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동
1949
장소 인문지리
성북구 남서쪽에 있는 동의 이름이다. 혜화문 밖 동소문동, 동선동 일대의 평평하고 드넓은 들판을 삼선평이라고 칭한데서 동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에 속해 있다가 1936년 일제가 경성부를 확장하면서 경성부에 편입되어 돈암정이란 일본식 동명이 붙었다. 1943년 서울에 구제(區制)가 실시되면서 동대문구에 속하였다가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돈암동에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삼선동에는 사적 제10호인 한양도성,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7호 삼군부 총무당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성북천을 따라 성북구청, 성북경찰서등의 주요 행정기관들이 있다.
삼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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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三仙洞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

근거자료 원문

  • 평평하고 드넓은 땅, 삼선평에서 유래된 삼선동 성북구 일대는 북한산의 줄기가 곳곳에 뻗쳐있는 탓에 평지가 거의 없다. 취락에 불리한 지형 여건 때문에 사람과 인구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지형 여건이 아름다운 자연 광경을 자아냈기 때문에 도성 사람들에게 명소로 손꼽히기도 했다. 이처럼 산간지대가 대부분인 성북구에서 평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성북천 근처의 삼선평, 안암천일대, 중랑천·수유천 일대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삼선평은 혜화문(속칭 동소문)에서 좀 더 밖으로 나가면 이르는 성북천이 만들어낸 평평한 들판이었다. 삼선평이라는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일설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선이 동리 남쪽 옥녀봉 봉우리에서 옥녀와 놀았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경치가 수려한 이 지역에서 신라시대의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평(坪)이란 명칭이 붙을 정도로 넓어 조선시대에도 군사 훈련장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 혜화문 밖의 고운 모래와 가녀린 초목들이 끝없이 펼쳐진 삼선평. 곧 군대의 연무장이 기도 한 평야의 뒤편에는 삼선봉이라는 산이 있어 그 아래에 있는 동네를 삼선동이라 부른다. 동 가운데에 높게 두드러진 대를 삼선대라 부르는데 높이가 수장에 달하는 소나무의 나뭇가지들이 기이하게 석대에 얽히어 있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로 세 분의 신선이 지상세계로 내려와 꽂아 놓고 간 것이라 전해진다. 惠化門外明沙細草一望無際名曰三仙坪, 卽練武之場也. 坪後有山曰三仙峰. 峰下有洞曰三仙洞. 洞中有臺曰三仙坮, 有喬松數丈, 生于臺石上杈枒奇高相, 傳前朝時有三仙來降而過, 故名云. -「 한성풍토기」, 1905.8.25. -
  • 성 밑으로 완만한 구름을 이룬 삼선동 일대는 자두와 복숭아나무로 가득 찬 과수원과 목장이 있었다. 이 목장이 폐쇄되면서 별장과 주택이 들어섰다. 이 무렵 성북동 골짜구니에도 큰 별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문안이 지척이면서도 차단되었던 개화의 물결이 흘러들었다. - 정한숙 -
  • 그 후 1936년 4월 1일(總督府令 제8호) 京城府 확장 때 편입되어 京城府 敦岩町이라 하였다. 1943년 6월 10일 東大門區에 속했으나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敦岩町은 敦岩洞으로 바뀌고 1949년 8월 15일 城北區에 속하면서 그 지역이 넓었으므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으로 分洞됨으로써 현재와 같이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에 걸친 山麓의 대부분 지역만 敦岩洞으로 되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80쪽
    1949년 돈암동에서 삼선동이 분동된 것과 관련된 내용이다.
