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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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문지리
성북동의 인구변화에 대한 내용이다. 1915년 조사된 성북동의 인구는 총 810명이었다. 1930년대 들어서 주택가가 조성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구수는 1,666명이었다. 1949년 통계에 따르면 인구수는 13,372명이었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1953년에는 5,546명으로 크게 줄기도 하였다. 1971년에는 27,988명을 정점으로 하여, 이후 2016년에는 세대수 8,007개로, 인구수는 17,526명이며, 2018년 17,902명으로 세대수는 8,052세대이다.
성북동
  • 북정마을 전경(6)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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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근거자료 원문

  • 성북동이 신문사의 한 구역으로 배정되었다는 것은 성북동의 인구가 증가해서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1915년에 조사된 성북동의 인구는 총 810명이었다. 그 후 5년이 지난 1920년에는 5명 줄어들어 805명이 거주했다. 성북동의 인구는 1930년대 들어 급격하게 증가했다. 1930년 조사에 따르면 성북동의 인구는1,666명으로, 1920년 조사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를 볼 수 있다. 한편 1933년 말에 조사된 통계에 따르면 성북리에는 총 589호가있었다. 이 중 농업호수는 2호로 전체 호수의 0.3%에 불과했다. 일제하 1930년대부터 경성부에서 거리가 가까운 교외지에는 비농업인구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토지도 점포, 주택, 공장 등 비농업적 용도로 전환되었다. 경성부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성북리의 경우도 이러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남기현)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 만남의 역사, 꿈의 공간 , 84-85쪽
  • 2. 各洞別人口集積推移(1) 1) 城北洞 地域 城北洞地域의 人口統計로 가장 오래 된 것으로 1915년의 것이 있는데 당시의 人口數는 810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그 후 5년인 1920년에는 5명이 줄어든 805명, 그 후 10년인 1930년에는 1,666명으로 뚜렷한 增加勢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다음 8·15光復 때까지 記述이 發見되지 않아 引用할 수 없음이 유감이지만 1949년의 통계에 의하면 13,372명이고 6·25動亂이 勃發한 후 아직 避難地에서 收復하지 않았던 1953년 당시에는 5,546명으로 크게 줄어 들기도 했었다. 다음 1961년에는 1949년 당시의 인구를 훨씬 上廻하는 18,535명으로, 그리고 그후 10년인 1970년에는 27,746명으로 크게 증가하더니 다음 해인 1971년의 27,988명을 고비로 줄어들기 시작 1980년에는 22,614명, 1990년에는 20,241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334쪽
  • 2. 인구의 변동 - 1949년 : 13,372명 - 1953년 : 5,546명 - 1961년 : 18,535명 - 1970년 : 27,746명 - 1980년 : 22,614명 - 1990년 : 20,241명 - 2016년 : 17,939명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46쪽
  • 2. 성북동의 인구와 특성 변화 ○ 성북동의 인구 증가 - 1910~20년대 궁벽한 곳(산촌) ㆍ1912년 경 성북동은 궁벽한 곳에 있어 그 동리인민의 생활 정도는 빨래하기와 지신을 삼아 영업하는데 지나지 아니함으로 백여호 민가가 호구하기에 분주하여 아동의 교육을 돌아볼 여지가 없었음 ㆍ1915년: 810명 ㆍ1920년: 805명 ㆍ1925년: 성북리 거주자 소방도구 및 상여 구입을 위해 기연한 주민 김영근 10원, 안덕진 5원, 윤호영 김창옥 각3원, 서상준 정경환 민향호 김일상 정명수 2원, 성주복 1원 50전, 김봉팔 안덕현 이진경 박순만 이윤일 이준환 이창배 최중항 차정환 이흥수 정영근 김동준 각1원, 김창오, 윤진영 황종수 김남산 안덕일 김사영 김수성 무수인 전종환 신호영 전인식 왕희순 정태윤 김용성 김순기 송재헌 김학민 ◌치준 오흥열 김정환 노희준 신태원 김인엽 김덕명 김덕재 김명운 송주◌ 김◌원 오성원 김평◌ 맹호선 김수문 이경수 차희명 김진상 홍경준 이종수 김성옥 홍희윤 김철준 홍영섭 송완근 각 50전, 성북구락부원 일동 54원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90쪽
  • ○ 성북동의 인구증가 - 1930년 이후 신흥주택가 ㆍ1929년: 조선총독부 관유 산림을 민간에 불하하여 주택지로 활용 ㆍ1930년: 1,666명 양관과 개량형 한옥이 들어섬 “성북동에 별장이 많다. 그것은 예전날 일이려니와 요새는 없든 집이 들어서고 또 들어선다. 늙은 鬱松 밑에 洋館이 있는가 하면 좌청룡이오 우백호를 서로 應하고 和해서 네 귀를 든 조선식 건물이 있다. 그뒤로 빠근히 내다뵈는 아담한 모던빌딩이 보인다. 성북동은 이렇게 기를 피우고 있다. 어떤이는 십년뒤 평값까지 구구를 치기도 한다. 집거간이란 새 직업이 마전으로 먹고 사는 이 동리에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ㆍ1936년: 신축가옥 사태가 날 만큼 새집이 굉장히 많이 들어섬 ㆍ1938년: 호수 1,000호 인구 6,000명의 큰 마을이 됨 ㆍ1949년: 13,372명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90쪽
  • 동별 세대 및 인구(단위: 세대, 명) •성북동 세대: 8,052 등록인구 합계: 17,902(남: 8,478 여: 9,424) 등록인구 한국인: 17,363(남: 8,261여: 9,102) 등록인구 외국인: 539(남: 217 여: 322) 세대당 인구: 2.16 65세 이상 고령자: 2,942 평균연령: 43.72 인구밀도(명/㎢): 6,259 면적(㎢): 2.86
    기획예산과(통계기록팀), 2019, 제34회 성북통계연보 , 40-41쪽
    제34회 성북통계연보의 '동별 세대 및 인구'표에 기록된 수치 중 성북동 부분을 옮긴 것이다. 통계자료 기준연도는 2018년이다.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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