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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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문지리
성북구의 자연환경에 관한 내용이다. 성북구의 서쪽과 남쪽은 숙정문에서 낙산까지 이어지는 북악산 한양도성이 경계가 되며, 낙산에서 신설동에 이르는 보문동 지역이 남쪽 경계가 된다. 동쪽은 중랑천과 접한 석관동이 경계가 되며, 서북쪽은 북한산의 보국문과 대성문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경계가 된다. 따라서 북악산, 북한산, 낙산이 경계를 이루는 주요 산이 되며, 구내에는 개운산과 천장산이 있다. 내부에 흐르는 하천은 성북동에서 발원하여 삼선동과 보문동을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성북천과 정릉계곡에서 발원하여 길음동과 월곡동을 거쳐 청계천에 합류하는 정릉천이 있다. 하천들은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발달에 따라 복개되었다가 환경과 자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일부 복원, 정비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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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근거자료 원문

  • 9) 城北의 名勝(1)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城北區地域은 유구한 歷史性을 가지고 있으며 北漢山남쪽 기슭에 위치하여 背山臨水의 지형으로 계곡과 구릉 및 시냇물과 평지가 있어 명승지를 곳곳에 만들어 詩人·題客과 많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나 朝鮮時代 北屯桃花·北郊牧馬의 풍광은 더욱 돋보이며 王陵의 존재는 성북지역이 교외 명당자리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옛부터 惠化門과 肅靖門사이의 都城 밖 계곡을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水石이 어울려 있으며 도성이 부채꼴모양으로 감싼 이 마을에는 복숭아·앵두나무를 많이 심었다. 따라서 근래에 건물이 밀집되기 전까지만 해도 삼청터널 입구주변에는 앵두나무가 많이 있었다. 《漢京識略》 名勝條에 의하면 이곳을 일컫기를 ‘맑은 계곡과 언덕을 끼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복숭아를 섬어 생업을 삼고 있다. 매년 늦은 봄이면 놀이를 나온 사람들과 車馬가 두 줄을 지어 가득하게 산계곡 사이를 메우고 깨끗한 초가집이 많다’ 고 하였다. 또 《東國輿地備攷》 漢城府 名勝條에 보면 城北洞을 北渚洞이라 칭하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北渚洞은 惠化門밖 북쪽에 있는데, 洞里안에 복숭아나무를 벌여 심어서 봄철이 되어 복숭아꽃이 한창 피면 도성사람들이 다투어 나가서 놀면서 구경한다. 민간에서는 桃花洞이라부르며, 御營廳의 城北띤이 있다. 또 北寺洞이라고도 하며 옛날에 뿔좋가 있었기 때문에 墨寺洞이라고도 한다. 맑은 시내의 언덕을 따라 주민들이 복숭아나무를 심어서 생활을 한다. 늦은 봄철마다 노는 사람들과 車馬가 들에 밀린다. 正祖때 漢城府의 城市를 그런 〈城市全圖〉를 보고 임금이 시를 짓게 하였던 바 實學者 楚亭 朴齊家(1750∼1815)는 내가 사랑하는 것은 城北屯 주변의 풍속으로,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으면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다.