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성시를 이룬 ‘아성다방
(어르신 방석 공장 오랫동안 하셨어요?) 그렇죠. 내가 한 거의 10년을 하다가 돈 좀 벌어가지고 시방 나 사는 집이 4층 건물인데 그 건물에다 내가 1층에다 다방 세를 주었어요. 다방 세 나오는 거하고, 또 아래층에서 세 나오는 것하고 그래서 먹고 살다가 그 사람이 다방을 못하겠다고 해서 내가 인수를 해가지고 그래 다방을 무척 오래했죠. 허다가 여기 6호선 나오는 바람에 그때 그만 뒀죠. 그때는 잘 돼서 그저 아침마다 마을금고 예금하러 가는 게 일과야. 다방이 잘 돼서.
(아니 그때 무슨 동네에 다방이 그렇게 잘돼요?) 다방이 여기 보문다방하고 우리 아성다방하고 그렇게 둘밖에 없었어요. 그때 내가 동네에서 무슨 8가지 감투를 썼어요. 공화당 부책을 맡고 있었어요, 여기서. 길 이쪽은 내가 다 공화당 부책을 맡고 있었고, 새마을지도자 감사했고, 노인정 총무 했지, 또 방범위원 했지, 파출소 선진질서위원장 했지, 하여튼 여러 가지 감투를 썼더니 내가 다방에 안 있고 길에서 만나면 “회장님, 다방에 갔더니 안 계시데요?” (웃음) 그 정도로 손님이 많았어요. 그때 그리고 김일이가 레슬링 할 때, 내가 텔레비를 제일 먼첨 칼라텔레비를 놓았거든, 다방에. 그냥 그냥 김일이가 레슬링만 한다면 그냥 앉을 자리가 없어서 탁자 우에 앉아요. 이게 이 의자가 우리 아성다방에서 쓰던 의자예요, 이거 빨간거 다. (TV 스포츠 중계가 큰 역할을 했네요?) 그럼요. 그때는 선불이야 뭐 후불도 없어. 하여튼 김일이가 레슬링 한다면 우리 집도 장지문 다 떼어 놓고 보고. 다방에서도 많이 와서 보고 이랬어요.(구술자 박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