  • 三仙洞 城北川남서쪽의 서울 성곽을 끼고 있는 三仙洞는 조선시대에 혜화문 밖의 동소문동, 동선동 일대의 평평한 들판을 三仙坪이라고 칭했기 때문에 연유된 이름인데 三仙坪은 이 洞 남쪽의 玉女峰에서 玉女가 하늘에서 내려온 세 神仙과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한편 三仙坪은 평평하고 넓어서 大韓帝國時代까지 乙支路 6街의 訓練院과 함께 武場으로 살곶이들(簡串坪)과 같이 閱武場으로 쓰이기도 했다. 三仙洞은 朝鮮時代초부터 漢城府東部崇信坊(城外)에 속해 있었으나 마을 명칭은 나타나지 않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朝鮮末 甲午改革(1894) 때 기록에 보면 漢城府 東署 崇信坊(城外) 東門外契 三仙坪이라 하였다. 그 뒤 한일합방으로 日帝가 1911년 4월 1일(京畿道令 제3호) 경기도 京城府 崇信面 三仙坪이라 하고, 1914년 4월 1일(京畿道令 제1호) 경기도 高陽郡 崇仁面 敦岩里로 하였다. 1936년 4월 1일(總督府令 제8호) 日帝가 京城府구역을 확장할 때 경성부에 다시 편입되어 敦岩町 이란 日本式洞名을 붙였다. 1943년 6월 10일(府令 제163호) 서울에 區制를 실시함으로써 이 洞은 東大門區에 속하였다. 光復을 맞은 후 서울의 洞, 街는 우리 고유의 명칭으로 고쳐지게 되었으므로 1946년 10월 1일 敦岩町은 敦岩洞로 改稱되었고, 1949년 8월 15일(大統領令 제159호) 城北區가 신설되기 이전인 같은 해 5월 13일(서울市 告示제34호)에 三仙洞 1, 2, 3街로 되었으며, 그 후 5개 洞으로 분할되어 三仙洞1, 2, 3, 4, 5街로 되었다. 이 洞의 서쪽과 남쪽의 경계를 이루는 서울 城廓은 史蹟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성곽은 총 연장 18,127m로서 北岳山, 仁旺山, 南山, 駱山을 잇고 있다. 이 성곽은 태조 이성계가 漢陽에 천도한 지 2년 뒤인 太祖 5년(1396)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 49일간 118,070명을 동원하여 축조하였다. 이 때 2/3이상은 士城으로 쌓았으므로 그 해 여름에 장마로 무너지자 태조는 2차로 9월 1일부터 49일간 79,400명을 동원해서 돌로 쌓고 8개의 門樓를 건축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서 무너진 곳이 많게 되자 世宗4년(1422) 1월 15일부터 40일간 322,640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이 당시 872명이 사망했는데 부상자 수효는 알 수 없다. 世宗 때 축성된 도성은 모두 石城으로 자연석이 아닌 직사각형으로 다듬어 쌓은 것이 특색이며, 太祖 때보다 1尺씩 높게 쌓은 외에 城牒을 쌓아 군사들이 전투 때 이 城牒에 의지해 싸울 수 있도록 했다. 또 城 안팎에 15尺 의 도로를 내어 순찰에 편하도록 하였으므로 도성(都城)의 위용은 世宗 때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도성의 관리를 위해 城門都監을 설치하고 右議政을 책임자로 8인의 실무진을 두어 10일마다 1번씩 도성 내외를 순찰하고 보고를 하게 했다. 임진왜란 후 肅宗 30년(1704) 3월 25일부터 수축공사를 하다가 중지하고 이듬해 6월부터 시작하여 숙종 35년(1709) 에 완료했다. 蕭宗때 수축된 도성의 특색은 上下 모두 약 2尺의 方形이고 돌과 돌 사이의 간격이 없이 수직으로 쌓았는데 東大門, 白岳 동쪽, 光熙門 부근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삼선동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그 후에도 이 성곽은 英祖 때와 高宗 때도 보수공사를 했지만 日帝에 의하여 光武 2년(1898) 10월부터 훼손되기 시작하여 1915년에 京城市區域改修計劃에 따라 많은 부분이 철거되었다. 이에 1975년부터 서울市에서 서울성곽 복원계획을 세워 총연장 18,127m 중에서 滅失된 6,703m 외에 복원 가능한 11,424m를 1979년까지 단계적으로 복원했다. 이 洞의 남쪽 玉女峰부근의 오똑한 곳은 옛날 軍人의 死刑場으로 쓰였다고 구전되어 온다. 또 혜화문(惠化門) 밖에는 새의 피해를 막기 위해 惠化門 門樓에 鳳凰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에 따라 이 곳에 鳳凰亭이란 정자가 지어졌다고 하며 亭子이름을 따서 鳳凰洞이란 마을 이름도 있었다. 