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관동/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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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문지리
석관동의 주거환경에 대한 내용이다. 석관동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시대 경종의 무덤인 의릉이 있고, 그 능역에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국가안전기획부(구 중앙정보부)가 있어서 통제가 이루어졌었기 때문에 개발이 엄격히 제한된 동네였다. 따라서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중심의 주거 환경이 오래 지속되었고, 적극적인 편의시설 확충과 공공시설 개량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의릉의 개방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들어와 무거운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도시의 노후화는 주요한 과제이다.
석관동
  • 석관동 전경
  • 석관동 338번지 일대
  • 이문동 아파트에서 바라 본 석관동 일대
  • 석관동 하늘채코오롱아파트와 주변 모습
  • 래미안석관아파트와 주변 모습
  • 돌곶이로8아길 일대(3)
  • 돌곶이로8아길 일대(2)
  • 돌곶이로8아길 일대(1)
  •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보이는 석관동 일대(2)
  •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보이는 석관동 일대(1)
  • 돌곶이로5길에서 본 래미안아트리치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근거자료 원문

  • (5) 기타현황 • 주택 유형별 현황 단독·다가구 68,392호 다세대·연립 25,262호 아파트 67,075호 계 160,72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돌곶이 생태문화 연구팀, 2013, 돌곶이 문화지도 그리기, 44쪽
  • 석관동 단독주택 주택 ‘가’ 화랑로와 의릉-천장산 사이, 새석관시장 뒤편으로도 저층주거지가 있다. 의릉 권역에 중앙정보부가 있었던 영향인지 이 구역의 항공사진은 1982년에 촬영된 사진이 가장 최근의 것이다. 이 주거지의 북쪽은 화랑로에 면하고 남쪽으로는 옛 중앙정보부와 면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 이 구역에 지어진 주택 ‘가’를 살펴본다. 이 주택은 단층으로 건축물의 면적이 66.12㎡(약 20평)이며, 1961년 1월 10일에 사용승인을 얻었다. 건축물관리대장에는 시멘트벽돌에 기와가 올려진 형태로 등재가 되어 있는데, 2019년의 모습을 보면 외관에 나무판을 붙이고 건물 양측면의 한쪽 경사지붕 아래를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붕의 가운데 북쪽 방향으로 돌출창이 나있는 것으로 보아, 맞배지붕의 상부 공간을 일부 다락으로 조성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물관리대장 상의 정보와 배치를 통해 원형을 추정해보면, 1960년대 초반 시멘트벽돌을 쌓아 벽체를 구성하고, 목재를 사용하여 지붕틀을 구성한 후, 맞배지붕 형식에 시멘트기와를 올렸다. 본 건물은 남동쪽으로 건물의 긴 면이 향하고, 대지의 경계에 세워진 담장의 북동쪽으로 대문이 나있다. 간략한 건축물의 구조에 비해 대문은 두 곳이 열리도록 되어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앞마당을 끼고 측면의 현관으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많은 부분이 1960년대의 원형에서 바뀌었음을 마감 재료와 공간의 확장에서 알 수 있어, 향후 면밀한 조사 작업이 필요하다.
    박수진 외 5인, 2019, 장위동∙석관동, 249-251쪽
  • 석관동 단독주택 주택 ‘나’와 ‘다’ 석관동에는 몇 곳의 시장이 있는데, 그중 골목으로 형성된 곳이 돌곶이시장이다. 돌곶이시장의 골목은 서울시 항공사진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가장 오래된 시기인 1972년에도 형성되어 있다. 주택지 건축물들의 사용 승인일과 항공사진을 통해, 시장 골목의 형성이 1970년대 초에 본격화되었다고 보인다. 돌곶이시장 주변으로 1970년부터 1973년 사이에 작은 마당을 가진 ‘ㄱ’자형 주택들이 대거 지어졌다.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큰 골목들에 의해 구획된 면 안에는 작은 규모의 유사한 형태의 집들이 작은 필지에 겹겹이 배치되어 지어진 모습이다. 2019년 현재에도 큰 골목과 주택 사이의 작은 골목의 형태는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돌곶이시장 골목의 바로 남쪽에 면한 주택 ‘나’의 경우 1972년 7월 13일 사용승인을 얻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둔 주택은 시멘트벽돌과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혼합되어 지어졌고, 건축면적에 산입되지 않는 지하1층 8.07㎡(1층 면적의 약 14%)의 공간도 있다. 