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동/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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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문지리
안암동의 명칭 변화와 관련된 설명이다. 안암동은 성북구에서 가장 먼저 생긴 지명이기도 하다. 조선 태조대부터 등장하는 이 이름은 지금의 대광아파트 단지에 20명 정도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앉일바위’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과 그 후손들이 살아서 궁리(宮里)라고 불렀다고 하며, 그들이 살았던 집과 사당은 현재 안암동3가 지역에 있었다고 전한다. 이밖에 조선초 이 지역에 살았던 문정공 한계희와 관련된 설도 있다. 곤궁하게 살던 한계희를 위해 친척들이 북바위 부근 논을 주었는데, 한계희가 이 논에서 나온 곡식을 인근의 백성에게 나누어 주어 백성들이 편안히 살게 되었고, 이를 기려 마을 이름에 ‘편안할 안(安)’을 붙여 안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안암동
  • 안암동 청사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근거자료 원문

  • 성북천을 건너면 안암동이 시작된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가운데 한 곳이다. 안암동은 성북구에서 가장 먼저 생긴 지명이기도 하다. 조선 태조대부터 등장하는 이 이름은 개운산 끝자락 지금의 대광아파트 단지에 20명 정도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앉일바위’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세종의 다섯 째 아들 광평대군과 그 후손들이 살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궁리宮里라는또 다른 이름도 붙어 있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12쪽
  • 산과 하천, 그리고 사람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안암동의 모습은 직사각형을 기울인 모습(◇)을 하고 있다. 서남쪽은 성북천(혹은 안암천)을 경계로 보문동과, 남동쪽은 안암로를 경계로 동대문구 제기동과, 북동쪽은 개운산과 그 자락을 경계로 종암동과, 북서쪽은 동선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이런 현재의 행정구역은 대체로 1975년 10월 1일 이뤄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한 것이다. 근대 이전의 안암동은 대체로 성북천 동쪽에서 개운산 자락 서쪽 사이의 지역(현재 안암동1가에서 4가 지역)에 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안암동은 궁리宮里로도 불렸는데,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廣平大君과 그 후손들이 살아서 붙은 이름이다. 그들이 살았던 집과 사당은 현 안암동3가 지역에 있었다고 전한다. 안암이란 동명의 유래가 된 ‘앉일바위’가 있던 지역이 현 안암동3가에 위치한 대광아파트였다는 것도 옛 안암동의 중심지를 짐작케 한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10-211쪽
  • 안암동이라는 동명은 옛 문헌과 고지도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 중 지금의 안암동3가 대광아파트 단지 가운데 큰 바위가 있어 20여 명이 앉아 편히 쉴만하기에 그 바위를 ‘앉일바위’라 불렀고, 이를 한자로 옮겨 ‘안암安岩’이라 부른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 있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18-219쪽
  • 안암이라는 동명이 ‘앉일바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자리 잡은 가운데, 조선 초 이 지역에 살던 문정공文靖公 한계희韓繼禧(1423~1482)와 연관된 설도 존재한다. 한계희는 세조를 도와 공신이 된 한명회韓明澮의 육촌 형제였다. 그러나 한계희는 한명회를 비롯한 다른 친지들에 비해 매우 곤궁하였고, 나물로 겨우 끼니를 이었다고 한다. 이를 높은 관직에 있는 친척들이 측은하게 여겨 북바위鼓巖 부근 논 열섬지기를 받게 하였으나, 한계희는 논은 받되 그 논에서 나온 곡식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를 인근의 어려운 가정에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이 덕에 인근 백성들이 편안히 살게 되었으므로, 이를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에 ‘편안할 안安’을 붙여 안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19쪽
  • 성북구 안암동3가 대광아파트 단지 가운데 있던 바위로서, 바위가 커서 20여 명이 앉아 편히 쉴만하다 하여 앉일바위라 하였으며, 한자명으로 안암이라고 하였다. 안암동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지명사전, 항목명: 안암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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