(最憐城北屯邊俗 不種桃花以爲恥) 라 하였고 雅亭 李德懋(1741∼1793) 는 혜화문 밖에서는 무엇을 보겠는가 푸른 숲이 흰 모래밭에 연하여 있네 北屯의 복사꽃 천하에서 가장 붉고 푸른 시냇가에는 집집마다 짧은 울타리 (惠化門外何所見 點綴有林白沙嘴 北屯桃花天下紅 短籬家家碧溪沚) 라 읊었으며 羅巖 朴周大(1836∼1912)는 동소문 밖의 城北洞에는 언제나 풍류객 끊이지 않고 이곳으로 몰려오네 백보 밖에서 활쏘는 사람 과녁 맞추는 소리 딱딱하고 시냇물 따라 빨래하는 방망이 소리 요란하다 (東城之北北城西 遊人陸續恒來此 百道穿堋射矦正 一水緣谿漂聲邇) 라고 노래하였다. 이와 같이 城北洞에는 복숭아나무가 많았으므로 紅桃洞·桃花洞·복사동이란 자연마을 명칭이 남아있다. 조선시대 都城民들은 봄철이면 인왕산 아래 살구꽃(弼雲臺杏花), 서대문 밖 西池의 연꽃(天然亭荷花), 동대문 밖 수양버드나무(興仁門外楊柳), 세검정 부근 계곡(楊春臺水石)과 함께 이곳 성북동의 복숭아꽃(北屯桃花)을 구경하기 위해 나드리하였던 것이다, 한편 城北洞은 봄철 복숭아꽃빛이 계곡일대를 물들여 그 勝景을 탐미하기 위해 觀賞客들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고, 여름철에는 北漢山 連峰아래 자리한 까닭에 水石이 좋아 피서지로 알맞았으며, 가을철의 단풍 또한 절경이었다. 이에 政界의 혼란을 피해 이곳의 자연풍경을 즐기려는 文人·詩客들이 은거 수양터로 삼아 草堂을 짓고 이곳의 경치를 노래하기도 했다. 朝鮮末期 高宗때 西波 黃壽延은 온 세상이 혼탁해도 자신은 청렴하게 지내는 것을 나타내는 ‘臥城北洞’이란 詩를 이곳에서 짓기도 했다. 10년 동안 긴 휴가 얻어 北城 아래 누어있네 山水풍경 모두 내것이라 마음대로 노니는데 어느사이 귀밑 털 백발이 되어있네 한가하게 졸음 즐기고 술이 있으면 친구 불러 마신다. 萬餘 골짜기에 구름 덮이는데 이내 樓臺에는 가을 달빛이 밝구나 (聖朝乞長暇 十年臥城北 唐突煙霞癖 於焉鬟髮生 無事桓多睡 有酒卽相傾 萬壑雲俱黑 一樓秋獨明) 이러한 은거의 기상은 3·1운동으로 獄苦를 치른 偶丁 林圭의 이곳에 자리잡은 절과 암자의 청아한 운치와 그윽한 풍경을 읊은 ‘北山散橋’라는 詩에서도 엿볼 수 있다. 10년간 긴 세월을 城北 모퉁이에서 지내니, 靑龍庵 彌勒堂이 큰 거리같이 환하다. 高僧이 세상을 떠나니 佛經책 거두어 간직하고, 좋은 친구 찾아오니 술병을 끌어당긴다. 떠다니는 버들개지 눈보다 가벼운 것이, 살이 오른 살구알은 구슬알보다 크다. 산에 사는 운치를 늙어가며 깨달으니, 날마다 흐뭇한 마음으로 혼자서 즐긴다. (十載光陰城北隅 靑龍彌勒定通街 高僧去後收經卷 好友來時引酒壺 無定楊花輕勝雲 欲肥杏子大於珠 老僧漸覽山居趣 日日欣然獨自娛)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101-103쪽
  • 9) 城北의 名勝(2) 한편 朝鮮初期 漢城의 대표적인 모습을 읊은 漢都八詠을 통해 城北區의 모습을 보자. 한도8영은 조선조 三峰 鄭道傳이 선정하여 옳은 것으로 다른 文人들도 이를 칭송하여 詩를 짓기도 하였다. 즉 漢道八詠은 畿甸山河·都城宮苑·列署星拱·諸坊碁布·東門敎場·西江漕泊·南渡行人·北郊收馬로 이중 北郊收馬의 모습에서 城北地域을 견주어 볼 수 있다. 鄭道傳의 詩를 보면 저 북쪽 들 펀펀하기 숫돌 같은데 봄철되면 풀 무성하고 샘물 좋다네. 일만 말 구름처럼 몰리고 까치처럼 뛰는데 목자들 마음대로 서쪽 남쪽 서성이네 라하였다. 權近은 무성한 풀은 긴 들 저 밖인데, 맑은 냇물은 끊어진 언덕가로 흐르네 용마 일만 필 다투어 높이 뛰는데 저멀리 오색 꽃 잇달았네. 언덕에서 뛰놀 적에 발굽에서 번개나고 바람에 울음우니 갈기에서 연기 출렁이네 사특함 없는 그 생각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 詩傳의 駉詩 한 편 우리 임께 드리려네. 라 하였다. 그리고 權遇는 들이 넓으니 푸른 연기 덮여 있고 봄이 깊으니 푸른 풀 가지런히 자랐네 닫고 뛰는 군마들 동쪽으로 서쪽으로 번갯불 번쩍 가볍게 굽놀리네. 물을 건너며 무리지어 마시고 바람 향해 서서 짝을 찾아 울음 우네 목자들 하루종일 긴 언덕에 오르내리니 도롱이 삿갓에 비 젖어 쓸쓸하여라. 라고 옳고 있다. 한편 고종 때 文人 淮山 李濟九는 어느 늦은 가을 東小門을 벗어나 城北洞을 찾아 나서 길을 걸으며 다음과 같이 그 풍광을 옮고 있다. 小靑門 밖 나가니 城市 티끌 볼 수 없고 나귀 등엔 붉은 夕陽이 이글거린다. 