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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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자연지리
북한산 서쪽 구준봉에서 발원하여 성북동·안암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개천이다. 안암동을 지나는 구간은 안암천, 안감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부터 마전터로 이용되었으며, 물이 맑아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500여명의 사람들이 만세 시위를 벌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 삼선교~성북경찰서 뒤편 총 1,300m를 복개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청계천 합류지역에서부터 보문동 1가 성암교회까지의 구간을 제외한 상류지역이 모두 복개하였다. 2002년 성북천 복원·정비공사에 착공하여 2019년 현재 성북동 성북아파트~한성대입구역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원되었다.
성북동 동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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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 오신 날 연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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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선동 희망의 다리에서 본 성북천 풍경 그림
  • 삼선동 희망의 다리에서 본 성북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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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북천 기념벽화(7)
  • 성북천 기념벽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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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城北川
  • 이명칭: 안암천, 안감내, 안암내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자연지리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 안암동
  • 비고: 한성대입구역에서 안암 제2교 3.68km 구간

근거자료 원문

  • 개발이 진행되면서 자주 범람하던 성북천도 복개하게 되었다. 성북천은 예부터 마전터이기도 하였지만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떨던 성북동 여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물이 맑아 아이들이 천에 모여서 헤엄을 치면서 놀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여자들과 남자들이 성북천을 바라보던 모습이 달랐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항상 천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빨래를 하였기 때문에 물이 맑았다고 말하는 반면에, 천에 내려가 가까이 보지 않고 여성들이 빨래를 한 후 흘려보내는 땟국만 보았던 남성들은 성북천을 더럽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즐겨 부르던 북둔(성북동)의 복숭아꽃은 성북천이 복개되면서 같이 사라졌다. 조선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성북천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성북인의 모습은 이제 옛 사진과 문헌 그리고 당시 살고 계셨던 어르신들의 입으로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현재는 안암천과 이어지는 성북천 하류 부분만을 개복하여 과거 성북동을 가로지르던 냇가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해준다.
    (재)희망제작소 뿌리센터, 2013, 성북동이 품은 이야기 -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 35-36쪽
  • 지금은 잘 정비되어 주민들의 여가공간이 된 성북천 주변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1980년대까지 서울로 올라온 가지지 못한 자들의 터전이었다. 그뿐 아니라 3 · 1운동 당시에는 500여 명의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만세 시위를 벌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도 성북천은 무심한 듯 유유히 흐르지만, 그 물줄기마다 담긴 사연에 마냥 무심해지기는 어렵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11-12쪽
  •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빠가 어릴 때 사람들이 성북천을 세느강(프랑스 파리의 강)이라고 했대요. 이유는 모르고 그 동네 오래 산 사람들이 그 개천을 이야기할 때 세느강이라고 불러서 아빠도 그렇게 불렀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는 “아니 세느강은 무슨. 똥 개천이었지 똥 개천, 더러웠어!”라고 말했어요. (최우영)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162쪽
  • 안암동의 서쪽 경계가 되는 성북천(안암천, 혹은 안감내)는 북악산 자락인 구준봉에서 발원하여 성북동을 지나, 안암동과 선설 · 용두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개천이다. 보문동과 안암동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이중 특히 안암동을 지나는 부분을 안감내, 안암천 등으로 불렀다. 성북동과 마찬가지로 안암동 역시 성북천을 앞에 두고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3.1운동 당시 300여 명이 성북천에서 만세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12쪽