당시의 많은 주택 지붕은 대부분 시멘트기와를 올려 마감을 하였다. 1972년과 1973년 항공사진의 비교를 통해 주택 ‘나’보다 먼저 지어진 주택 ‘다’를 살펴봤다. 주택 ‘다’ 역시 벽돌로 지어졌는데, 주택 ‘나’와 마찬가지로 건축면적에 산입되지 않는 지하 1층 12.4㎡(1층 면적의 약 19%)의 공간이 있다. 주택 ‘나’와 ‘다’를 통해 지하 공간을 살펴보면 1970년 건축법과 연관이 있다. 1970년 정부는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등의 주택 신축시 의무적으로 지하실을 만들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전시에 방공호나 진지 등 군사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인데, 반공이데올로기가 한창이었던 시절에 시행된 건축 규제였다. 이 당시 만들어진 지하실은 설비가 갖추어지지 않아서 대부분 창고 등의 비주거실 용도로 사용되었다가, 1980년대 들어 서울로의 유입인구 급증에 지하에 설비를 갖추면서 소위 ‘셋방’이 생기게 되었다. 지하 방공호의 주거실 사용은 불법이었지만, 당시 부족한 주택 공급에 행정에서 묵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하실의 열악한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84년 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지하층 일부를 지상으로 올려 채광이나 환기가 가능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반지하의 시작이 된 것이다. 군사목적 지하공간 설치 의무는 1989년 삭제되었지만, 이후 건축기준 완화와 침수 피해를 대비하기 위한 설비 등을 의무화하면서 반지하 규정들이 갖춰지게 되었다. 돌곶이시장 주변 대부분의 주택들이 20평 내외의 규모를 가진 단층주택으로 지어졌다. 좁은 대지에 크지 않은 마당을 가지며 실 주거 공간의 면적을 최대한 활용한 주택으로, 골목에는 대문을 돋보이게 세우거나 입면에 벽돌 외 돌붙임 마감을 하는 등 외관에 보여지는 모습으로 1970년대 초반 신축 주택의 멋을 부리기도 했다.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다세대주택과 원룸형 주택들이 새로 지어지고 있으나, 골목의 형태와 필지의 규모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서울 동북부 주거 확장 시기의 주거지역 도시구조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반공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군사목적의 지하공간이 탄생한 1970년대의 시대상을 간직하고 있는 주택 밀집 지역으로 사회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박수진 외 5인, 2019, 장위동∙석관동, 251-254쪽
  • 석관동 단독주택 주택 ‘라’ 의릉으로 들어가는 정문 앞에서 남북으로 연결된 화랑로32길의 북쪽 끝은 화랑로에 닿는다. 화랑로32길 양쪽으로는 2층 높이의 상가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편으로 저층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주택 ‘가’ 보다는 좀 더 늦게 지어졌고, 주택 ‘나’와 ‘다’보다는 일찍 지어진 주택 ‘라’가 있다. 이 주택은 화랑로32길의 바로 뒷골목으로, 골목의 폭이 상당히 좁고, 주택들의 대문은 상가건물 뒤편과 마주보고 있다. 주택 ‘라’는 1965년 10월 25일 사용승인을 얻은 건물로, 연면적은 57.22㎡(약 17평) 수준으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된 벽돌구조로 지어졌다. 이 골목의 다른 주택들도 같은 시기에 지어졌는데, 대문 지붕이 단순한 조형미를 가지고, 문주와 본체 외벽 일부에 요철문양이 들어간 석재로 마감이 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주택은 주택 ‘가’에 비해서는 일자형 평면이 아닌 한쪽 끝이 꺾여 돌출된 형태를 띄고 있으며, 주택 ‘다’의 주택군에 비해서는 마당이 좁고 꺾인 형태의 평면의 폭이 본체에 비해 돌출 부위가 뭉특하고 좁아 평면 구성과 비례가 어색하게 보인다.
    박수진 외 5인, 2019, 장위동∙석관동, 255-256쪽
  • 단독주택의 외관 형태 다른 지역에서도 1970년대 단독주택들은 대문과 난간, 지붕 하부에 장식적 요소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석관동의 단독주택들도 유사한 특징들을 보인다. 골목과 필지의 관계성에 의해 모퉁이 필지의 경우 모서리의 각을 주는 대지경계선에 맞게 대문도 주택의 본체와 평행을 이루지 않게 놓여진 모습이 눈에 띈다. 대지의 한쪽이 대각선으로 면하고 있는 주택은 2~3개의 공간이 조금씩 빗겨나간 형태의 평면 구성을 보이기도 한다. 지역적 통일성은 동일 시기에 군락으로 지어진 구역을 빼면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이 남아있다.
    박수진 외 5인, 2019, 장위동∙석관동, 256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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