들판의 국화 시냇가의 단풍 가을 빛 서로 어울려 한폭의 그림 이루었구나 (小靑門外市虛空 驢背斜陽冉冉紀 野菊溪風霜意近 十分秋色畵圖中) 다음 성북구 정릉동 일대는 北漢山 南麓에 위치하여 普賢峰·釋迦峰·聖德峰·化龍峰·潛龍峰·兄弟峰 등의 여러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고, 남쪽을 향하여 크고 작은 능선이 뻗어 내려오면서 그 사이로 깊은 골짜기 맑은 시냇물이 곁들여서 가는 곳마다 산수풍경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도 오랜 옛날부터 시냇물이 맑고 좋다하여 淸水라는 이름이 생겨나 마을 이름이 되었다. 이곳은 여름철이면 피서·淸遊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찾아 들고 있다. 3·1운동 때 48인의 한사람으로 만년에 세상을 등지고 山水를 찾아 불평의 심회를 달래던 偶丁 林圭는 정릉계곡을 찾아 이런 詩를 옳고 있다. 한 그릇 물을 마시며 童子의 예절을 생각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옛사람 은혜 감사한다. 간신히 걸어서 정릉골짜기에 이르니 숲 속의 서늘한 바람불어 정신을 상쾌하게 한다. 勺水深知童子禮 樹陰偏感古人恩 辛勤行到貞陵谷 林吹淸凉淨返塊魂 또 淸水洞 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登山路가 北漢山城의 大成門·輔國門을 지나 북한산 정상인 白雲臺에 이르고, 보국문을 넘어서면 동북쪽으로 露積峰·萬景臺·白雲臺·仁壽峰 등 북한산의 웅장하고 기묘한 봉우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심봉사·영추사 동 사찰이 계곡 사이에 있어 풍광을 더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산 즉 삼각산을 옳은 詩한 수를 살펴보자. 공중에 높이 솟은 세 송이 푸른 연꽃 아득한 구름안개 몇만 겹인고 전년에 樓臺에 올랐던 곳 추억하니 날저문 절간에 종소리 두어번 울리네 聳空三朶碧芙蓉 縹緲煙霞幾萬重 却憶當年倚樓處 日沉蕭寺數聲鍾 이 시는 高麗때 吳洵이 지은 시이다. 또 李存吾는 다음과 같이 북한산을 읊고 있다. 세 송이 기이한 봉우리 멀리 하늘에 닿는데, 아득한 大氣에 구름연기 쌓였네 쳐다보니 날카로운 모습, 長劒이 꽂혔는데 가로 보니 엇비슷 푸른 연꽃 솟았네 언젠가 두어해 동안 절간에서 글 읽을제, 2년간 한강가에 머무렀네 누가 있어 산천이 무정타고 말하던가 이제 와서 서로 보니 피차가 처량하네 三朶奇峯逈接天 虛無元氣積雲烟 仰看廉利攙長劒 橫似參差聳碧蓮 數載讀書蕭寺裏 二年留滯漢江邊 孰云造物無情者 今日相看兩慘然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104-107쪽
  • Ⅱ. 自然環境 1. 位置와 面積 2)성북구의 위치와 면적 성북구는 서울의 북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서울특별시 중 비교적 새로운 구의 하나이다. 1943년 京城府制개편으로 동대문구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1949년 성북구가 분리 신설되었고 1973년에는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북구의 極東은 中浪川을 경계로 中浪區 墨洞과 인접해 있는 石串洞이며, 極南은 신설동 로터리에서 종로구와 경계를 이루는 普門洞, 極北은 북한산의 여러 城門들 중의 하나인 貞陸洞의 輔國門지역이다. 성북구의 남서지역은 한성대학교 뒷편에서 삼청터널까지 이어지는 옛 성벽을 경계로 종로구와 인접해 있으며, 북서지역은 북한산의 주능선을 따라 종로구,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그리고 도봉구 수유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동지역에는 牛耳川을 경계로 蘆原區 月溪洞과 인접해 있는 長位洞이 있다. 성북구가 가지고 있는 위치적 특성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도심에서 약 5㎞권내에 있어 도섬에서 가까운 안정된 주거지역으로서의 위치이다. 성북구의 면적은 24.29㎢로서 서울특별시 전체면적인 605.42㎢의 4% 에 불과하다. 〈그림 2〉 서울특별시의 확장 (원본 32쪽.) 〈그림 3〉 성북구의 행정구역 (원본 33쪽.)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32-34쪽