  • ① 城北川 조사된 자료 중 가장 이른 것은 1952년도 예산서에서인데 청계천과 城北川의 개수공사를 위해 820,000圓이 계상되었고 이후 1954년에도 청계천과 성북천의 개수공사를 위해 1,980,000圓이 계상되어 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개수 공사를 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河川改修率關係資料에서는 1970년말 현재 이미 改修計劃延長 8,820m 에 대하여 旣改修延長이 8,626m로 改修率은 99.1%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의 기록으로는 1964년도에 水害復舊工事로 石築復舊工事를 한 기록이 있고 그 以後 1977년과 1985년 2차에 걸쳐 三仙橋 上流를 1憶원을 들여 覆蓋하는데 1977년에는 2억 2천 900만원을 투입하고 1985년에는 10億원을 들여 570m를 복개한 것이 전부이다(384쪽〈표 –34〉참조). 한편 1966년에 펴낸 《서울 下水道白書》에 의하면 1965년말 현재 城北川은 河川中心延長이 7,450m에 改修計劃延長 14,900m, 旣改修延長 14,900m로 改修가 완료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改修基準에 差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가지 덧부쳐 두어야 할 것은 民資에 의한 河川覆蓋를 한 것이다. 지금도 복개지상에 존재하는 三仙商街와 城北商街는 1960년대 말에 金玄玉 市長 當時 民資에 의한 전설이 한창 「붐」을 이루던 때에 마침 三仙商街柱式會社가 1968년 2윌 20일 河川法에 의한 占用許可를 받아 삼선동 1가 13에서 삼선동 2가 4번지까지의 구간 4,747㎡를 복개하고 복개지상에 4층 3동, 7층 2동 연건평 18,881㎡를 건축, 1층은 상가점포로 2층 이상은 주택으로 사용하게 하고 투자액의 相計條件으로 10년간 河川古用料를 면제하게 하였고, 城北商街는 1968년 5월 28일에 동소문동 3가 1에서 5가 118까지 4,432㎡를 복개, 복개지상에 3층 건물 2개동(연건평 13,296㎡) 를 허가 역시 1층은 상가로 2층 이상은 주택으로 사용하되, 相計條件으로 30년간 점용료를 면제하도록 한 것인데, 당시 담당직원의 업무처리의 불철저로 유사한 하천복개지상의 민자에 의한 상가아파트의 투자액 상계기간 10년과 달리 30년으로 함께 따라 뒷날 동일하게 10년 동안만 면제하고 점용료를 부과하여 입주자들의 집단소송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서울市가 패소한 사례가 있다. 어찌했던 이로써 성북천의 동소문로 하류, 돈암시장까지의 구간이 민자에 의해 복개됨에 따라 오늘의 시점에서 廳車空間等의 土地資源으로 남겨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겠다.
    성북구청, 1993, 성북구지, 384-385쪽
  • ○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성북구의 명소 성북구의 명소 92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꼬마청계천' -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성북구와 동대문구를 가로 질러 청계천에 합류되는 성북천. 1960년대 이전에는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과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이 많았던 맑고 깨끗한 하천이었다. 서울 시민의 정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성북천이 변신을 꿈꾸고 있다. 성북천 복원 대상 전체 구간은 한성대입구역에서부터 대광초등학교까지 2.5km로, 2003년 6월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오는 2010년까지 각 단계별로 복원공사가 끝나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새로운 하천으로 거듭날 것이다. 전 구간에 산책로가 조성되고 200m마다 징검다리가 설치되며 각종 광장과 시설물도 선을 보인다. 주거지와 학교가 밀집한 구간은 자연하천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꾸며질 계획이다. 복원 시작 구간인 한성대입구역에는 분수광장이 조성되었다. 이 분수는 폭이 20m로 용량 1만2000㎥인 성북동 저류조와 성북천 상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하천수, KT 통신구에서 발생하는 하루 800㎥의 물을 이용해 시원한 물줄기를 쏘아올리게 된다.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2014, 성북 100경, 156쪽
  • 복개川(천) 駐車場(주차장) 활용 大學川(대학천)등4곳 年末(연말)까지 허가 서울시는 30일 도심지안의 주차장난을 해소하기 위해 이미 복개한 종로구 관내 대학천 등 4곳의 복개된 하천구간을 주차장으로 활용키로 했다. 서울시가 주차장으로 활용키로 한 곳은 종로구 관내 대학천 5천 9백 30㎡, 성동구 관내 청계천 2만 8천 7백 20㎡, 성북구 관내 성북천 3천 1백㎡, 서대문구 관내 홍제천 3천 5백 90㎡ 등으로 서울시는 이를 위해 오는 12일 상오 11시 각 관할 구청별로 이를 일반공개경쟁입찰에 붙여 낙찰자에게 금년 말까지 점용허가를 내줘 운영케 한 다음 1년 마다 한 번씩 계약 경신을 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이들 복개된 하천구간 주차장에 주차 『경향신문』 1978.10.04 기사(뉴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 3-86
  • 城北川(성북천)복개着工(착공) 1억 3천만원 투입 연내 완공 城北(성북)구 三仙(삼선)동 삼선교상류 성북천 복개공사가 1일 착공됐다. 성북구는 총공사비 1억 3천 6백만원을 들여 폭 4m 깊이 3m 길이 1백 80m의 암거 3개를 나란히 설치하고 그 위를 포장, 인도와 차도를 구분해 도로를 확장하게 된다. 오는 12월말까지 이공사가 끝나게 되면 지금까지 폭 15m이던 좁은 도로가 40m로 크게 확장돼 삼선교에서 삼청터널로 가는 차량의 소통에 큰 도움을 주게된다. 『동아일보』 1977.09.01 기사(뉴스)
    박수진 외 4인, 2015, 성북동 이야기 자원 모음집, No. 3-86
  • 성북동 골짜기에서 발원한 성북천은 삼선교에서 돈암교로 흘러 돈암파출소를 끼고 돌아 보문동 쪽으로 흘러갔다.
