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각
1972
서울미래유산
장소 상업시설
성북구 대사관로 3(성북동 330-115)에 위치한 전통문화예술복합공간이다. 삼청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72년이었고, 그 당시에는 유신시대를 대표하는 고급요정이었다. 남북적십자회담의 만찬장으로 시작하여,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이 은밀하게 만나는 접대 장소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시대가 바뀌면서 요정으로 대표되던 ‘방석문화’가 이른바 ‘룸살롱 문화’로 대체되었고, 재정난을 맞이한 요정들은 차츰 쇠락하게 된다. 삼청각도 이런 이유로 간판을 내리게 되었고, 1996년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해 ‘예향’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오다 1999년 폐업하였다. 2000년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고 리모델링을 거쳐 2001년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개장했다가 2009년부터 (재)세종문화회관으로 이관해 식문화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하였고,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성북동
  • 삼청각
  • 대사관로 일대(10)
  • 제1회 성북구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_2009 ‘성북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행사 사진
  • 삼청각 원경
  • 삼청각 내부 돌담
  • 삼청각 남천문 앞
  • 삼청각 천추당 전경
  • 삼청각 유하정 전경
  • 삼청각 일화당 전경
  • 삼청각 일화당 앞
  • 삼청각 청천당 앞
  • 삼청각 입구
  • 대사관로 일대(11)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三淸閣
  • 이명칭: 예향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상업시설

시기

주소

  • 주소: 02822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30-115 (대사관로 3)