三仙橋는 三仙坪의 이름을 따서 城北川에 놓여진 다리이름으로 동소문동과 성북동, 삼선동의 경계가 되는 「동소문로」에 놓여진 다리와 그 남쪽에 人道橋가 각각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는데 현재는 城北川일부가 覆蓋되어 三仙市場과 商街아파트가 들어섰으므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三仙洞 1街의 史蹟으로는 漢城女高 옆의 三仙公園(512-160)내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된 三軍府 總武堂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조선말 高宗 3년 대원군이 軍務를 통할하는 관아로서 비변사 대신 訓練都監의 新營, 南營, 馬兵所를 설치하여 삼군부라 했다. 이 건물은 2년 뒤인 高宗 5년(1868)부터 현재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三軍府가 사용하던 것을 高宗 19년(1882) 에 폐지하고 統理機務衙門과 統理軍國事務衛門의 청사로 쓰이다가 갑오개혁 후 待衛隊청사가 되었다. 한일합방 후 일제는 朝鮮步兵司令部로 사용하다가 1930년대에 3개 건물 중 統武堂만을 이곳으로 옮기고 경기도 公務員練成場으로 사용했다. 6·25동란 후에는 고아원과 서울시 직업훈련원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淸憲堂건물은 1967년에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내로 이전했다. 현재 三仙洞 1가∼5가 지역은 삼선 제1, 제2동사무소에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71-773쪽
  • 〈三仙 第1洞〉 三仙 第1洞은 삼선동 1가, 2가 지역과 駱山(125m) 밑의 敦岩洞 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轄區域명칭이다. 앞서 성북 제1동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日帝때인 1933년 10월 3일에 서울에 町會가 설치되었지만 이곳은 1936년 4월 1일 이후에 京城府에 편입되었으므로 이 때 旭丘東部洞會가 설치되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 후 1955년 4월 18일 (市條例제66호) 「洞制」실시 때 일제식 명칭인 旭丘 대신 三仙이라 하고 1, 2, 3洞으로 分洞되면서 旭丘東部洞會는 三仙 第1洞事務所로 개칭하는 외에 旭丘西部洞會는 三仙 第3洞事務所로 바꾸었다. 이 洞남쪽의 醫山은 서울 內四山의 하나로서 산모습이 낙타와 같으므로 駱駝山또는 駝駱山이라고도 칭하였다. 이 산은 서울의 左靑龍에 해당되는 산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지고 전에는 숲이 우거지고 깨끗한 水石과 약수터가 있어서 산책로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현재는 산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서 옛자취를 찾기 어렵고, 서울성곽만이 옛모습을 지니고 있다. 조선초 명종 때 학자 南師古가 동으로 낙산, 서로 鞍峴을 가리키며 반드시 朋黨이 생길것인데, “駱이란 것은 各馬이니, 동을 주장하는 당은 각기 나눠질 것이요, 鞍은 革安이니, 서를 주장하는 당은 혁명한 후에 안정되리라” 하였는데 과연 東人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西人은 인조반정 후에 안정되었다. 삼선제1동사무소 관내인 삼선동 1이 북쪽으로는 城北川이 복개되어 있고, 「동소문로」에는 지하철 4호선의 한성대입구역이 있다. 삼선동 1가와 삼선동 2가 남쪽은 山地로서 지대가 높은데 삼선동 2가 392번지에는 漢城大學이 자리잡고 있고, 그 서쪽에는 한성여자중고등학교가 있다. 한성대학은 金義衡이 1972년에 私立 한성여자대학을 세운 뒤 1978년 1월에 남녀공학으로 바꾸면서 현재와 같은 명칭으로 되었다. 한성여자고등학교는 1945년 10월에 金義衡이 세운 뒤 1950년에 학제변경으로 중고등학교가 분리되었다. 광복 당시부터 1990년까지 삼선제1동사무소의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774쪽 표 참조).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73-774쪽
