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학교의 교주였던 강진구姜振九는 12월 11일 삼산학교유지후원회와 학부형을 초대하고 삼산학교는 선조의 유업으로 설립된 곳으로, 학교를 경성부에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학교의 장소를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래 훌륭한 학교로 만들기에 힘쓰겠다고 약속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공립학교 승격방법을 둘러싼 논란 이후의 삼산학교
1938년 삼산학교 기부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있은 후 교주였던 강진구는 약속대로 학교의 경영에 힘썼던 것 같다. 1939년 1월 29일 『동아일보』는 3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무산아동의 유일한 교육기관삼산학교의 교주 강진구가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학교 승격 신청을 위해 경성부 학무과를 방문했음을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강진구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연 3,000원씩을 부담하기로 했으며, 삼산학교유지후원회에서는 교사를 책임지고 건축하기로 했다. 이 때 삼산학교는 6년제 사립심상소학교로 승격이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