문화재 지정

근거자료 원문

  • 삼청각은 유신시대의 대표요정으로서 남북정상회담, 정치인 회동 그리고 외국 사업자를 접대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요정으로 대표되던 ‘방석문화’가 이른바 ‘룸살롱 문화’로 대체되었고, 재정난을 맞이한 요정들은 차츰 쇠락하게 된다. 삼청각도 이런 이유로 간판을 내리게 되었고, 지금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전통문화공연장으로 남아있다.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29쪽
  • 71, 2년도 삼청각이란 요정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요정인데, 그 요정에 들어가는 아가씨가 하루에 그때 당시 들리는 말에 의하면 5백 명이 들어가서 2백 명이 퇴고(돌아가고), 3백 명이 하룻밤을 지내고 했었대. 우리 동네에 거기에 출근하는 아가씨들이 있었어. 요 아랫집에만 해도 출근하는 아가씨들이 열 명 살았어. 바글바글하게… 삼청각에서 버스가 내려와. 계속 실어 나르는 거야. 요정아가씨들을, 저녁마다 실어 나르는 거야, 버스가 삼청각으로 올라가는 거야. 여기 사는 사람도 있었고, 딴 데 사는 사람도(있었고).. 삼청각에서 버스가 내려와서 싣고 가는 거야. / 아가씨들 복장은 어땠나요, 한복? 양장이지. 투피스. 한복 같은 건 안 입고. 일본관광객들이 매춘하러 많이 올 때지. 삼청각이 주로 그거였다고. 매춘관공. 이 앞에 일본... 저 길상사 올라가는 버스 정류장, 거기서 버스가 올라갔다고.
  • 삼청각은 해당 홈페이지 창에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는 전통문화예술복합공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으나 실제 이 공간이 품고 있는 역사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다소 긴 설명을 요한다. 원래 삼청각 부근에는 청룡암靑龍庵이란 절이 있었다. 조선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안동김문의 세도가 김좌근金左根(1797-1869)이 1853년(철종 4)에 창건한 절이다. 1934년 8월 30일 국어학자 이윤재李允宰(1888-1943)가 『동아일보』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청룡암은 비구니 승방으로 당시 박묘상朴妙相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3~4인의 상좌를 거느리고 절 살림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서울의 지척에 있지만 인적이 드물고 소란스럽지 않아 속세를 벗어난 별유천지의 경관이 빼어나므로 풍류를 즐기는 인사들이 왕왕 들러 놀다 가고 혹 정양차 기숙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1934~1935년 무렵 춘원 이광수(1892-1950) 가 이 절에 머물면서 『그 여자의 일생』이란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춘원은 소설 쓰는 틈틈이 가까운 심우장에 들러 만해를 보고 가기도 여러 번이었다고. 김용준, 이태준 같은 성북동의 예술가들도 청룡암과 미륵암(현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자리)을 산책 삼아 찾고는 하였다. 8.15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는 와중에도 꿋꿋이 법맥을 유지해 오던 청룡암은 1969년 산지개발계획에 밀려 토지를 매각하고 동소문동으로 도량을 옮겼다. 1972년 청룡암이 있던 곳 조금 위쪽에 삼청각이 들어섰다. 6천여 평의 넓은 대지에 4층짜리 한옥 본관과 별관 4개를 갖춘 당대에 보기 드문 규모였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11월 30일 남북조절회의 만찬이 이곳에서 열렸다. 남측 대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측 대표 박성철 부수상이 공동성명의 발표를 축하하는 건배를 했다. 그 후 삼청각은 19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과 국빈 접대를 위한 장소로 즐겨 사용 되다가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개방되면서 고급 요정으로 운영되었다. 상주하는 호스티스만도 300명이 넘었던 삼청각은 대원각, 오진암과 함께 장안의 3대 요정으로 꼽혔다. 그러다가 1983년 여주인 이정자 씨가 외화 밀반출 및 탈세 사건에 연루되는 악재를 겪은 이후 시내 고급 룸살롱 등에 밀려 손님이 크게 줄어드는 경영난에 부딪히게 되자 결국 1993년 부지와 건물 일체를 내놓고 문을 닫았다. 1996년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해 ‘예향’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오다 1999년 예향이 폐업하자 2000년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고 리모델링을 거쳐 2001년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개장했다. 2009년부터 (주)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권을 넘겨받아 한국의 식문화 및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2015년 2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185-187쪽
    서울시 미래유산 공식 홈페이지에는 삼청각의 미래유산 지정연도가 2013년으로 소개되어 있다.
  • ○ 발길 닿는 곳마다 퍼지는 문화의 향기 문화의 향기 26 삼청각 요정에서 문화공연장으로 화려하게 변신 - 1970~1980년대 요정정치의 산실로 대표되던 곳. 여야 고위 정치인의 회동과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는 등 오랜 세월 국빈 접대와 정치 회담 장소로 명성을 떨쳐왔다. 1990년대 중반 이름을 예향으로 변경하고 일반음식점으로 바뀌었다가, 2000년 서울시가 문화시설로 지정하였다. 전통문화공연장, 일화당, 취한당, 천추당, 동백헌, 유하정 등 5개의 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시에서 국제회의장 및 한옥체험이 가능한 게스트 하우스로 리모델링 계획을 추진 중이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4, 성북 100경, 49쪽
  • 1972년 청룡암 자리 위쪽에 삼청각이 들어섰다. 6천여 평의 넓은 대지에 4층짜리 한옥 본관과 별관 4개를 갖춘 당대에 보기 드문 규모였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11월 30일에 열린 남북조절회의 만찬이 이곳에서 열렸다. 남측 대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측 대표 박성철 부수상이 공동성명의 발표를 축하하는 건배를 했다. 그 후 삼청각은 19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과 국빈 접대를 위한 장소로 즐겨 사용되다가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개방되면서 고급 요정으로 운영되었다. 상주하는 호스티스만도 300명이 넘었던 삼청각은 대원각, 오진암과 함께 장안의 3대 요정으로 꼽혔다. 그러다가 1983년 여주인 이정자 씨가 외화밀반출 및 탈세 사건에 연루되는 악재를 겪은 이후 시내 고급 룸살롱 등에 밀려 손님이 크게 줄어드는 경영난에 부딪히게 되자 결국 1993년 부지와 건물 일체를 내놓고 문을 닫았다. 1996년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해 ‘예향’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오다 1999년 예향이 폐업하자 2000년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고 리모델링을 거쳐 2001년 전통문화공연장으로 개장했다. 2009년부터 (주)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권을 넘겨받아 한국의 식문화 및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2015년 2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 3-16