  • 2. 地質 2)성북구의 지질 성북구의 지질은 주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화강암은 우리나라 최대의 지각변동이라고 할 수 있는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조산운동(一名 後大同紀造山運動)에 의해 형성된 대보화강암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밖에 화강편마암과 호상편마암 등이 국지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일부지역 즉, 정릉천∙중랑천∙안암천 등 하천 연안에서는 국지적으로 충적층이 분포하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37쪽
  • 6. 河川 城北區에는 2個의 河川이 었다. 城北川과 貞陵川이 그것이다. 모두 河川法上 準用河川이다. 그 중 城北川은 城北洞 13-245에서 東大門區 新設洞의 淸溪川합류 점까지 7.7㎞인덴 城北區 區閒은 4㎞ 이고, 貞陵川은 貞陵洞 820, 779-2, 952번지 등 3개의 始點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청계천 합류점까지 10.25㎞ 인데 성북구 구간은 7.5㎞ 이다. 또한 貞陵川의 支流로서 月谷川이 있는데 城北洞 13-245번지를 始點으로 하여 下月谷洞 貞陵川 合流點까지 3.75㎞ 이다. 이들 河川의 改修記錄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1950년대 초부터이다. 貞陵川邊과 城北川邊에 人口가 集積한 시기는 1920년대 전후로서 여름 장마철이면 겪게 마련인 河川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 堤防을 쌓고 護岸을 정비하는 등 일련의 改修工事가 일찍부터 있었을 것이나 전해지는 기록이 없다, 다음으로 각 하천의 改修沿革을 기술하기로 한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383-384쪽
  • 3. 地形 2)성북구의 지형 서쪽에는 북한산의 南藏臺(715.7m)를 主峰으로 하여 북악터널을 지나 北岳山(342.4m) 에 이르는 비교적 험준한 능선으로 모래내(砂川)와 분수령을 이루면서 安岩川과 貞陸川이 區內를 관류한다. 이들 하천들은 침식을 잘 받는 화강암질과 아울러 천정천을 이루어 자주 범람했으나 근년에는 거의 복개되어 도로로 변하였다. 동쪽에는 소위 楸哥嶺構造谷이라고 부르는 저지를 중랑천이 남류하며, 장위동 부근에는 도봉동에서 연속되는 넓은 충적지를 형성하고 있다. 중앙에는 天藏山(141.8m) 에서 고려대학교의 뒷산, 즉 開運山(131)에 이르는 구릉이 남아서 변화를 주고 있는데 이들 능선 사이를 정릉천이 개석된 침식곡을 형성하면서 남류한다. 이영택, 한국지명요람, 건설부 국립지리원, 1982, p.40. 성북구는 지형적으로 山地와 低地로 대별할 수 있다, 산지는 주로 區 西部地域에 해당된다. 서부의 산지는 태백산맥 鐵嶺부근에서 갈라져 남서쪽으로 향하는 廣州山脈의 일부이다. 이 광주산맥이 서울 부근에 달하면 그 높이가 낮아져서 500m 내외의 잔구성 산지가 된다. 서울의 鎭山이라고 할 수 있는 北漢山(836.5m)은 일명, 三角山∙華山이라고도 하며 서울 일대의 최고봉이다. 북한산에서 도봉구 북단의 道峰山(739.5m) 까지 사이에는 露積峰(716m), 白雲臺(810.5m), 仁壽峰(604m), 만장봉 (739.5m) 등의 암봉이 솟아있다. 이들 산봉을 이루는 화강암은 중생대 쥐라기의 大寶造山運動에 의해 형성된 대보화강암이다. 이들 암봉은 화강암의 돔(dome) 으로 해발 약 400 ∼ 500m 이상의 고도에서 평균 200 ∼ 300m 내외의 첨봉을 이루며 솟아 있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능선과 사면에 토어(tor) 라는 특수한 미지형이 발달하고 있다. 토어는 독립된 암괴지형으로서 소위 “흔들바위”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이에 속한다. 북악터널 위 능선에 있는 소위 “해골바위”라 하는 것도 대표적인 토어에 해당되는 것이다. 토어의 규모는 높이 약 5 ∼ 10m가 가장 일반적이다. 