  • ○ 1980~90년대 성북동 관련 신문기사(중앙일보) ㆍ성북천 복개공사장 사고 11일 하오 4시35분쯤 서울 성북동1가 184의 84 성북천 삼선교 상류 복개공사장 옆 축대(높이 5m) 가 무너지면서 축대 위에 있던 신영옥씨(57)집이 붕괴, 안방에서 잠자던 신씨의 맏딸 혜경 양(24) 과 부인 이동원씨(55)가 흙더미에 깔려 병원으로 옮겼으나 혜경 양은 숨졌다. 이 사고로 신씨집 이웃 서복순씨(61·여)집이 반쯤 부서지고 황세열씨(57)집은 심하게 금이 갔으나 집안에 있던 7∼8명은 재빨리 피해 화를 면했다. 사고는 공사를 맡은 석락산업 소속 서울 02-8209호(운전사 이동철·25)포클레인이 하천바닥의 모래를 긁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신씨집 축대 밑부분을 깊게 파내 높이5m, 길이 30여m의 축대가 한꺼번에 무너져 일어났다. (1985.07.12.)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62쪽
  • ○ 성북구 북악 줄기 구준봉 기슭에서 발원하여 청계천과 합류하여 중랑천으로 흐르는 하천. 지방 2급 하천(길이 5.11㎞) ○ 하류지역은 잘 정비되어 있고 상류 지역은 복개되어 있으나 점차 자연하천으로 복원되고 있음. 안암동을 거쳐 흘러가므로 안암천·안감내·안암내라고도 함 ○ 성북천의 복개와 복원 - 1968년 : 삼선교~성북경찰서 뒤편 총 1,300m를 민간자본 3억원을 투입하여 복개하고 주상복합아파트(삼선상가, 성북상가) 건립 - 1978년 : 삼선교 상류 180m 복개공사 완공. 주차장으로 활용 - 1993년 : 청계천 합류지역에서부터 보문동 1가 성암교회까지의 구간을 제외한 상류지역이 모두 복개되어 도로와 주차장으로 활용 - 2002년 : 성북천 복원·정비공사 착공 - 2010년 : 성북천 복원·정비공사 완공(한성대입구역~대광초등학교 2.5㎞) ※ 주상복합상가 7개동 철거 - 2011년 : 대광고~청계천 합류부 1㎞ 구간 복원 공사 완료(동대문구) - 2016년 : 성북동 성북아파트~한성대입구역 구간(약 2㎞)만 복개된 채로 남아 있음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성북문화원, 2016,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54-55쪽
  • 1919년 3월 이후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을 때 성북지역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먼저 안감천 방면에서는 1919년 3월 23일 밤 10시경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감천(안암천)에서 피한봉 등 500명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26일에는 안감천에서 2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전차에 투석을 하였다. 또 3월 27일에는 안감천 부근에서 500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 사람들의 추억 속에 있던 성북천이 복개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부터이다. 복개는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1993년에 발간한 [성북구지]에 의하면, 성북천은 성북동 13~245에서 동대문구 신설동의 청계천 합류지점까지 약 7.7km이다. 맨 처음 복개는 민간에 의해 먼저 실시된다. 1960년대 말 민간자본에 의한 개발이 붐을 이루면서 삼선상가와 성북상가가 하천법에 의한 점용허가를 받아 삼선동과 동소문동 일부를 복개하여 상가빌딩을 지었다.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것은 70년대부터이다. 1977년과 1985년 2차에 걸쳐 삼선교 상류를 복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77년에는 2억2천만 원이 투입되고 85년에는 10억 원이 투입된다. 그때 선잠단과 마전터로 흐르던 중앙로의 복개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중앙로 양쪽으로 올라가는 샛길에 흐르던 개천의 복개는 80년대 초에 이미 이루어졌다. 서울 성곽 북정동 마을(성북2동, 03번 마을버스 종점) 어귀에 1983년 세워진 <소방도로준공기념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1985년 중앙로의 복개 이전에 작은 샛길의 복개가 먼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약국을 운영하며 선잠제에도 직접 제관으로 참여했던 김향규(76세, 56년 거주) 할아버지의 기억에는,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한 집당 50만 원, 30만원씩 직접 돈을 내서 복개를 하고 동네청소를 했다”고 하니, 새마을 운동과 함께 주민들이 비용을 부담하면서 직접적으로 복개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 2010, 선잠단과 길쌈이야기, 122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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