에 한눈에도 허름해 보이는 서울의 달동네, 그곳의 이름은 북정마을이다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62쪽
  • 성북동의 북정마을은 한양도성의 성곽마을이다. 와룡공원 옆에 성북동으로 빠지는 한양도성 암문이 있는데, 그 문 바깥에 성곽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북정마을이다.
  • 북정마을의 유래는, 영조 44년 1768년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때 궁에서 쓰는 메주를 우리 성북동, 우리 성북동 사람들이 쉽게 말하면 궁에 납품하는 거라 이 말이죠. 사람들이 많아서 북적북적거렸고, 메주를 끓이는 소리도 북적북적했답니다. 그래서 원래 북적인데, 북적북적하다보니까 북적마을로 된 겁니다.(김경동)
  • 성북동 북정마을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서울 성곽에 가장 가깝게 조성된 동네이다. 마을의 허두호 노인회 회장에 의하면 북정마을은 19세기 중엽 천주교도 박해 때 서울 성안의 교인들이 피신와서 숨어 살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성 밖의 아름다운 경관과 맑은 공기 덕분에 이태준, 한용운 등의 가난한 예술가와 한량과 기생들, 그리고 환자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북정마을은 도시 노동자들이 사는 동네가 되었다. 이후 성북동은 1960~1970년대부터 주요 재계 인사가 거주하면서 고급주택과 외교사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남쪽의 부촌과 달리 북쪽의 북정마을은 판자집이 난립해 있다. 서울 한양도성 북악산 성곽은 1968년 폐쇄되어 오랫동안 통제되었다가 지난 2007년 완전히 개방되었다. 2007년 북악산이 개방되면서 1970~1980년대의 풍경을 간직한 마을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와 성북구는 한옥과 관광을 겸한 지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의 일관성 없는 풍치지구 지정과 해제의 반복으로 경관은 더 퇴보되었지만, 그나마도 장수마을과 북정마을이 있어서 근대 서민문화유산으로 후손에게 남길 수 있다.
    박수진 외 4인, 2014, 미아리고개 이야기자원 모음집, 91-92쪽
  •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은 심우장 뒤편 한양도성 성곽이 보이는 펑퍼짐한 언덕에 있다. 마을 이름 ‘북정’은 조선시대 포백훈조 계가 여기 있던 시절, 인부들이 ‘북적북적’ 모이는 소리 또는 메주 쑬 때 ‘북적북적’ 끓는 소리를 따서 지었다고들 한다. 오늘날처럼 큰 마을이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무너진 한 양도성 성곽 아래 판자촌을 이루어 살면서 부터다. 1970년대 성곽 보수 · 복원공사로 성벽 가까이에 살던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지만 다시 마을로 돌아오거나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사람들로 주민 숫자가 늘어났다. 마을을 한 바퀴 빙 두르는 도로는 1983년에 완공한 소방도로 인데 이 도로 안팎에 500여 가구가 모여 산다. 마을 꼭대기 성북 03번 마을버스가 서는 정류장에 있는 작은 슈퍼는 ‘북정카페’로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정류장 앞 너른 길은 ‘월月월Wall축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마을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축제는 주민들뿐 아니라 마을에 입주해 살고 있는 예술가들도 참여한 다. 겨울에는 이곳에서 마을 아줌마들이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기도 한다. 슈퍼 건너편 북정노인정은 어르신들의 쉼터이자 마을의 중요한 일들을 논의하는 곳이다. 마을 곳곳 담벼락에는 아직도 재개발 반대의 목소리를 적은 벽보가 붙어 있어 지난 10년 동안 재개발 계획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의 한 자락을 읽을 수 있다. 2004년 서울시는 마을 일대를 주택재개발 정비예정구역 (성북2구역)으로 지정하고 이 구역을 한옥마을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해 한옥과 저층 주택이 어우러진 한옥마을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재개발추진위 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서울시는 2012년 성북2구역을 신월곡1구역과 묶어 ‘결합개발 방식’으로 시범 재개발한다고 밝혔다. 하지 만 이 계획 역시 마을을 그대로 보존하기를 바라는 대다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유보된 상태로 있다. 더구나 2017년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어 성곽 주변을 공사장으로 만드는 것도 난감한 일이라 한동안 재개발 소식은 쑥 들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189-190쪽