  • 〈三仙 第2洞〉 三仙第2洞은 三仙洞3, 4, 5街와 東小門洞 5街 및 郭岩洞일부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洞長管韓區域 명칭이다. 삼선 제1동과 같이 삼선 제2동은 1936년 4월 1일 京城府에 편입된후 旭丘西部洞會가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광복 후까지도 이와같이 불리우다가 1955년 4월 18일(市條例 제66호) 「洞制」실시 때 三仙 第1, 2, 3洞으로 分洞되면서 이 곳은 三仙 第2, 3洞지역이 되었다. 이 당시 삼선제2동은 돈암동 중 제1동 경계도로 以西, 山 54,467의 11, 山 48의 沿道 以東의 지역을 관할했고,삼선제3동은 돈암동 중 山 54로부터 山 48에 이르는 도로 以西, 동소문 성벽 以東, 三仙橋 下성북천 以南의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 후 1980년 7월 1일(市條例 제1413호) 常住人口1만 미만의 洞은 통폐합하게 됨에 따라 삼선제3동을 삼선제2동사무소 관할구역에 통합하였다. 이 당시 조정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775쪽 표 참조). 이 洞북쪽으로는 성북천이 복개되어 있고 「보문로」(신설동∼성북구청∼돈암시장)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동서로는 「삼선교길」(삼선교∼삼선2동∼삼선2교)이 통해 있다. 그리고 이 동 관내 「보문로」변에는 城北區廳(삼선동 5가 411번지)이 있고 그 옆에는 성북경찰서가 위치하고 있다. 성북구청은 1949년 8월 13일(大統領令 제159호) 東大門區의 일부 지역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의 일부를 합하여 서울특별시의 9번째 區로 출발한 후 1950년 3월 30일 「동소문로」변의 동소문동 3가 29번지의 3층 석조건물에서 행정업무를 보다가 1957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전일 삼선제3동 지역에는 鳳凰亭이 세워져 있었는데 전에 三仙坪 일대에 새의 폐해가 많았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惠化門 門樓에다 鳳凰을 그려놓고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선동 3가 남쪽의 玉女峰은 옛날 玉女가 세 신선과 더불어 놀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지하철 한성대입구역이 있는 城北川에 놓였던 三仙橋는 복개되어 그 모습이 사라졌으나 이 다라 이름은 전에 동소문동 2가와 삼선동 1가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이었다. 30여년 전까지도 이 다리 밑에서 세탁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삼선동 3가에는 京東高等學校(50번지), 三仙國民學校(30번지의 4) 가 위치하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774-776쪽
  • 삼선이란 이름은 삼선동 남쪽 옥녀봉 봉우리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세 명의 신선이 옥녀와 더불어 놀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옥녀 역시 선녀를 의미하니 여러 신선이 어울리던 전설이 남아 있던 곳이다. 이곳이 평지였기 때문에 화랑의 수행장소였으며, 그것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삼선평'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말이다. 영조 42년(1766) 어영청의 북둔이 성북동 지역에 설치되고, 삼선평은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되었으며, 근대에는 한국 최초의 축구경기와 운동회 등이 열리기도 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시국강연회도 자주 열렸는데 도산 안창호도 그 중 한명이다. 삼선동의 경계로는 성북천이 흐른다. 성북천은 산업화시대 복개되었다가, 2010년에 다시 개복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었다. 연극인, 미술인, 음악인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삼선동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성북문화원, 2016, 성북문화 제4호, 290-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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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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