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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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인문지리
안암동의 생활상과 관련된 설명이다. 일제강점기 안암동은 고양군 숭인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본래 과일 재배로 유명했다. 대부분 임야지역이었던 이곳은 전차의 도입과 토지구획정리사업에 따른 개발 등으로 인해 1920년대부터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였다. 사람들이 전차를 타기 쉬운 전차역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하면서 청량리선이 지나는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에도 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한편으로 1937년 조선총독부는 경성부 동부지역을 돈암지구로 묶고 대규모 주택단지를 개발하는 계획을 세웠고, 본격적으로 1939년 말부터 40년대 중반까지 집중적으로 주택 공급을 시작했다. 주택과 함께 수도가 공급되고, 간선도로인 보문로가 만들어지고, 전차도 돈암지구까지 연장되면서 안암리가 포함된 경성부 동부지역은 새롭게 주택지역으로 거듭났다.
안암동
  • 안암역 사거리(안암로터리 방면)
  • 양돈(養豚) 5두(頭)를 교살(咬殺)한 늑대무리, 동대문 밖 안암리에서

기본정보

  • 영문명칭:
  • 한문명칭:
  • 이명칭:
  • 오브젝트 생산자:
  • 비고:
  • 유형: 장소 인문지리

시기

주소

  •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근거자료 원문

  • 일제강점기 안암동은 고양군 숭인면에 속했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본래 과일 재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산발적으로 주거지들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숭인면 일대는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는 임야지역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숭인면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20년 9천 명이었던 숭인면 일대 인구는 1925년 2만 3천 명, 1930년 3만 명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특히 숭인면에서도 도심과 가장 가까웠던 안암리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1920년 1920년 413명에 불과했던 안암리의 인구는 1930년 17,15명으로 증가했다. 불과 10년 사이에 안암리의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숭인면 안암리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한 것은 전차의 도입과 관계가 있었다. 1899년 8월 흥화문 앞에서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이 있었던 동대문 밖 청량리까지 전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흥화문과 청량리를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 당시 전차는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였으며 운행요금은 현재 충정로 부근인 경교京橋에서 동대문까지 갈 경우 상등은 7전 5분, 하등은 5전이었다. 흥화문-청량리 노선을 시작으로 종로와 남대문, 영등포와 용산을 연결하는 노선 등이 만들어졌다. 전차는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도 전차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전차를 이용해 경성으로 들어오고 나갔다. 특히 경성부 외곽에 거주하던 사람들에게 전차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들에게 전차만큼 빠르고 안전하게 경성으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전차를 타기 용이한 전차역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청량리선이 지나는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역시 이런 요인으로 인구가 늘어났던 것이다. 또한 전차역과 지방을 연결하는 사설 철도가 연결되고 이 역들을 연결하는 전차 노선이 새롭게 부설되면서 전차역 주변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청량리역이 경원선과 연결되고 광화문과 동대문까지의 전차 궤도가 복선화 되면서 청량리역 일대가 발전되기 시작했다. 청량리역 주변으로 경성농업학교와 경성제국대학 예과가 자리 잡았고,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과 종연방적공장, 조선고무회사, 조선제지회사 등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 일대가 개발된 것은 1937년 2월 돈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실시되면서부터이다. 1937년 2월 무렵 조선총독부는 경성부 동부지역을 돈암지구로 묶고 대규모 주택단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1937년 10월부터 1939년 2월 무렵 토지조성작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1939년 말부터 40년대 중반까지 집중적으로 주택 공급을 시작했다. 주택이 공급과 함께 이 일대에 수도가 공급됐고, 교통 역시 간선도로인 보문로가 만들어졌고 전차도 창경원에서 돈암지구까지 연장 부설되었다. 불모지였던 경성부 동부지역은 새롭게 주택지역으로 거듭났던 것이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라 할 만했다.
    박수진 외 7인, 2017, 보문동∙안암동, 260-262쪽

기술통제

  • 작성자: 오진아
  • 작성일: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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