  •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은 심우장 뒤편 한양도성 성곽이 보이는 펑퍼짐한 언덕에 있다. 마을 이름 ‘북정’은 조선시대 포백훈조계가 여기 있던 시절, 인부들이 ‘북적북적’ 모이는 소리 또는 메주 쑬 때 ‘북적북적’ 끓는 소리를 따서 지었다고들 한다. 오늘날처럼 큰 마을이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무너진 한양도성 성곽 아래 판자촌을 이루어 살면서부터다. 1970년대 성곽 보수․복원공사로 성벽 가까이에 살던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지만 다시 마을로 돌아오거나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사람들로 주민 숫자가 늘어났다. 마을을 한 바퀴 빙 두르는 도로는 1983년에 완공한 소방도로인데 이 도로 안팎에 500여 가구가 모여 산다. 마을 꼭대기 성북 03번 마을버스가 서는 정류장에 있는 작은 슈퍼는 ‘북정카페’로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정류장 앞 너른 길은 ‘월(月)월(Wall)축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마을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축제는 주민들뿐 아니라 마을에 입주해 살고 있는 예술가들도 참여한다. 겨울에는 이곳에서 마을 아줌마들이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기도 한다. 슈퍼 건너편 북정노인정은 어르신들의 쉼터이자 마을의 중요한 일들을 논의하는 곳이다. 마을 곳곳 담벼락에는 아직도 재개발 반대의 목소리를 적은 벽보가 붙어 있어 지난 10년 동안 재개발 계획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의 한 자락을 읽을 수 있다. 2004년 서울시는 마을 일대를 주택재개발 정비예정구역(성북2구역)으로 지정하고 이 구역을 한옥마을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해 한옥과 저층 주택이 어우러진 한옥마을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재개발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서울시는 2012년 성북2구역을 신월곡1구역과 묶어 ‘결합개발 방식’으로 시범 재개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계획 역시 마을을 그대로 보존하기를 바라는 대다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유보된 상태로 있다. 더구나 2017년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어 성곽 주변을 공사장으로 만드는 것도 난감한 일이라 한동안 재개발 소식은 쑥 들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 3-17
  • 9. 성북동 소재(관련) 서울시 미래유산 - 분야 : 시민생활 - 미래유산 : 북정마을 - 소재 : 성북구 성북로23길 일대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14쪽
  • 심우장 뒤편 한양도성 성곽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옛날 이곳에 ‘포백훈조계’가 있어서 당시 메주 쑤는 소리가 ‘북적북적’하고 났다고 하여 ‘북적’이 ‘북정’으로 바뀌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함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53쪽
  • 비탈 마을, 북정 시인 김광섭은 "성북동 산에 새로 번지가 생기면서/본래 살던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제 성북동에 본래 살던 그 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빌라가 들어서고, 한옥이 양옥으로 바뀌면서 성북동의 옛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어린 아이들이 자라 청년이 되고, 그들은 성북동을 떠나 현대화된 새로운 주택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마치 본래 살던 비둘기들이 없어진 것처럼. 그러나 여전히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성북동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으며, 명절이면 그 어르신들을 찾아서, 떠났던 비둘기들이 돌아오곤 한다. 그러면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은 성북동 어디에 남아 있을까?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성북동 사람들이 비둘기처럼 모여 살던 곳 중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두 마을이 있다. 하나는 홍익중학교 왼편의 산 3번지 일대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북정마을이라고 부르는 심우장 뒤쪽 동네이다. 이 두 마을은 산꼭대기에 서로 대각선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형성되어 있다. 군데군데는 옛 모습을 지우고 새로운 주택이 들어섰지만, 이 두 마을은 여전히 예전의 골목 풍경과 낡은 집들이 이어지며 지나온 시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그 중 특히 북정마을은 지금도 여전히 그 옛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호흡하고 삶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북정 마을은 유명한 성북동 돼지갈비집 뒤에서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 뒤까지 이어진 성곽 바로 아래의 마을을 지칭하는 말이다. 북정 마을은 어디에서 연유된 이름일까? 