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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鎭圭(권진규)씨 乾漆(건칠)작품전
조각가 권진규씨의 테라코타와 건칠작품전이 10일부터 16일까지 명동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석조각 작품 3점을 포함해서 모두 32점이 나온 이 전시회는 흙을 말려 구운 테라코타 작품과 진흙으로 골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그위에 톱밥과 칠액을 바른 건칠작품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런 조각양식의 전시회론 국내서 처음이다. 이 두 조각 양식은 모두 고대 중국에서 전래한 것으로 현재는 거의 쓰여지고 있지 않다. 로댕의 제자 부르델에게서 배운 일인 조각가 청수다가시에 사사한 권진규씨는 무장야 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59년에 귀국, 미아리고개 옆에 개인 가마를 놓고 제작에만 전념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작품은 명동화랑 측서 제작비를 부담했다. 권씨는 일본의 재야전인 이과회의 회우로 이과상을 받았으며 일본 동경 일본교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었고 작품 1점이 일본국립근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향신문』 1971.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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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아틀리에는 선생이 195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1973년 삶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한 곳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삼국시대 토우에 뿌리를 둔 테라코타와 건칠(乾漆) 기법을 새롭게 연구·발굴하여 한국적 리얼리즘 조각의 세계를 정립하였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위에 살림집 뒤로 가려진 이 아틀리에에는 선생이 흙 작업을 위해 만든 우물, 굴뚝처럼 솟은 가마와 선반, 책상과 작업대 등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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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코타와 건칠乾漆 작품으로 우리나라 근현대 조각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조각가이다. 1949년 입학한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부르델의 계보를 잇는 시미즈 다카시에게 사사하였다. 이과전二科展에서 석조 작품인 <기사>, <마두>로 최우수상을 받는다. 1955년 무렵부터 테라코타 작업을 시작하였다. 1959년 귀국 후 동선동 집 옆에 2년에 걸쳐 시멘트와 목재로 천장을 높인 작업실을 짓고, 한 쪽에 가마를 만들었다. 홍익대 조각과와 서울대 건축과,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수화랑과 명동화랑, 일본 니혼바시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건강 악화와 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지원의 얼굴>, <애자>, <땋은 머리> 등 테라코타 흉상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자취가 남은 아틀리에는 유족이 기증하여 2006년 시민문화유산으로 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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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흥 출생. 테라코타와 건칠(乾漆) 작품으로 우리나라 근현대 조각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조각가이다. 1949년 입학한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부르델의 계보를 잇는 시미즈 다카시에게 사사했다. 이과전(二科展)에서 석조작품 <기사>, <마두>로 최우수상을 받는다. 1955년 무렵부터 테라코타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고도로 절제된 긴장감과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조각을 통해 영원을 향한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9년 귀국 후 동선동 집 옆에 2년에 걸쳐 시멘트와 목재로 천장을 높인 작업실을 짓고, 한쪽에 가마를 만들었다. 홍익대 조각과와 서울대 건축과,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수화랑과 명동화랑, 일본 니혼바시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건강악화와 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지원의 얼굴>, <애자>, <땋은 머리> 등 테라코타 흉상을 남겼다. 그의 자취가 남은 아틀리에는 유족이 기증해 시민문화유산으로 보전되고 있다.