토어를 이루는 블록 (block)은 절리 블록(joint block)의 형태를 유지하며 모서리가 둥글게 풍화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下段블록보다는 上段블록이 더 둥글게 풍화되어 있다. 이 밖에 볼 수 있는 미지형으로는 타포니(tafoni)가 있다. 이 지형은 암석의 수직면에 발달하는 구멍으로서 벌집모양의 형태를 갖는 것에서부터 독립된 하나의 구멍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북악산 등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지형이다. 이 일대의 낮은 부분은 개발되어 정릉∙성북동 등을 이루지만 높은 부분은 수도권개발제한구역으로 남아 있어 삼림이 보존되어 있다. 북한산에서 남쪽으로 남장대 (712m)∙북악산∙ 駱山으로 뻗은 산릉은 종로구와 성북구를 갈라 놓는다. 여기에서 성북천과 정릉천이 흘러 내려 성북천 계곡과 정릉계곡을 이루고 있으나 현재는 거의 택지화되어 심산유곡의 옛 풍치는 찾아 볼 수 없다. 이 산릉을 정릉에서 횡단하여 북악산 북면을 통하여 북악터널과 성북동에서 횡단하는 삼청터널은 약 200m 높이에서 성북구와 종로구를 연결한다. 이 산릉이 더욱 남쪽으로 내려와 낙산이 되며, 이 낙산과의 사이는 혜화문이 있었던 혜화동 고개를 이룬다. 정릉계곡 동쪽을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산릉은 미아∙길음∙고려대학교 뒷산인 개운산(131m) 에 이르는 구롱을 만들고 있다. 돈암동에서 정릉천으로 빠지는 아리랑고개와 돈암동에서 길음∙미아동으로 통하는 미아리고개는 이 산릉을 넘는 주요한 고개이다. 특히 미아리고개는 경원 가도의 요지에 있어, 옛날에는 되너미 재(狄踰嶺)라고도 불렀으며, 6∙25 동란시 격전지가 되었던 곳이다. 이 두 산릉 사이를 흐르는 성북천과 정릉천은 구릉 사이에 저지대를 이루어 먼저 시가지가 되었다. 성북천은 동남류하여 안암천이 되어 신설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유입한다. 정릉천도 동남류하다가 하월곡동 부근에서 남쪽으로 돌아 제기천이 되어 청계천에 유입한다. 이들 하천은 복개되어 시가지로 변한 부분도 있다. 장위동∙월곡동의 구릉지를 제외하면 중앙부는 낮은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중앙 저지는 추가령구조곡 남단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거의 남북으로 직선상으로 의정부와 연속된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40-42쪽
  • 4. 土壤 2)성북구의 토양 성북구의 토양은 주로 河川氾濫地土壤과 內陸平坦地土壤 그리고 山岳谷間地土壤∙低丘陸地 및 山麓地土壤∙丘陸地 및 山岳地土壤 등으로 구분된다, 하천범람지토양은 本 區 동부지역에 해당되는 석관 제1동의 중랑천 부근에 국지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 토양은 범람지 및 충적토로서 배수는 약간 양호 내지 매우 양호하며, 砂質내지 砂壤質의 토성을 가지고 있다. 내륙평탄지의 토양은 장위 제2∙3동과 석관 제 1동 그리고 종암 제2동, 월곡 제1∙3∙4동, 안암동, 동선 제1∙2동, 돈암 제1동 등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 토양은 회색토 및 충적토로서 배수 정도는 약간 불량하며 微砂埴壤質 내지 埴質의 토성을 가지고 있다. 산악곡간지토양은 충적토 및 회색토로서 배수가 약간 양호 내지 약간 불량하며 자갈이 있는 사양질의 토양과 퇴적토로서 배수가 약간 양호 내지 양호하며 사양질 내지 식질의 토양으로 구분할 수 있다. 前者의 토양은 성북 제1동과 동소문동, 삼선 제2동, 돈암 제2동, 길음 제1∙2∙3동, 정릉 제1∙2∙3∙4동 등에 국지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後者의 토양은 성북 제2동과 정릉 제3∙4동에 분포하지만 그 비율은 극히 낮은 상태이다. 저구릉지 및 산록지토양은 다음과 같은 지역에서 각각의 토성을 가지며 분포하고 있다. 