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산의 형세가 마치 반달과 같다고 하여 유래된 월곡동
월곡동은 지금의 하월곡동에 있는 천장산의 형세가 마치 반달과 같다고 하여 그 산 근방에 있는 마을을 다릿골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했다. 그리고 다릿굴 중 위쪽에 있는 곳을 ‘웃다릿굴’, 아래쪽에 있는 곳을 ‘아랫다릿굴’이라 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상월곡동과 하월곡동이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선시대 이 지역에는 주막이 밀집해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소장수들이 달밤에 이 곳에 도착하여 숙박을 하고 아직 달이 채 지지 않은 새벽 무렵에 일어나 소의 가격을 흥정했기에 월곡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던 간에 이 지명 이야기들은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월곡동은 서울로 편입된 역사가 짧은 경기도권의 지역이었다. 동대문 밖을 나와 성북역을 거쳐 원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런 월곡동에 주막이 많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 근방은 소나무 숲이 수려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더 잦았다. 하지만 지금은 소나무 숲도, 주막의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 경원선 철 도의 부설로 인해 이곳 주막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 다. 서울로 편입되기 전 상월곡동에 살던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지 으며 살았다. 그런데 서울로 편입된 후에는, 인구의 팽창으로 인해 농지로 사용되던 곳이 점점 주택가로 변했다. 서울의 외곽이었던 이 곳에는 서울 내의 철거민들이 몰려들어 살았는데, 1960년대 이후에 는 재개발되어 주택단지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율곡, 모래마을, 밤골, 배나무골 모두 과거 월곡동에 있던 마을 이 름들이다. 마을 이름들만 보더라도 이 지역의 과거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특히 현재 하월곡동에 있는 모래마을은 정릉천에서 내려오 는 모래가 이곳에 쌓여 모래마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곳은 또한 물이 맑아 콩나물이 유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로 염색공장, 피 혁공장, 작은 상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모습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월곡동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