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경찰서
1945.10.21
장소 관공서
성북동 보문로 170(삼선동5가 301)에 위치한 서울지방경찰청 관할 경찰서이다.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 발족과 함께 개서하였다. 1979년 10월 종암경찰서 개서로 5개 동의 관할이 이전되면서 현재는 돈암동·동선동·동소문동·보문동·삼선동·성북동·안암동 등 성북구 서부를 관할하고 있다. 2008년 신청사가 건립되었고, 2010년 3개 지구대(돈암, 안암, 길음지구대), 3개 파출소(정릉, 정릉2, 성북파출소)로 관할이 조정되었다. 소설가 박완서는 결혼하기 전 이 부근에서 살았는데, 이 때문에 성북경찰서는 그의 소설 속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삼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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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城北警察署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관공서

시기

  • 시대: 현대
  • 시기: 1945.10.21

주소

  • 주소: 02848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5가 301 ( 보문로 170 서울성북경찰서)

근거자료 원문

  • 전후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때의 경험과 피폐해진 공간 속에서 겪은 삶은 이 후박완서의 글 곳곳에서 드러난다. 한국전쟁 전 좌익운동에 투신했던 오빠 때문에 현저동을 떠나 돈암동 으로이사하고, 돈암동에서도 집을 세 번이나 옮겨야했다. 그래도 돈암동은 행복한 기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어머니는 바람대로 딸을 가장 좋다는 서울대학에 보낸 기쁨과 뿌듯함을, 오빠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과 안정감을, 박완서는 여대생이 되어 교정을 거닐고, 문학소녀의 꿈을 펼치는 첫발을 내딛는 설렘을 간직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전쟁 후 다시 돌아온 돈암동은 이전과 다른 삶이 기다리는 곳이었다. 성북경찰서에서 널찍한 양회다리를 건너 신안탕 뒤로 집들이 늘어선 골목 안에 이웃이라고는 한 집도 없었다. 텅텅 빈 집들만 있는 그 적막함이 전쟁을 떠올리게 하다. 남과 북, 누구를 위한 대립인지도 모른 채 서로를 죽인 전쟁 중에 오빠가 총상을 입고 세상을 뜨고만다.
  • 내 처녀적의 마지막 집도 성신여대와 성북경찰서 사이에 있었다. 내가 시집갈 무렵 친 정집도 딴 동네로 이사를 가버려서 다시는 가볼 기회가 없었다. … 그제서야 내가 천 주교회와 신선탕 중간 지점에 서 있다는 걸 알았다. 나의 옛집은 바로 신선탕 뒷골목 에 있었고, 그 남자네 집은 천주교단 뒤쪽에 있었다. 천주교당도 신선탕도 천변길에 있었다. 교회는 증축을 했는지 개축을 했는지 그 자리에 있으되 외양은 많이 바뀌고 커져 있었지만 목욕탕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고 이름까지 그대로다. 세상에 오십 년 전 그 목욕탕이 그대로 남아 있다니, 오십 년이면 목욕탕이 온천이나 사우나나 찜 질방으로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박완서, ⌜그 남자네 집⌟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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