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5월 7일 이규갑의 사회로 신간회 경동지회 발기준비회가 열렸다. 신간회 경동지회 발기준비회에 모인 사람들은 지회 설립 준비와 발기인 모집에 관한 사항을 논의했다. 이후 준비회는 숭인면, 한지면, 독도면 일대를 신간회 경동지회의 구역으로 확정하고 1929년 5월 16일 신설리 신설학원에서 창립대회를 여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창립대회를 앞두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졌다. 창립대회 장소인 신설학원에서 대회 개최를 거부한 것이다. 신설학원에서 대회 개최를 반대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창립을 앞두고 돌발적인 변수가 생긴 것은 분명했다. 신간회 경동지회 준비회는 서둘러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했다. 신간회 경동지회 준비회는 창립대회 장소를 숭인면 안암리에 있는 요리점 성춘관으로 장소를 변경하고 동대문경찰서에는 옥외집회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집회 개최를 허가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창립은 예정대로 개최할 수 있었다.
1929년 6월 16일 오후 4시 안암리 성춘관에서 신간회 경동지회 창립대회가 개최됐다. 이 대회에는 100명에 가까운 회원과 다수의 내빈들이 참석했다. 이규갑의 사회로 시작된 창립대회는 창립을 준비한 경과보고와 내외빈들의 축사와 축문 낭독으로 이어졌다. 축사와 축문 낭독이 끝난 후 신간회 경동지회 회원들은 전형위원을 선발하고 그들을 통해서 회장과 다른 간부들을 선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