한자로는 '北亭' 혹은 '北井'이라고 쓰니, '북쪽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거나 '북쪽 우물이 있는 마을' 쯤이 된다. 그러나 북정 마을에는 정자도 없고 우물도 없다. 북정 노인정 근처에 새로 지운 정자가 있기는 하지만, 옛 이름이 거기에서 유래되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옛날에는 우물이 있을 법도 하고, 혹은 근처 말바위를 지나면 샘물이 있으니 거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타당성 있는 이름은 아마도 한글 '북적거리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영조 44년(1768)에 궁궐에서 쓸 메주를 쑤어 납품할 권리를 성북동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이 메주를 주로 북정 마을에서 쑤었다고 한다. 메주를 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을 해야 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고 해서 북정마을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북정마을이 한양도성 바로 너머에 있고, 나라에서 훈조막(燻造幕)을 설치하여 메주를 쑤게 하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적거렸다고해서 이곳을 '북적골'이라고 하였다는데, 여기에서 북정마을이 유래되었을 것이다. (중략) 북정마을이나 마전터라는 이름은 모두 한양도성의 인근이었기 때문에 붙을 수 있는 호칭이었을 것이다. 산 아래 개울 근처가 마전터이고, 성 근처 산 위가 북정마을이었으니, 이 두 명칭은 산과 개울로 이루어진 성북동을 온전히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전터는 자취조차 없어졌지만, 북정마을은 여전히 성 아래 자리를 잡고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성북동을 찾는 이들에게 과거의 풍경을 기억하게 해 주고 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18-21쪽
  • 성곽과 북정 마을 북정마을을 상징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서울 성곽'을 둘 수 밖에 없다. 그 만큼 북정마을 사람들과 서울 성곽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우선 사람들이 북적거린다고 해서 붙였던 마을 이름 북정이 성곽 곁에 있어서 성안 사람들에게 메주를 쑤어 납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니, 성과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마을을 감싸고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곽은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어른들의 산책길이며, 북정이라는 마을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존재였다. 지금도 북정마을에 사는 많은 어르신들은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왼편의 휘어진 성곽 부근을 '연나산'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정월 무렵이면 저기에서 어린 아이들과 어른들이 어울려 연을 날리곤 했어.' 북정마을에서 만난 어르신 한 분은 그런 말을 하며 아들한 기억을 더듬기도 할 정도였다. 성곽이 있고, 그 성곽의 한 귀퉁이에서 연을 날리며 자란 아이가 이제는 초로의 할아버지가 되어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동네가 바로 북정마을이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21-22쪽
  • 성곽과 북정 마을 (상략) 그러니 북정 마을은 한양 도성 중에서도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어울린 곳이라고 한 수 있다. 실제로 북정마을 사람들은 성곽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 정도다. 성곽을 따라 북정마을 한쪽은 자연의 숲으로 이어지고, 다른 쪽은 인간의 마을로 이어진다. 인간이 자연과, 문화재와 어울려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북정마을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24쪽
  • 북정 풍경 (상략) 북정마을은 성북동 토박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내가 여기서 30여년 살았는데, 그래도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없어요." 통장을 밭고 있는 김경동씨가 그렇게 말할 정도니, 얼마나 오래 이곳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지 짐작할 만하다. 50년 넘게 이 마을에 사는 사람도 있고, 3대에 걸쳐 살아가고 있는 집안도 있다고 한다. 함께 모여 김장을 하고, 김장담그기 힘든 집에는 담근 김장을 나누어 주기도 하며, 일 년에 한 번씩은 마을 축제를 여는 곳, 마을 풍경과 사람을 담은 마을 달력을 만들기도 하는 마을이 바로 북정마을이다.
    김경아 외 7인, 2013, 성북마을 이야기, 30-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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