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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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상업시설
일제강점기 정릉동에 있었던 음식점이다. 일제강점기 아리랑고개 흥천사(성북구 흥천사길 29) 근처에 있었던 상춘원은 그리 크지 않은 요정이었는데, 이곳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아리랑고개’의 지명 유래와 관련한 하나의 가설 때문이다. 1929년 문을 연 상춘원의 홍보를 의뢰받은 홍봉진이 위치를 안내하기 위해 “동대문 밖 삼선평을 지나 신흥사(흥천사) 옆으로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 옥수청류가 흐르는 시냇가에 기암과 창송으로 울을 삼아 깨끗이 지어 놓은 상춘원을 찾아 오시면 미주가효로 값싸게 대접하여 드리겠다”는 문구를 써 주고, 그것을 붙여놓고 오가는 사람들이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리랑고개라는 이름이 지명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정릉동
  • 정릉각희대회(貞陵脚戱大會) 상춘원광장(賞春園廣場)에서
  • 조선요리朝鮮料理 상춘원賞春園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賞春園
  • 이명칭: 상춘관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상업시설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 - ?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 비고: 청암사(성북구 정릉로6가길 49)와 만세교(성북구 정릉로26길 1 일대, 현재 정릉2동 주민센터 부근)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조선요리朝鮮料理 상춘원賞春園」, 『동아일보』 , 1931.4.14." 참고).

근거자료 원문

  • 유명한 삼청각은 원래 어떤 곳이었으며, 삼청각 이전에 대원각, 대하, 상춘관이라는 이름난 ‘요정’들이 성북동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 ­ 한신 아파트 올라가는 큰 길은 언제 생겼나요? 아파트가 생기면서니까 20년 전에… 20년 아직 안 됐어요. 그 위에 그 아파트가 올라가는 자리에, 우리 아버지가 하던 병원이 있었는데, 세를 줬었고 그 옆에 상춘관이라는 기생집이 있었어. 여자들 나오는 술집이. ­ 언제까지 있었어요? 꽤 됐죠. 없어진지. 주인도 부부가 같이 운영을 했는데. 거기에 마을버스 정류장 있잖아요. 뭐가 있었냐면, 쌀가게… 그 다음에 이 골목으로 양쪽으로 한옥으로 돼 있었고. 요 건물(산부인과)만 딱 3층으로 올라 있었어.
  • ­ 상춘관 규모는 어땠나요? 그렇게 크진 않고…조그만 한 데야. ­ 어떤 분들이 이용 했나요? 바로 요 앞이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아니고, 성북동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이 와서…(계영선)
  • 하루는 김씨金氏가 날더러 말하기를 정릉貞陵이 지금은 산간山間 벽지僻地이지만 수석水石이 깨끗하고 삼각三角의 영봉靈峰을 배경背景으로 해서 멀지 않은 장래將來에는 좋은 주택지住宅地가 되어서 자기自己의 토지土地가 큰 물건이 될 터인데 이 일대一帶를 일반一般에게 널리 소개紹介하기 위하여 요리料理집을 시작始作하겠으며 그 집의 이름은 상춘원賞春園이라고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 광고문廣告文을 지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우선 그 위치位置를 안내案內하기 위하여 동대문東大門 밖 삼선평三仙坪을 지나 신흥사新興寺 옆으로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 옥수청류玉水淸流가 흐르는 시냇가에 기암奇岩과 창송蒼松으로 울을 삼아 깨끗이 지어 놓은 상춘원賞春園을 찾아 오시면 미주가효美酒佳肴로 값싸게 대접하여 드리겠다는 뜻을 써 주었다. (중략) 1929년에 내가 가정家庭교사 노릇을 잘 하기 위하여 멋대로 명명命名한 이름이 요사이 와서는 누구 한 사람 의심疑心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들 '아리랑 고개', '아리랑 고개'하고 넘어 다닌다.
    홍봉진, 1986, 양촌일지, 93쪽
    홍봉진의 저서 양촌일지에 상춘관의 본래 이름인 상춘원이 등장한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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