  • ­ 삼청각의 변신(1996) ㆍ1996년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해 ‘예향’이란 이름으로 영업 ㆍ1999년 예향이 폐업하자 2000년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고 리모델링을 거쳐 2001년 전통문화공연장으로 개장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60쪽
  • ○ 1980~90년대 성북동 관련 신문기사(중앙일보) ㆍ요정 三淸閣, 혼례식장 변신 정계, 재계의 상류층 인사들이 즐겨찾던 고급요정인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三淸閣)이 「예향(禮香)」이라는 전통혼례식장으로 변모해 시민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개업 22년만인 지난 4월 간판을 내린 삼청각은 대지 1천여평 규모의 대연회장인 「일화당」을 대대적으로 개축해 지난 10월1일부터 결혼식을 위한 뷔페 및 대규모 모임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일화당 앞마당 3백평 규모의 잔디에는 전통혼례를 치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으며 지금까지 모두 10쌍의 신혼부부가 이 야외예식장을 이용, 혼례를 치렀다. 가마, 사모관대 등 전통혼례장비 등을 갖추고 있으며 성균관 유생이 직접 나와 전통혼례 예법대로 예식을 치러준다. 결혼식 장소이용료는 무료. 대신 일화당에서 피로연을 치러야 한다. 양식뷔페인 식사가격은 1인당 2만~3만5천원으로 특급호텔 수준. 일화당에서는 결혼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각종 모임이나 돌, 회갑잔치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유하정(幽霞亭), 청천당(聽泉堂), 천추당(千秋堂), 동백헌(東白軒), 취한당(翠寒堂) 등 5개의 별채에서는 일반인들의 각종 모임이 하루 평균 5~6차례씩 치러지고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삼청각은 장안 최고급 요정으로 남북비밀협상이나 한일협상의 막후협상 무대(?)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여야 정치인들의 사교계 밀실로 각광을 받았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들어 룸살롱 등이 번성하면서 그 명성이 퇴색하기 시작했고 문민정부 출범후 사정바람으로 고위층인사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경영난이 악화돼 고급요정으로서의 22년 역사를 마감했던 것이다. 이곳에서 전통혼례식을 치른 崔모(30)씨는 『옛날같으면 일반인들은 접근도 어려웠던 곳에서 결혼식을 치르게 돼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며 『결혼식이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4.12.11.)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63-164쪽
  • ○ 2000년대 성북동 관련 신문기사(중앙일보) ㆍ요정정치 산실 삼청각 문화공간 탈바꿈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재냐, 청산해야 할 요정 건물이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사진)이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전통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서울시는 25일 “삼청각 본관격인 일화당(9백70여평)을 전통예술 공연장 겸 전통 음식점으로 개조해 10월말부터 시민에게 개방하겠다” 고 밝혔다. 나머지 5개 건물 중 유하정과 청천당.천추당은 연내에 내부를 개조해 다도(茶道)체험장.판소리 전문학교 등으로 활용한다. 한옥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취한당과 동백헌은 외국 귀빈들이 전통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숙박시설로 운영된다. 이로써 이미 종교시설로 변한 대운각·선운각 등 과거 서울의 3대 고급 요정 모두가 면모를 달리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북한산 자락 5천8백여평에 위치한 삼청각은 1972년 건립돼 74년 남북 적십자 대표단 만찬장으로 사용됐고 한·일협상 막후협상이 이뤄졌던 곳이기도 하다. 70~80년대 정치인들이 즐겨 찾아 ‘밀실정치의 산실’이란 얘기를 들었고 한때는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기생관광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한창일 때는 외국 주요 바이어들의 단골 접대장소이기도 했다. (2001.03.26.)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69쪽
  • ○ 성북동 미래유산 인증번호 : 1996년 일반음식점23 미래유산명 : 삼청각 소재지 : 대사관로 3 소유주 : 서울시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229쪽
  • 9. 성북동 소재(관련) 서울시 미래유산 - 분야 : 정치역사 - 미래유산 : 삼청각 - 소재 : 성북구 대사관로 3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314쪽
  • 서울 성북구 성북2동 330-115에 위치한 삼청각(三淸閣)은 1972년에 설립된 전통문화공연장이다. 삼청각은 1970년~1980년 요정정치의 산실로 대표되던 곳이었다. 여야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제4공화국 유신시절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다. 삼청각은 기생요정문화의 상징이었으며 70년대 일본관광객을 상대로 소위 이야기하는 방석문화, 기생관광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삼청각(三淸閣)이란 이름은 원래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집을 의미하는 태청(太淸), 옥청(玉淸), 상청(上淸)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산 맑고 물 맑고 인심 맑은 산청(山淸), 수청(水淸), 인청(人淸)의 의미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삼청각은 2000년 서울시가 인수,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통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으며, 2009년 7월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면서 한국의 풍요로운 전통문화와 정서를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전통문화체험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1년에 리모델링하여 전통문화공연장으로 개장한 후 연중 전통공연이 열리고 있다. 새롭게 단장한 삼청각은 공연장, 한식당, 찻집, 객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모는 대지 5,884평, 연건평 1,331평이다. 일화당, 유하정, 청천당, 천추당, 취한당, 동백헌 6채의 한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심미적으로도 보존가치가 충분하다.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문화정책과, 서울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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