즉 장위 제2∙3동과 안암동, 길음 제2동, 정릉 제 1∙4동, 성북 제1동 등에서 적황색토 및 암쇄토가 분포하고 있다. 이 토양은 저구릉지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산성암이 풍화된 결과 형성되었으며, 배수는 양호하고 식양질 내지 사양질의 토성을 가지고 었다. 장위 제1∙2동과 월곡 제2동, 종암 제1동, 길음 제2∙3동, 정릉 제1∙2동, 삼선 제1동 등 비교적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하는 토양은 암쇄토로서 저구릉지에 나타난다. 산성암이 풍화되어 형성된 토양으로 배수는 매우 양호하다. 식양질 내지 사질의 토성을 가지며 침식토에 해당된다. 반면에 장위 제1∙2∙3동과 석관 제2동, 월곡 제2동, 안암동, 종암 제2동, 길음 제2동, 보문동 지역에서는 회색토 및 충적토로서 저구릉지 谷間에서 형성된 토양이 분포하고 있다. 이 토양의 배수상태는 불량하거나 약간 양호하며, 식양질 내지 식질의 토성을 가지고있다. 한편, 윌곡 제3∙4동과 장위 제1동, 돈암 제1∙2동, 길음 제1∙2∙3동, 안암동, 삼선 제1∙2동, 보문동, 정릉 제1∙2∙3∙4동 등 구내 거의 모든 지역에서 고르게 분포하는 토양은 구릉에서 발달하고 있는 토양으로 암쇄토이다. 이 토양 또한 산성암에서 비롯된 것으로 배수는 매우 양호한 상태이며 사양질 내지 식양질의 토성을 가지고 있다. 산악지에 분포하고 암쇄토로서 배수가 매우 양호한 상태이며 사양질 내지 식양질의 토성을 가지는 토양은 주로 구 서부지역에 해당되는 성북 제1∙2동과 정롱 제2∙3∙4동 그리고 동소문동, 동선 제2동, 돈암 제2동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종로구와 북악산 능선을 따라 경계를 이루는 정릉 제3∙4동, 성북 제 2동에는 암석노출지가 분포하기도 한다. 〈그림 6〉 성북구의 토양분포 (원본 45쪽.)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44-47쪽
  • 5. 氣候 2)성북구의 기후 성북구의 기후는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서울특별시의 기후적 특색과 크게 다른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즉, 냉대와 온대의 점이적 기후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강수량에 있어서도 서울특별시의 연평균강수량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미기후적 측면 즉, 서울특별시 전체의 도시기후로 볼 때, 성북구는 도시교외적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여름철 맑은 날 도심 最高溫地와 기온차를 비교할 때 성북구내에서 비교적 기온이 높게 나타나는 길음 제1동은 0.6 ∼ 1.2℃, 돈암 제1동은 0∼ 1.1 ℃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돈암 제1동이 도심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은 교통량이 많고 지하철역이나 인구의 유동량이 많은 관계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근의 도봉구와 비교해 보면 성북구는 도심과의 거리가 비교적 가깝고, 교통량이 많으며 인구밀도가 높은 관계로 도심과의 기온차가 작게 나타난다. 즉 도봉 1동은 1.2 ∼ 2.7C, 방학 1동은 0.8 ∼ 2.9℃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도섬과의 기온차를 유발하는 원인은 이미 기술하였으며 이 원인으로 인하여 일부 지역에 있어서는 대기의 오염도가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성북동이나 정릉동의 고지대는 성북구 중 가장 좋은 기후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50-52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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