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月谷洞
하월곡동 동쪽, 「花郞路」양쪽에 위치한 上月谷洞은 천장산의 모습이 마치 반달과 같다하여 그 산에 連해 있는 마을을 다릿굴(골)이라 부르는데서 연유되었다.
이 중 높은 지대에 위치한 지역을 웃다릿골(上月谷里), 아래지역을 아랫다릿골(下月谷里)이라 불렀다.
상월곡동은 朝鮮 英祖 때까지는 漢城府 東部 崇信坊의 城外地域으로 있었는데高宗 4년(1867)에 발간된 『六典條例』에 의하면 漢城府 東部 崇信坊(城外)의 月谷里契로 되어있다. 甲午改革때에는 漢城府 東署 仁昌坊(城外) 東小門外契의 月谷上里로 되었는데 한일합방에 따라 日帝는 1911년 4월 1일(京畿道令 제3호) 京畿道 京城府 仁昌面 上月谷里로 하고, 이어서 1914년 4월 1일(京難道令 제1호) 京畿道 高陽郡 崇仁面 月谷里로 하였다.
광복 후 1949년 8월 13일 서울市에 편입되면서 성북구가 신설될 때 이에 속하게 되고 동시에 月谷里는 上, 下月谷里로 분리되었다. 이에 따라 城北區 崇仁出張所에서 행정을 담당했는데 이듬해 1950년 3월 15일(市條例 제10호) 上月谷洞으로 개칭했다. 그 후 1978년 10월 10일(市條例 제1286호) 50m 도로를 경계로 상월곡동 일부를 長位洞에 편입시켜 축소되었다.
이 洞은 경기도에 편입되어 있을 당시까지는 주민들은 농업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서울市에 편입되면서 人口가 늘기 시작하여 농토가 주택지로 바뀌었고, 1960년 이후에는 도심지의 철거민들이 집단 이주하여 변모했다.
상월곡동은 동대문 밖을 나와서 城北驛을 거쳐 元山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옛날에는 아침 일찍 동대문을 나선 길손이 이 洞이 있는 곳에 이르면 대개 점심 때가 되므로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여 주는 주막이 많이 생겨났다. 경원선 철도가 부설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洞의 일대는 주막거리로서 옛 길손들의 애환을 그대로 담았던 곳이다.
상월곡동의 행정은 현재 上月谷洞事務所에서 담당하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809-8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