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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은 노시산방을 수화에게 넘겨주면서 그 이름을 수화의 수樹 자와 김향안의 향鄕 자를 따서 ‘수향산방’이라 부르고 〈수향산방 전경〉이란 그림으로 남겼다. 그 그림 속에는 키 차이가 많이 나는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가 오랜 감나무 아래 정겹게 마주 하고 있다. 비록 수화가 그곳에 살았던 시간은 짧았지만 근원과 수화를 묶어주는 근원지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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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가 성북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근원 김용준과 인연 때문이다. 김환기와 김용준은 나이 차이가 아홉살이나 되었지만 서로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이였다. 1944년 김향안과 결혼한 김환기가 신혼집을 구할 때 김용준과상의를 하고 마침 이사를 가려던 그의 집을 샀다. 김용준이 ‘노시산방’이라 하였던 집은 주인이 김환기로 바뀌며‘ 수향산방(樹鄕山房)’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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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호인‘수화’와 아내의 이름인‘향안’에서 한 자씩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수향산방은 한옥으로 안방, 대청, 건넌방과 안방에 붙은 부엌, 아랫방, 광으로 된‘ㄱ’자 집이었다. 건넌방은 누마루를 달아서 사랑채의 구실을 하게했고 방마다 옛날 창문짝들을 구해서 맞추어 놓았다.
200평 남짓 되는 양지바른 산마루에 지은 집이라 바로 옆에 개울이 있고, 후원에는 여러 그루의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었다. 앞마당에는 괴석을 두었고 그 옆에는 풍란이 피었다. 여름엔 파초가 잘 자라도록 온실도 만들었다. 운치 있게 쌓아 올린 돌담장에는 앵두와 개나리가 있었다. 앞마당 층계를 내려가면 우물가에는 목련도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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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향산방은 안방, 대청, 건넌방과 안방에 붙은 부엌, 아랫방, 광으로 된 ㄱ자 한옥이었다. 바로 옆에 개울이 있고, 후원에는 여러 그루의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었다. 집을 물려준 근원 김용준은 자주 수향산방을 찾았다. 김환기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수화소노인 가부좌상樹話小老人跏趺坐像>과 키가 큰 김환기와 작고 아담한 김향안이 수향산방 집 마당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그린 <수향산방전경>을 그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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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김환기·김향안 부부의 집
2. 노시산방의 다른 이름, 수향산방
○ 1944년 김용준은 김환기·김향안 부부에게 노시산방을 팔고 경기도 의정부로 이사
- 김용준 수필, 「육장후기(鬻莊後記)」 참고
○ 의정부로 이사한 후에도 김용준은 수시로 수향산방을 찾아 김환기와 미술을 논하곤 했음
- 김용준의 그림 <수향산방 전경>(1944) : 산방의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환기·김향안 부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
- 김용준의 그림 <수화소노인(樹話少老人)가부좌상>(1947) : 김용준이 1947년 수향산방을 찾아가 김환기의 모습을 그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